스누커 프로당구 투어 '월드 스누커(World Snooker)'는 종주국 잉글랜드에 신흥 중국의 두 뿌리를 바탕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해가 다르게 늘어나는 상금과 중국의 후원을 두고 왜 중국이 스누커에 이렇게 큰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중국도 복잡한 스누커 경기를 대중화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대신 스누커 당구대 위에서 포켓볼 공으로 8볼 경기를 하는 ‘중국식 스누커’로 개량해 중국 전역에 보급했고, 대만과 인접한 상하이 등 동남부 일부 포켓볼 보급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중국식 스누커가 보급되었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당구 종목인 포켓볼보다 중국식 스누커 게임이 더 크게 성행하면서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스누커 당구대에 일찍부터 적응하게 되었다.
실제로 현재 중국 광저우나 베이징 등 월드 스누커 투어가 열리는 현장은 엄청난 당구 팬들의 인파로 몰린다.
필자가 얼마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스누커 경기장 안팎을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중국의 간판스타 딩준후이가 경기를 하던 날에는 그 큰 경기장 안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입장하는 것이 시간이 걸리고 다소 번거로웠지만, 이런 중국의 인프라가 마냥 부럽기만 했다.
중국이 스누커를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것은 98 방콕 아시안게임부터다.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정식종목이 된 당구에는 10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었고, 절반인 5개가 스누커, 포켓볼은 4개, 캐롬은 1개가 배정되었다.
중국 당구계는 이를 계기로 메달이 많은 스누커와 포켓볼 두 종목에 대한 지원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당시 캐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량된 중국식 스누커와 대만을 통해 넘어온 포켓볼의 영향으로, 그리고 아시안게임에 걸렸던 불과 1개의 메달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중국이 이때부터 육성하기 시작한 유망주가 바로 딩준후이다. 딩준후이는 딱 4년 뒤인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불과 16살의 나이로 금메달을 땄다.
중국은 9살에 큐를 잡은 딩준후이를 4년 만에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냈다.
그리고 한국의 '세리 키즈'들이 LPGA를 점령한 것처럼 현재 '딩준후이 키즈'들은 월드 스누커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에 열린 차이나 챔피언십에서 일어난 일들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게 한다.
차이나 챔피언십에서 중국의 21살 신예 자오신통은 2018년 세계챔피언 마크 윌리엄스와 배리 호킨스, 퍼겔 오브라이언, 앤서니 맥길 등 세계 최강자들을 줄줄이 꺾고 4강에 올랐다.
또한, 동갑내기 뤼하오티안도 숀 머피와 조 페리 등을 누르고 4강에 진출했고, 2000년생 위안쓰준은 딩준후이를 16강에서 5-4로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밖에 스튜어트 빙햄을 꺾고 8강에 오른 2000년생 얀빙타오와 같은 19살 뤄홍하오, 98년생 쑤시 등도 32강 본선에 오르며 이제 ‘딩준후이 키즈’들의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데 중국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이 많은 슈퍼 루키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것일까.
기술적인 부분은 세계 수준 코치를 데려와서 '스누커 스쿨'을 도입하면 가능하지만, 유망주들에 대한 후원은 별개의 문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모가 과연 아이들에게 스누커 큐를 잡도록 만드느냐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어린아이들의 미래가 당구대 위에서 좌지우지된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스누커에 대한 비전과 성과가 눈에 확실하게 보여야 가능한 일이다.
중국은 그 비전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수백억원의 상금이 오가는 '월드 스누커'를 중국 본토로 데려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헝다(에버그란데)와 푸후아 인터내셔널 등을 후원자로 섭외했다.
선수 생활 10여 년 만에 수백억원을 벌어들인 딩준후이와 중국 본토에서 열리는 스누커 대회에 열광하는 팬들, 그리고 헝다와 푸후아 같은 대기업의 후원 등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결국 중국은, 월드 스누커의 절반을 집어삼키면서 그만큼 더 확실한 비전을 가시화했다.
얼마 전 중국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한국 당구계에는 다소 뼈아픈 말 한마디를 던졌다. 그의 말은 이렇다.
"헝다와 푸후아 같은 대기업은 미래를 본다. 그리고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쓰고 싶어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현재 중국에서 당구가 대중적인 스포츠이고 당구대회에 당신들의 제품을 홍보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그들은 아무도 스누커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머지않아 세계를 제패할 루키들을 이만큼 키워냈고, 당신의 후원으로 인해 더 많은 루키들이 세계 속에서 앞으로 30년, 50년, 100년 동안 크게 빛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후원은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후원을 우리에게 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부분이 생각났다. 그중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면, 지금 한국의 당구 루키는 단순히 학생선수권대회와 같은 타이틀로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용으로 길러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선수를 육성하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 지금 한국 당구의 비전은 '전국체전 정식종목'밖에 없다. 이마저도 당구가 전국체전 정식종목에서 빠지게 되는 내년부터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런 현실을 대비하고 타개해야 할 책임은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회장 남삼현)에 있는데, 과연 당구연맹의 1년 예산 중에 얼마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학교체육 육성 사업으로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도 중국처럼 '슈퍼 루키'를 만드는 시스템을 이미 10년 전에는 만들어 놓았어야 한다.
당구연맹은 그 자금을 이미 10년 전부터 꾸준하게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었고, 매년 지원받은 국민체육진흥기금과 기업들의 후원금 수억원은 이렇게 종목 활성화를 위한 사업의 기초자금으로 쓰여야 했다.
그러나 그 10년의 세월 동안 당구연맹이 사조직처럼 운영되면서 온갖 비리가 만연했고, 지금 2018년에 우리는 중국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를 하기보다는 더 심각한 암초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계속해서 빛을 보는 중국과 너무 대비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구인 모두가 심사숙고해 보았으면 한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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