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권의 잡지에는 한국 당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한국 당구 역사 속에 살아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자산으로 평가

1980년대와 90년대에 발간된 <월간 당구>

스포츠 종목 중에 전문 미디어를 갖고 있는 종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 등과 같은 프로 종목이나 전략적으로 해당 종목 협회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몇 개의 올림픽 종목 외에 다른 종목들은 미디어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이 매체가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산업이 활발하지도 않고, 또 종목 자체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도 크지 않아서 단일 종목의 언론사가 장기간 유지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런데 당구는 미디어가 30년을 생존했다. 당구보다 더 큰 규모의 종목들도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사이에 당구는 ‘월간 당구(현 <빌리어즈>)’라는 매체가 휴간 한 번 없이 무려 30년 동안 계속 발행되어 왔다.

미디어 생태계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유기 종목이었던 당구가 80년대 군사정권에서 전문 매체의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또 이 매체가 어떻게 30년이나 유지될 수 있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월간 당구>가 창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던 1986년은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국내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정당하게 보장받지 못하고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던 불완전한 민주주의 체제가 사회를 움직이던 때였다.

언론은 지금처럼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였다. 그 시기에 당구는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있었고, 정부는 공중위생법에 따라 당구를 유기 종목에 편입시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당구라는 종목의 언론이 허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1987년 2월에 창간된 <월간 당구>는 2017년 5월까지 통권 361호가 발행됐다. 올해는 <빌리어즈>가 발간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당시 문화체육부의 발행 허가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본사가 국내 최초의 자동차 잡지 <월간 자동차>와 <월간 주유소> 등을 발행하는 정식 언론사였기 때문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발행인의 출신과 경력이 중요했는데, 김기제 발행인은 고려대 법대 출신으로 스포츠 전문 신문인 <일간스포츠>의 창간 멤버, 학원사, 동아출판사, 한국생산성본부, 상공회의소 등에서 각종 잡지 기자와 편집장을 두루 거친 30년 경력의 언론인이었다.

김기제 발행인은 “당구의 이미지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하고 담당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1년 만에 허가가 내려졌다”라고 당시를 술회하고 있다.

이후 민주주의 정권이 창출되고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하여 언론사 등록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바뀌면서 다른 당구 전문 잡지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월간 당구>의 생존을 보고 호기롭게 나섰던 그들은 아무도 버티지 못했다.

전문적인 언론인 출신도 아닌 당구인의 지인 등이 운영하면서 전문성도 떨어졌고, 경영은 직원 하나 뽑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재정적 여건이 <월간 당구>라고 달랐던 것은 아니다. 

어렵게 당구 잡지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만, 당구계의 중추적 단체였던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가 재정 여건이 그리 좋지 못해서 <월간 당구>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그 대신 한국 당구 산업의 선두주자인 (주)허리우드의 창업주 고 홍영선 회장, 부영목재 민영길 회장, 유성캉가루산업 고 현두경 회장, (주)한밭 권오철 회장, 빅토리3515 고 이영식 회장과 이호식 대표, (주)허리우드 홍광선 회장, 일진석판 배원기 대표, 신영답브 신영식 대표, 한라상사 박학용 대표, 아카데미초크 고 이용익 대표, 삼보당구재료 고 김가영 대표 등의 당구인들이 당구의 스포츠화를 위해 뜻을 모으고 <월간 당구>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10년 제호가 <빌리어즈>로 변경되었고, 2015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콘텐츠 잡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월간 당구>는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 부도 위기에 놓였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월간 당구>는 끝까지 단 한 번도 휴간하지 않았다.

당장 채권자들이 편집실을 점거하고 급여를 받지 못한 기자들이 모두 그만두어도 다음 달 잡지는 어김없이 발행되었다.

도움을 주었던 여러 당구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도 위기 때마다 수익성이 좋았던 자사의 다른 <자동차>와 <주유소> 잡지를 매각하면서까지 버텼다.  

이러한 고초는 당구를 스포츠로 만들고 한국 당구를 개혁해보자는 다짐으로, 그리고 끝까지 지켜야 하는 신념이 되어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쉬지 않고 당구 잡지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이 당구장에 청소년이 출입하도록 위헌 결정을 내릴 때나 월드컵과 각종 세계대회, 방송대회 등을 유치하면서 국내외의 정관계 인사들을 설득할 때 그 사람들의 눈앞에는 ‘설득을 위한 도구’로 항상 <월간 당구>가 놓여 있었다. 

이렇게 기록된 30년의 당구 역사와 90년대까지 생존했던 한국 당구의 산증인들의 증언이 361권의 <월간 당구>, 그리고 <빌리어즈> 잡지 속에 모두 남아 있다.

이것은 한국 당구의 자산이며 역사 속에 살아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증거다.

30주년을 맞은 이번 2017년, 2년간 진행됐던 당구계 비리 척결 과정의 후폭풍으로 갑작스럽게 경영난을 맞아 변변한 특집호조차 만들지 못했다. 독자 여러분에게 양해를 구한다. 

앞으로도 <빌리어즈>는 한국 당구의 역사를 60년, 100년 동안 계속해서 기록해 나갈 것이다.

훗날 당구가 올림픽에 입성하고 제대로 된 스포츠 시스템을 구축하여 당구라는 종목이 다시 한번 재평가받을 때까지 끊임없이 제안하고 발전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국내 유일의 당구 언론으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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