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마케팅 업체인 브라보앤뉴에서 주최한 '프로당구 공청회' <사진 = 빌리어즈>

며칠 전 당구를 프로화하겠다고 만든 공청회에서 세계 유일한 프로 당구 투어인 '월드 스누커(World Snooker)' 이야기가 나왔다. 

행사를 주최한 브라보앤뉴 측은 월드 스누커를 롤모델로 3쿠션 프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월드 스누커는 몇 년 전부터 <빌리어즈>가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그전까지 한국은 스누커라는 종목에 억대 연봉을 받는 프로가 있는지도 몇몇 스누커 선수들 외에는 잘 몰랐다. 

한국에서는 별 관심 없는 스누커를 왜 계속 보도하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답을 엉뚱하게도 '프로당구 공청회'에서 대신해 주었다.

당구계에서 20년, 간접 경험까지 30년을 거치면서 '3쿠션 프로화'는 월드 스누커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4년경 월드 스누커 측에 자료를 요청했고, 연간 상금만 150억원이 왔다 갔다 하는 스누커 프로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프로당구 공청회'를 주최한 브라보앤뉴는 프로화 모델로 월드 스누커를 제시했다 <사진 = 빌리어즈>

월드 스누커 시스템을 도입해 한국에 3쿠션 프로를 만드는 것은, 적합하기는 해도 완벽하지는 않다. 

한국과 유럽의 스포츠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포츠 구조는 아직 유럽만큼 선진화되어 있지는 않다. 

엘리트와 조직 중심의 병폐가 스포츠 시스템 전체의 진화를 더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월드 스누커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바로 '관(官)'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 등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선수를 수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엘리트 선수가 없는 프로는 이미 국민생활체육 전국당구연합회라는 단체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모 전기자동차 회사와 당구계 기업들의 투자로 아마추어 동호인 단체인 당구연합회가 만든 이 '준프로리그'는 당구연맹 소속 엘리트 선수들의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면서 결국 2부로 전락했고, 여러 사람이 고생만 하다가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그동안 이런 식으로 당구를 프로화하겠다는 사람은 많았다. 필자와 이런 인연으로 스쳐 간 사람도 여럿 있다.

몇 년 전에 만난 모 프로모션 기업의 대표는 "당구 프로를 만든다는 생각에 난 잠도 제대로 안 온다"며 도와달라고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잠 못 자며 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딱 두 가지 이유로 당구의 프로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 두 가지는 '당구 이미지와 주체 싸움'이다.
 

브라보앤뉴에서 주최한 '프로 당구 공청회' <사진 = 빌리어즈>

필요한 것은 구상이 아닌 실체
"프로 당구 자금 100억원에 대한 설명 더 들어봐야"

며칠 전 신문사에 있는 언론계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당구 좋아졌어, 많이"

당구 이미지가 이렇다. 좋아져야 하는 이미지다. 아직은 그렇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관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 스포츠 구조에서 관이 움직이지 않는 종목을 프로화할 수 있을지,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은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부정적이다.

다만, 당구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다는 비전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면 아예 불가능하지도 않아 보인다.  

가칭 프로당구추진위원회는 '세계프로스누커당구협회(WPBSA)'와 같은 형태의 프로당구협회로 발전하고, 1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브라보앤뉴는 '주식회사 월드 스누커'와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게 주체 싸움이다. 공적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은 지금까지 사기업들과의 주체 싸움에서 항상 이겨왔다.

당구연맹이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중계권 및 콘텐츠 사업권, 그리고 선수'를 일반 사기업에 내줘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서 밥숟가락까지 전부 내놓고 집에서 나가라는데, 나갈 사람이 있느냐"라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해서 지금의 브라보앤뉴와 프로당구추진위원회도 당구연맹 산하에 들어가야 한다면 과연 일을 추진하려고 할까.

앞으로 더 좋아져야 하는 당구 이미지의 한계와 한없는 주체 싸움이 이렇게 또 반복되어야 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

공청회에서 브라보앤뉴가 말한 '투자금 100억원'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공청회를 마치고 돌아온 참석자들은 "그런데 100억원을 과연 누가 내겠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졌다.

사실 공청회에서 월드 스누커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필자는 좀 의아했다. 

월드 스누커에 대한 구조와 수익배분, 그리고 지금 브라보앤뉴가 추진하는 프로 당구 프로모션의 손익분기점 등에 대한 것은 투자자들에게나 할 이야기다. 

공청회에서 선수나 관계자들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떤 기업이 참여할 것이고, 지금까지 얼마의 자금이 확보되었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논의해보자"는 말이었다.

소문만 무성하던 '프로 당구'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거물급 스포츠 마케터의 이름을 내세워 공언한 무거운 자리였기 때문에 기대도 컸다. 

실체가 없는 표면적인 위원회와 아이디어만으로는, 관을 움직이거나 주체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얼마를, 어떻게'에 대한 실체를 드러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돈을 내겠다는 주체가 10억원도 있었고, 20억원도 있었다. 그런데 말에 불과했다.

그 돈이 진짜 있었다면 한국 당구선수들이 억대의 상금을 받는 대회가 벌써 만들어졌을 것이다. 

일부러 발표를 안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체 없는 구상만으로는 당구계 일부가 쫓아가는 것은 가능해도 전체의 합의를 도출하기는 어렵다.

어떤 참석자는 "기대가 컸는데, 공청회 이후 마음만 더 무거워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구를 프로화하겠다는 100억원 자금에 대해 확실한 설명이 더 필요할 듯하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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