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회장 A씨, “내가 청와대 신문고에 박종화 회장 관련 민원 넣었다”대의원 B씨, “파면당한 방 씨 고발 취하하고 권고사직으로 돌리자” [빌리어즈=김주석 기자] 국민생활체육 전국당구연합회(회장 박종화)의 사무처장 비리 혐의로 인해 발단된 사태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표류하고 있다. 체육단체 통합을 앞두고 몇몇 이사진과 대의원들이 ‘파면당한 사무처장 방 모 씨의 복권과 동시에 박종화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서 균열이 커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상급단체인 국민생활체육회에서는 고소, 고발, 징계와 진정이 난무하고 있는 전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마르코 자네티와 나는 저녁에 잠시 대회장을 나와 선수 몇 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간단하게 맥주를 즐겼다. 보스포루스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이스탄불의 멋진 야경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구로 뭉쳐진 관계여서인지 대부분 당구와 관련된 화제로 대화를 나눴고,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꽤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무엇보다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겪어온 당구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그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왜 당구선수가 되었으며, 어떻게 세계
폭행과 욕설, 체육단체라고는 믿기지 않는 국민생활체육 전국당구연합회의 민 얼굴은 정말 낯뜨겁다.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는 국민생활체육 전국당구연합회 사태를 밖에서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함을 이루 말할 길이 없다. “관리단체 만들어. 난 찬성” 지난 1월 20일 박종화 회장의 자진 사퇴를 주장하던 전국당구연합회의 한 부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내뱉은 말이다. 그 자리는 상급단체인 국민생활체육회에서 사태 봉합을 위해 만든 자리로 ‘관리단체 보고 권한’을 갖고 있는 담당자도 나와 있는 자리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냥 한 말이라고 아무리
세미 사이그너와 인터뷰를 하면서‘디퍼런트 씽(different thing)’이라는 두 단어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사이그너가 당구선수로 활동을 보이콧한 이유도 그 두 단어에 들어 있었다.터키당구연맹이 당구와 당구선수를 위한 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임무 외에 다른 목적,‘디퍼런트 씽’을 갖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사이그너는 그것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회사와 같다고 설명했다.스포츠 단체는 엄연히 비영리 단체이며 국민의 세금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아 종목과 선수를 서포트해야 하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둘 수
경기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경복고등학고, 경성고등학교, 대구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등 여섯 개의 학교가 모여 첫 번째 고교동문 당구대회를 열었다. 지난 11월 15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JS당구클럽에서 열린 이번 고교동문 당구대회는 JBS(대표 박석준)의 주최로 JBS 뿐만 아니라 태일섬유, 아담재팬의 후원으로 치러졌다. 단식 2팀, 복식 1팀 총 4명이 한 팀을 이뤄 각 학교별로 2팀씩 출전한 이번 대회는 단식 20점 단판 토너먼트, 복식 15점 스카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전력 평가에서 27점 이상의 고점자를 다수 보유한 서
1928~19611년에 한 번 3쿠션의 세계 챔피언을 결정하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는 지난 1928년 처음 시작되었다. 당시 UIFAB(Union Internationale des Federations d’Amateurs de Billiard)가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를 개최했으며, 1928년 5월 9일에 프랑스 랭스에서 제1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당시 유럽의 정상급 보크라인 선수였던 에드몬드 소사(터키)가 애버리지 0.552로 원년 챔피언에 올랐다.다음해인 1929년 6월 10일에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제2회 세계3쿠션선수권대
대한당구연맹 회장을 맡은 지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체육인으로서 본 당구계의 모습은 어떠했나?지난 4년간 당구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당구가 스포츠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제들에 대해 당구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당구 종목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당구경기장에서 선수와 관계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보람된 4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임기 중에 당구계는 사상 최악의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전 세계적으로 경
에디 멕스(벨기에·47)가 3쿠션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2015년부터 바뀐 UMB 랭킹 시스템을 통해 멕스는 새로운 세계 랭킹 1위가 되었다.지난해 토브욘 블롬달, 프레데릭 쿠드롱, 최성원에 이어 4위에 머물렀던 멕스는 항상 꾸준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멕스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2006년과 2012년 두 번이나 챔피언에 올랐고, 월드컵에서도 다섯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벨기에 챔피언은 2004년 이후 일곱 차례나 차지했지만, 유럽 빅4의 아성을 대표하는 쿠드롱을 넘어 정상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그
당구는 어떤 종목보다도 예민한 스포츠다. 선수가 멘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종목이다. 시합에서 멘탈이 무너지면 아무리 실력 차이가 나는 상대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이기기 어렵다.지금까지 평생 당구만을 위해 살아왔던 당구 경기인들은 후배 선수에게 이구동성으로“멘탈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당구라는 스포츠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이유는 바로 멘탈이라는 것 때문이다.당구는 국제대회 원정에 대한 부담이 크다. 현지의 시차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합을 제대로 치를 수 없다.지난해 10월 터키 시놉에서 열린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에
(주)허리우드의 홍용선 대표이사는 올해로 취임 만 3년이 되었다. 홍 대표이사는 1994년 허리우드에 입사하여 올해로 21년 동안 허리우드의 성장과 한국 당구의 성장 과정을 이끈 주역이다. 특히 당구계에 유례 없는 불황이 시작된 어려운 때에 대표이사를 맡았지만,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했다.덕분에 허리우드는 내수 시장의 혹독한 침체 속에서도 신제품 개발을 통한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여 한껏 기지개를 켰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크게 줄어들어 힘든 상황이었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당구용품 브랜드로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지난 호 과 인터뷰했던 이신영 선수에게 기업체의 후원 제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해 진실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를 본 기업체나 개인이 선수에 대해 후원을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이번에 이신영 선수는 인터뷰에서 여자 3쿠션 선수로서 자신의 포부 등을 당당하게 밝혔고, 이신영 선수를 높이 평가한 (주)크로니아이티(대표이사 이해관)에서는 지난 1월 28일 후원협약 체결식을 맺고 올해부터 연간 4천만 원의 후원을 하게 되었다.IT 보안 솔루션 개발 업체 중
당구가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에 도전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에 도전했지만, 개최국에 종목 채택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스누커 강국인 영국은 당구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지 못했다. 얼마 전 IOC는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에 정식종목 채택 권한을 부여했다. 이것은 가라테(공수도)와 야구&소프트볼의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포석으로 점철된다. 그런데 당구가 그들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구의 첫 올림픽 정식종목 도전, 과연 가능할까?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스쿼시 등의 라켓을 사용하는 라켓 스포츠에 비해
올해 열려야 할 세계3쿠션선수권대회가 아직도 개최국이 결정되지 않고 있다. 88년 전통의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는 20년 만에 개최가 불투명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올해는 어떤 국가에서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을 터, 이쯤 되면 기적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UMB(세계캐롬당구연맹, 회장 장 클라우드 듀퐁)에서 주최하는 2015년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개최지가 아직도 선정되지 않고 있다. 연 1회 개최돼야 하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올해 반드시 열려야 할 대회의 개최지를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불사조’ 최성원(39·부산시체육회)이 3쿠션 세계 랭킹 공동 1위에 올랐다.이것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한국 선수가 3쿠션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최초의 기록임과 동시에 30대의 나이에 톱 랭커에 오른 몇 안 되는 선수 중에 최성원이 당당히 이름을 올린 대기록이다.관록 있는 선수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3쿠션의 특성상 20~30대의 젊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더군다나 토브욘 블롬달, 프레데릭 쿠드롱, 딕 야스퍼스, 다니엘 산체스, 에디 멕스, 마르코 자네티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철벽처럼 막아
후줄근한 차림에 지저분한 수염, 며칠은 감지 않은 듯해 보이는 머리까지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결코 눈치채지 못한다. 마치 ‘포켓볼 황제’로 불리는 필리핀의 에프런 레이즈와 비슷한 경우다.동네 아저씨 같은 행색으로 포켓볼 클럽이나 경기장에 나타나는 레이즈처럼 그는 항상 수수한 차림으로 편하게 사람들을 만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들의 행색은 서구권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 때문에 필리핀 사람들은 다 저렇게 지저분한 것 아니냐는 선입견이 들게 할 정도다.그러나 그것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행색에 불과하다.
이번 대회는 당구를 좋아하는 젊은 인재들이 주최하는 사상 첫 번째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다.지금까지와는 다른 참신한 포맷으로 대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올해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던 세계3쿠션선수권대회가 당구 전문 인터넷방송사 코줌(www.kozoom.com)의 주최로 오는 12월에 열리게 되었다.그동안 최소 2~3년 전에는 결정이 되었어야 할 세계선수권대회 개최지가 해당연도까지 발표되지 않아 주관단체인 UMB(세계캐롬당구연맹)의 행정력 부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한데, 자
2014년 3쿠션 세계 챔피언 최성원이 UMB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145년 3쿠션 역사를 뒤바꾸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2010년 10월 20일, 최성원이 처음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 슬루이스낄에서 열린 2010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다.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한다.5개월 뒤 최성원은 세계를 놀라게 하는 첫 번째 금자탑을 세운다. 2011년 3월 28일, 그는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에서 세계 톱 랭커들을 상대로 ‘당구 역사상 가장
지난 22일 오후 3시 05분, 불의의 사고로 우리는 가장 큰 별을 잃었다. 김경률 선수는 한국 당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당구는 없다. 단언컨대 한국 당구는 ‘김경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김경률 이전의 한국 당구는 성장통을 앓는 미생의 스포츠에 불과했지만, 김경률 이후의 한국 당구는 완전한 스포츠로 거듭났다. 이렇듯 그는 120년의 불행한 역사를 지닌 한국 당구를 송두리째 뒤바꾼 선구자다.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해 오랜 세월 피땀 흘린 한국 당구의 꿈을 현실로 이뤄준 이가 바로 김경률 선수다.
당구선수가 되기 위해 지난 2003년 경남 양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경률 선수는 줄곧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2012년 결혼 후 아내가 딸을 출산하자 지난해 4월 서울 용산으로 거처를 옮겼고, 이번 명절을 맞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부모님댁을 찾아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냈다.명절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 그는 저녁 6시 인천의 한 당구클럽에서 동호인들과 게임을 쳐주기로 했다. 아내와 딸에게 먼저 서울로 올라가고, 자신은 저녁에 올라가겠다고 했다. 아내와 딸을 배웅한 그는 다시 부모님댁으로 돌아왔
2015년 2월 22일은 한국 당구의 가장 슬픈 날이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우리는 잃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잃었다. 그의 죽음을 아직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강화의 한 추모공원에 그를 안치하고 돌아온 지금 이 순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김경률 선수를 보내는 그의 가족, 전 세계의 당구인, 당구팬들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그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정말 보내고 싶지 않아서 끝까지 눈물도 참아보려 했다. 액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