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트남 호찌민에서 있었던 당구계의 세 단체 'PBA(프로당구협회)-UMB(세계캐롬연맹)-KBF(대한당구연맹)'의 미팅 내용이 UMB의 발표로 알려졌다.
지난 1일 UMB가 홈페이지에 이날 회의 상황이 담긴 자세한 브리핑과 함께 PBA 측을 비판하는 일방적인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PBA도 이날 회의 직후 내용을 본지에 전달했지만, 엠바고를 요청해 전달해 관련된 사안을 바로 공개할 수 없었다.
PBA가 5월 27일에 전달한 회의 내용과 UMB의 6월 1일 공식 발표는 다소 온도 차가 있었다.
PBA-UMB-KBF 간 삼자간 회의에 UMB는 왜 상석에 앉았을까
가장 먼저 논쟁이 시작된 것은 UMB 파룩 바르키 회장이 회의 시작과 함께 테이블 상석에 앉은 부분이다.
PBA가 바르키 회장에게 'Our Sports'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이유는 UMB의 선수에 대한 징계가 유효한 상태이기 때문에 PBA와 UMB 두 단체의 목적성이 다르다는 것.
PBA를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이희진 대표는 "징계를 풀고 당구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는 시기에 그때 가서 'Our Sports'라고 말하고, 지금은 PBA 스포츠와 UMB 스포츠로 각자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의장처럼 상석에 앉아 있는 바르키 회장에게 자리를 옮겨서 같은 위치에서 회의를 하도록 요청했던 것.
KBF 박보환 회장을 옆으로 밀어내고 이희진 대표 정면에 앉은 바르키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에서 인정하는 단체는 UMB와 KBF이며, PBA는 IOC나 어떤 내셔널 올림픽위원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했고, 박보환 회장도 "KBF만 한국 내에서 유일하게 공인 연맹이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서 이희진 대표는 "PBA도 한국 정부의 인준을 받은 프로스포츠 단체"라고 맞받아치며 "아마추어 스포츠 중에서도 올림픽 멤버라는 단어를 쓰는 국제연맹은 UMB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데 UMB는 올림픽 종목의 하이클래스 단체도 아니고, 월드게임에 참가하는 로우클래스인데, 이를 벗어나려면 일단 선수들의 징계부터 풀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바르키 회장이 "PBA가 제안을 주면 검토해서 알려주겠다"고 해서 이희진 대표가 "PBA는 제안할 게 없다"고 답한 것이라고 전해졌다.
앞서 PBA는 여러 차례 선수들 징계를 풀라고 요청한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기 때문에 UMB 발표처럼 놀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제안에 대해 계속 이야기가 오가며 이희진 대표는 "서로 입찰하듯이 날짜와 시간을 정해 놓고, 양측에서 똑같이 제안서를 제출해 보자"고 했고, 바르키 회장은 "우리는 이사회와 대의원이 있어서 그런 상황이 연출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희진 대표는 "회장에게 그런 권한도 없는가?"라고 반문하며 "UMB 역시 우리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할 게 많을 텐데, 그것이 준비가 안 되면 서로 상생할 자세가 안 돼 있는 거다"라고 직설적으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PBA는 한국 정부에서 인준한 프로스포츠 단체... "무례하다" 표현은 결례
이러한 논쟁은 UMB가 PBA를 KBF처럼 산하에 놓고 건의를 받으려는 듯한 잘못된 태도에 있다는 시각이 많다.
UMB는 지난 1일 발표에서 '건설적인 회의 진행을 위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지만, 실상 두 당사자 간의 논쟁은 테이블 상석에 앉은 바르키 회장의 태도와 PBA를 공적 단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스포츠 외교적인 측면에서 결례를 범하면서 필연적으로 의견 다툼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UMB가 먼저 엠바고를 깨고 회의 내용을 공개한 부분에 대해서도 한 관계자는 "회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할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당구계의 관심이 큰 만큼 양자 간에 사전 교감을 거친 후에 공개하는 것이 맞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게다가 PBA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이희진 대표에 대해 "무례하다"라는 표현을 쓴 것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UMB의 주장과는 달리, PBA와 KBF 모두 한국 정부 문화체육관광부의 최종 인가를 받은 단체다.
다만, PBA는 프로스포츠 단체, KBF는 아마추어 스포츠 단체로 성격이 다를 뿐이고, 따라서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PBA와 현재로서는 관계가 없는 단체다.
아마추어 단체인 UMB와 KBF는 당연히 올림픽 단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만, 올림픽 단체인 IOC나 KOC는 PBA를 단체로 인정하거나 말거나 할 권한이 없다.
이번 UMB 발표를 접한 복수의 관계자들도 "이날 회의에서 PBA 측 이희진 대표가 상석에 앉은 UMB를 내려오게 한 것은 당연하다"며 "UMB는 한국 당구시장에 기대서 성장한 단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PBA는 권리를 잘 행사한 것"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베트남에 대리전쟁? 거짓말쟁이?... 이제 베트남 시장으로 옮겨 간 싸움
UMB가 마지막 부분에 발표한 "기밀 유지 계약으로 현 단계에서 언급할 수 없는 특정한 사안"은 올해 베트남에서 열리기로 한 양 단체의 대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PBA는 곧 개막하는 2023-24시즌 투어 중 2개 대회를 베트남에서 개최하기 위해 준비 중이고, UMB 역시 5월에 열린 3쿠션 당구월드컵에 이어서 내년에는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를 호찌민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UMB는 "이희진 대표는 무례하게도 바르키 회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발표하면서 양 단체 간의 논쟁이 심화됐고, 미팅의 성과가 없었던 원인을 PBA 측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러한 UMB의 발표는 사전에 PBA가 회의 직후에 전달한 내용과 차이가 있다.
당시 이희진 대표는 "왜 호찌민에서 사람들에게 PBA 대회를 절대 베트남에서 대회를 못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가"라고 따져 물으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을 베트남에서 대리전쟁 시키려고 하는가? UMB에 책임이 있는 문제를 베트남당구연맹에 전가하려고 하는가? 나중에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그러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바르키 회장은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 호찌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PBA를 배척하고, IOC와 UMB를 따르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희진 대표는 다시 "내가 들은 것과 다르다. 그게 말이 되는가"라고 반문하자 바르키 회장이 "나를 못 믿는 거냐. 내가 지금 거짓말하는 것 같은가?"라고 말해서 이희진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거짓말 같다"라고 답변한 것.
이후 바르키 회장은 회의 테이블에 서류 뭉치를 던지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PBA 측은 회의 마무리에 대해서도 UMB와 다르게 전달했다.
PBA는 "같이 웃으면서 나왔고, 바르키 회장도 '내일 아침에 시간이 된다면서 아무 때나 이야기하자'라고 말해 이희진 대표 역시 '내일 아침에 또 만나자'라고 이야기한 뒤 한참 후 메신저를 통해 '유럽을 다녀와서 보자'고 바르키 회장이 연락해 와서 '그렇게 하자'고 답장을 보냈다"라고 전했다.
PBA, 회의 후 하노이로 이동해 베트남문화예술총연맹과 협약 체결
이처럼 회의 내용이 UMB 발표를 통해 국내외 언론에 상세한 내용이 공개됐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결과적으로, 양 단체의 이번 회의 결과를 UMB가 일방적으로 공개하고 결례적 표현을 사용해 발표하면서 오히려 적대적 상황을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희진 대표는 회의 직후 하노이행 비행기를 타고서 이튿날 베트남 조국전선 산하 공산당의 사상을 담당하고 있는 문학예술총연맹과 계약을 마쳤다.
이번 협약은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와 베트남의 공산당중앙위원회가 적극 협력하기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회의에서 나온 이희진 대표의 항의는 "PBA가 베트남 당국과 협약하는 것을 막기 위해 UMB는 베트남당구연맹측에 압박을 하고 있다"라는 주장이다.
UMB가 이를 두고 "세계3쿠션선수권대회를 스케줄에서 빼겠다"라는 압박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이라면 크게 비난받을 만한 일이기 때문에 진위는 알 수 없다.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희진 대표는 "바르키 회장이 PBA에 관련된 정책을 공유하는 것에 의지가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이 알려질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PBA는 오는 6월 11일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럽당구연맹(CEB)과 만날 예정이다.
CEB와 미팅 결과에 따라 PBA에서 요청한 '선수 징계 해제'와 '포괄적 협력'에 관한 방향이 세워질 것으로 PBA는 내다봤다.
유럽에서도 바르키 회장의 연맹 운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CEB가 PBA와의 미팅에 바르키 회장의 참석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암스테르담의 미팅 결과가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