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미국의 억만장자 로버트 머서의 후원으로 그의 저택에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세계적인 선수들을 초청해서 개최한 '맥크리리 3쿠션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 당시 필자를 만났던 머서 측 핵심 관계자는 이 대회 직전 머서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누군가를 만났고, 그 시간의 대화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지난 2018년 미국의 억만장자 로버트 머서의 후원으로 그의 저택에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세계적인 선수들을 초청해서 개최한 '맥크리리 3쿠션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 당시 필자를 만났던 머서 측 핵심 관계자는 이 대회 직전 머서가 저녁식사 자리에서 누군가를 만났고, 그 시간의 대화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프로당구(PBA) 투어의 다음 시즌은 당구 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팬들이 PBA 무대에서 보고 싶어 했던 톱 플레이어들이 여러 명 우선등록선수로 프로에 진출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산체스(에스와이)와 세미 사이그너(휴온스), 무랏 나시 초클루(하나카드), 뤼피 체넷(튀르키예) 등 유럽의 톱플레이어들이 우선등록선수로 선발돼 프로당구에 데뷔하게 됐고, 한국의 최성원(휴온스)과 이충복(하이원리조트), 한지은(에스와이) 등 ‘대어’들이 대거 프로행을 택하면서 더 풍성한 잔치가 열리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 선수들은 이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먼저 프로에 데뷔한 여러 선수들이 PBA의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습니다. 과거 PBA에 우선등록선수로 선발됐던 조재호(NH농협카드)가 지난 시즌에 투어 우승 2회와 월드챔피언십 우승으로 총 4억2250만원의 상금을 받았는데, 2021-22시즌에도 프레데릭 쿠드롱(웰컴저축은행)이 상금으로만 5억650만원을 받았으니까 PBA 톱랭커 선수는 매년 당구 역사상 최고 수준의 3쿠션 상금을 받아가며 노력과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당구를 치는 이유가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프로는 숫자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어떤 기록을 세우고 몇 번 세계대회를 우승하는 그런 숫자 말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단순히 숫자에 머문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돈입니다. 축구, 야구, 골프 등 잘 나가는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자신이 세운 숫자의 가치를 연봉과 상금으로 증명합니다. 만약에 그들의 숫자에 가치가 증명되지 않으면, 누가 그 선수를, 그 스포츠를 주목하겠습니까. 

프로당구가 시작되면서 당구선수도 이제는 돈으로 선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PBA 이후 3쿠션 당구계의 변화는 선수가 단순히 억대 상금을 받는다는 것을 넘어서 선수의 땀 흘린 성과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체계화됐다는 것에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당구선수들은 큰돈을 벌지 못해도 불평불만 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구계는 여태 연맹체와 용품업체만 돈을 벌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만큼 돈을 버는 것을 두고 아무도 뭐라 할 순 없습니다만, 순수한 의도를 이용하려고 하는 당구계에 만연한 행태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의도를 포장합니다. ‘선수’에게 희생을 강요해 그렇게 커진 당구계의 구조로 자신은 부와 명예를 축적하면서 정작 저변을 만든 ‘선수’에게는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는 시간과 열정을 다 바쳐서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면서도 ‘선수’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경계합니다. 

선수들의 가치를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에 제대로 주려고도 하지 않는 행태, 앞에서는 위로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선수들에게 많이 돌아갈수록 비용이 많이 나가고, 또 통제가 어렵다고 불평하는 이중적인 모습. 당구계에 오랜 시간 몸담은 사람이라면 “선수들 머리가 커지면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봤을 겁니다. 창피하지만 PBA 이전에 당구계가 처한 환경이었습니다. 언론 입장에서 이런 환경을 바꾸려고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참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몇 년 전에 3쿠션 역대 최고 상금을 걸고 미국에서 개최됐던 ‘맥크리리 3쿠션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는 우승상금이 무려 10배 가까이 축소된 대회입니다. 이 대회를 후원한 미국의 억만장자 로버트 머서가 대회 직전까지 우승상금으로 100만달러를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선수가 100만달러의 상금을 받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결국, 우승자인 쿠드롱은 15만달러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머서가 구매한 당구대 한 대 가격이 20만달러를 웃돕니다. 당시 대회를 주최했던 미국 측 핵심 관계자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실소를 지었습니다. 우승상금보다 당구대 한 대 가격이 더 비쌌던 이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대회 개최 직전에 ‘선수 통제’와 ‘타 대회 형평성’ 두 가지 논리로 머서를 설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머서와 그의 미국 측근, 연맹 관계자 2명이 참석했습니다. 연맹 관계자는 선수들이 상금을 많이 받으면 통제가 어렵고, 상금이 커지면 당구대회 개최가 어렵다는 논리를 펼쳐 머서에게 상금을 낮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폰서인 머서는 60만달러 선에서 개최하기를 원했는데, 연맹 측에서 10만달러 수준을 고집해서 머서가 매우 불쾌했다고 합니다. 맥크리리 대회가 끝난 이후 그 머서 측 관계자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너무 황당했고, 나도 머서도 모두 실망했다”라고 말했습니다. 

PBA가 출범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모든 선수가 프로 투어를 뛰고, 또 투어 개최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완전체였다면 어떤 역사가 기록됐을까요. 우리가 프로당구를 통해 비전을 본다는 것은, 그것이 돈으로 가치가 증명되는 ‘프로’이기 때문입니다. 당구의 프로화는 선수와 무대의 성장을 필두로 모든 당구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입니다. 지금 4년 동안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안팎의 불안정한 당구계 내부 상황 때문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매 시즌 PBA의 성장과 함께 당구의 가치는 상승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선수가 프로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힘 있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를 받는다면 이런 모습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진 곳이라면 당연히 기대할 만한 비전이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선수라면, 어느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월간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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