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과 세계캐롬연맹.

두 단체가 정면으로 충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지저분한 흙탕물은 벌써부터 사방으로 튀고 있다.

세계당구를 대표하는 거대 단체의 발언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수준의 비루한 거짓 선전이 버젓이 나오는가 하면, 아무런 죄 없는 애꿎은 선수들을 겁박하여 꽉꽉 억누르려 하거나 일순의 사탕발림으로 일부 선수들을 살살 회유하려는 시도도 이미 나왔는데, 어쩌면 그렇게 내놓는 수마다 하나같이 악수들만 딱딱 골라서 두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모두 다 당구의 숨통을 조일 자승자박이요, 당구의 앞길을 막을 자충수들뿐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분쟁이 끝까지 계속해서 이런 진흙탕 싸움으로 흘러버린다면, 아픈 진통을 겪은 보답으로 조금이나마 생산적인 진전을 이루기는커녕 결국에는 당구인 모두가 곤경에 빠지고 너나없이 함께 망하는 불행한 결과만 불러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캐롬연맹 UMB는 정복자, 제국의 황제가 아니다. 오직 국제연합 UN과 같은 협의체 조직일 뿐이며 당연히 그에 해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UN이 그러하듯이 각국에서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그것이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지 각국이 이루는 발전의 열매를 자기 조직의 소유라고 우기거나 그걸 가지겠다고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빌리어즈 자료사진


UMB, "마을이 발전하려면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해"
 

이것이 분쟁에 임하는 세계캐롬연맹(UMB) 주장의 핵심이다.

그동안 UMB는 대규모 세계당구대회의 개최 횟수를 국가별 1회로 제한해 왔는데, 캐롬 당구가 그렇게 길고 혹독했던 침체기를 벗어나 한창 탄력을 받으며 발전하고 있는 마당에 하루라도 빨리 큰 대회가 늘어나면 좋은 일이지 대체 왜 국가별 1회 개최라는 답답한 규정을 내세워 당구발전을 꽁꽁 제한하느라 고집을 피웠던 걸까.

물론 균형발전이니 뭐니 하며 내세우는 구실이야 있었지만, 내막으로는 아마도 다들 헤아리고 있는 그 이유, - UMB에게는 '당구계의 왕초 자리'라는 지위가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전쟁이 끝난 후 다리 밑에서 앵벌이 거지패를 꾸렸던 왕초에게는 애들이 쑥쑥 자라서 언젠가 자기를 무시하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듯이, 배고팠던 종목을 거머쥔 '왕초 UMB'에게도 각국의 당구가 쑥쑥 발전하고 있는 게 한편으로는 큰 걱정거리도 던져 주었으리라.

그래서 그렇게 고집을 피웠을 것이다. 당구의 발전도 딱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좋고, 만일 자신의 왕초 자리가 흔들릴 정도로 당구가 발전하려 한다면 그것을 심지어 가로막고 방해까지 하고 싶을 지경으로.

이것이 진실이었다고 본다.

당구가 왜 이렇게 시원스레 발전하지 못하고 거북이걸음만 되풀이하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까지 그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던 하지만 당구인이라면 누구나 그 존재를 느끼고는 있었던 답답함과 무력감의 원인에는, UMB의 바탕에 찐득찐득하게 깔려있던 이 추레한 마인드 '다리 밑 앵벌이 거지패 왕초의 마인드'가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사의 순리를 막을 수는 없다. 거지패의 애들도 언젠가는 자라는 것처럼 장래성 있는 종목이라면 그것도 언젠가는 성장하기 마련이다.

캐롬 3쿠션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진군은 한국이 이끌었다. 선수들의 실력도, 방송사를 비롯한 각종 인프라도, 용품산업의 수준도, 촘촘하고 강력한 동호인 네트워크도 모두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선도적이다.

그리고 한국이 주도한 새로운 3쿠션 문화의 우렁찬 기세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동남아에 확산되고 있으며 대양을 건너 중남미 등으로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이 이끌었으며 이제는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당구 발전의 기세에 응원하며 한껏 힘을 더하는 게 아니라, 내심 '왕초의 지위'가 걱정되어 당구 발전의 속도를 오히려 늦추려 했던 조치가 바로 국가별 세계대회 1회 개최의 규정이었다는 것.

이것 때문에 고민하던 UMB가 앞으로도 계속 왕초의 지위를 연장시켜줄 묘책이라 여기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으니,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규정이다. 한국 땅에서 한국의 스폰서들이 낸 자금으로 대회를 열지만, 그에 수반하는 권리와 수익은 근본적으로 UMB의 것이라고 알아라. 대리인을 통해 꽂은 빨대로 쏙쏙 뽑아가겠다. 베트남 땅에서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모두 그렇게 하겠다. 세계 당구의 발전을 위해서"

참으로 해괴한 궤변이다. 마을이 발전하려면 돈과 권리를 내가 모두 가져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누가 이걸 마을 이장님의 말씀이라 하겠는가. 비적이나 날강도의 터무니없는 협박일 뿐이지.

각국에서 열리는 당구대회를 통해 각국의 당구단체, 각국의 선수, 각국의 당구방송사, 각국의 용품업자, 각국의 당구 광고업자들이 고루 만족할 수 있어야 각국의 당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 UMB가 권리를 독점하고 수익을 가져가야 각국의 당구가 발전할 수 있다니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행여나 누가 알까 부끄러운,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고 천박한 발상이다.

고용복지와 사회적 기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세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명색이 세계캐롬연맹이라는 곳에서 거짓 명분을 내세우며 퀴퀴한 곰팡이 냄새만 피우는 원시자본주의의 약탈적 발상에나 기대어 쥐꼬리만 한 권세를 지킬 생각만 하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UMB가 내세우는 저 논리대로 세계당구가 재편된다면, UMB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며 왕초의 지위를 유지하는 대신, 당구 종목은 다리 밑 앵벌이 거지패 수준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생각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자력으로는 그게 안 된다면 대한당구연맹과 한국 선수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명분과 힘으로써 결연히 대항하고 정의를 강제해야 한다.

세계캐롬연맹 UMB는 정복자, 제국의 황제가 아니다. 오직 국제연합 UN과 같은 협의체 조직일 뿐이며 당연히 그에 해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UN이 그러하듯이 각국에서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돕고, 그것이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지 각국이 이루는 발전의 열매를 자기 조직의 소유라고 우기거나 그걸 가지겠다고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에서 각 시도연맹에 내려보낸 '한국 선수의 세계당구대회 출전 금지' 공문.


KBF, "전쟁을 해야 하니 너희들은 내 노예가 되어라"


아직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단초들로 추정할 때 UMB와 분쟁에 임하는 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KBF)의 기조가 선수들에 대한 강압적 지배력을 더욱 확대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KBF가 낸 공문에 따르면 지금 UMB와 분쟁하고 있는 대회뿐 아니라 그 외 국내의 여러 층위의 대회들에 대해서도 선수들이 반드시 사전승인을 받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고지하고 있다.

최근 모 지역연맹에서는 대회를 열려면 마치 통행세처럼 일정 비율씩 발전기금을 내라는 통보를 했었다. 그리고 KBF는 포르투 3쿠션 당구월드컵 이후 세계당구대회에 한국 선수들의 참가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각각의 사안별로 모두 까닭이 있겠지만, 위 내용들 모두가 선수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일방적이며 논리적으로도 부당하고, 소통을 배제한 억압조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KBF가 혹시라도 이 부분을 가볍게 여겨서 선수들로부터 공감대와 연대의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당구의 미래가 걸린 이번 분쟁은 100% UMB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 분쟁의 승패 열쇠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KBF는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 그들이 분쟁에 참여하여 힘을 더해야 하는 확실한 명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분쟁에서 왜 KBF가 이겨야 하는지, 그 후에는 한국당구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이 세계당구의 발전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선수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등에 대해 선수들과 가리고 덮는 것 없이 사안별로 쟁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진솔하게 소통해야 한다.  

지금은 강력한 명분으로 선수들의 협조를 구하며 공동전선을 구축할 때이지 쉰 냄새 풀풀 나는 구태의 권위를 내세워 선수들을 억누를 때가 아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침략을 당했을 때는 기존의 노비문서조차 불태워 없애면서 의병을 모집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빌리어즈>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 김태석(레이아웃 3쿠션 L3C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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