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과 세계캐롬연맹(UMB) 사이의 분쟁에 대해 필자가 기고했던 칼럼 2편의 요점은,

▲ 당구계가 이미 세계적인 성장기의 좋은 기회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명하달의 통치구조’로 운영되고 있어서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으니 ▲ 문제 해결의 마스터키를 쥐고 있는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분쟁 사태에 대해 칼럼을 쓰기로 할 때부터 마음에 조금은 부담이 있었다.

"말은 맞지만 이상일 뿐이지 현실은 달라",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다 하는데 괜스레 참견한다" 등 여러 부류의 뒷말만 잔뜩 듣기 십상이고, 아마도 내용에 공감하는 사람조차 현실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적극적으로 지지하긴 어려울 테니 결국에는 긁어 부스럼만 될 수 있다는 부담이었다.

하지만 써야 했다. 그것도 바로 지금, 이 시기에 써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당구계의 사람들, 나처럼 당구를 아끼고 열정까지 가득한 그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바닥 모를 늪과 같은 상황에 빠져서 오래도록 고생을 하고 있었는지.

과연 어떻게 해야 이 지긋지긋한 늪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가 같은 당구인으로서 진정한 동지애와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 밝혀야 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걸 공론화하여 같이 의논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당구계를 지켜보니 현재 당구계의 상황에서는, 단언컨대 '통치구조'가 악의 축이다.

개척기에는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가진 통치구조가 바람직한 면이 있다. 그러나 성장기에도 통치구조가 이어지게 되면 '승자독식의 폐해'라는 부작용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 해악이 너무 커서 십중팔구 당구의 성장판 자체를 잘라 없애며 당구를 영영 나락으로 추락시킬 위험성까지 있을 정도다.

각급의 당구단체들이 '통치구조'로 계속 운영될 경우에 벌어지는 악순환은 이렇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여 당구단체를 장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권한을 독점하니 무슨 일도 할 수 있고 또는 반대로 당구계에 아무리 필요한 것일지라도 내가 싫으면 그걸 외면할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이렇다 보니 당구인들은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는 통치구조의 상위에 오르기 위한 조치들을 앞세워 고려할 수밖에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또는 우리 편의 힘이 강해지는 데에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구인들의 진실한 협력'이란 것은 그저 동화에서나 가능한 꿈같고 순진한 얘기로 무시될 뿐이다.

차마 내놓고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다들 속으로는 현재 상황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갈등과 투쟁의 상황"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나와 우리 편은 잘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상대나 상대편은 그러지 못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매사에 사람 좋게 처신하다가는 아무 때라도 억울하게 퇴장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서로를 의심하고 견제하는 처세술이 당구계의 맨 밑바닥에서부터 강력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만일 그가 확실한 우리 편이 아니라면, 누가 멋진 신제품을 개발해서 세계시장을 석권해도 마음껏 박수만 칠 수가 없다.

누가 기발하고 참신한 기획을 하더라도 섣불리 환호하면 절대로 안 되고, 그보다 먼저 뭐 하나라도 헐뜯을 게 없는지부터 확실히 따져두어야 한다.

혹시라도 그가 통치 권력에 나보다 더 가까워질 위험은 피해야 하니까. 이런 승자독식의 판에서는 어떻게든 생존부터 해야 하고, 앞으로 언젠가 내가 통치구조를 장악할 수 있는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여 가야 하니까.

당구인끼리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일에 대비해서 항상 서로의 발목을 꽉 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 바로 이것이 통치구조의 가장 큰 부작용이고 성장기의 당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다.

인간성이 못되서가 아니라, 당구계의 구조 자체가 사람들을 그렇게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당구인들로 하여금 서로 발목을 잡아당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서 당구가 탄탄하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이건 누구라도 바로 알 수 있는 거짓말이요 헛된 꿈일 뿐이다.

여기까지는 1개 국가에서 벌어지는 대략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무대를 세계로 넓히더라도 승자독식의 통치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은 마찬가지다.

무대에 오르는 등장인물의 사이즈가 개인과 그룹 단위로부터 국가별 단체로 커질 뿐이고, 전개되는 스토리는 매양 한 가지로 그게 그거다.

 

체계적인 분업이 낙원으로 가는 길

협치(governance), 분권형 관리체제는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다. 당구 이외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매일 매일 생활하면서 그 효율성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것들이다.

지휘자 역할을 하는 당구단체를 정점으로 해서, 당구계를 구성하는 주체들이 각자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분업구조와, 그에 짝을 이루는 분권구조'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선수는 멋진 플레이로 대중의 호응을 이끌면 되고, 심판은 경기의 매력이 제대로 살아나도록 진행하는 데에 진력하면 되고, 용품업자는 더 좋은 물건을 개발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구방송은 더 재미있는 중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만 하면 되고, 월간지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당구계의 개선점을 제시하느라 노력하면 되는 구조, 다시 말해서 당구계의 누구라도 "어떡해서든 실세나 실세의 친구라도 되어야 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내가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된다.
 

내가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부당하고 억울한 처사를 겪을 일이 없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당구계의 힘이 제대로 모이고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갈등'을 초래하는 통치구조를 깨끗이 떨쳐내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협력'을 배양하는 관리구조를 온전히 이루어야만 오늘날 당구계에 보물처럼 다가온 성장기를 제대로 키우며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이고, 그렇게 해야만 뒤늦게라도 당구산업을 골프처럼 크게 발전시킬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끝으로, 지금까지 거론한 '통치구조'와 '분권형 관리구조'라는 말이 매우 복잡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념을 정확하게 전하기 위한 용어일 뿐이고, 실제 내용만 추려내자면 아주 단순한 질문에 불과하다.

"누가 왕초가 되려나" 걱정으로 서로 의심하고 견제하면서 계속 가난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함께 깔끔하게 공동사업을 일으켜서 모두 부자가 되는 길로 갈 것인가.

늪 속에서 서로 발목을 잡고 뒤통수를 치면서 서로 미워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함께 저 푸른 초원으로 갈 것인가.

이 선택지에서 우리가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마스터키를 선수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명확하다.

이렇게 목표도 분명하고 주체도 명확하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방법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 관리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가"의 방법에 대하여 앞으로 당구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깊이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건초는 햇볕이 들 때 만들어야 하니까.

 

※ 외부 필진 칼럼은 <빌리어즈>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 김태석(레이아웃 3쿠션 L3C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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