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판이 커지고 있다. 당구의 미래를 두고 KBF(대한당구연맹)와 UMB(세계캐롬연맹)가 격돌하고 있는 빅매치 판에 이해당사자인 코줌도 드디어 참여했고, 프로시스템을 세워 당구계를 재편하려다 벽에 가로막혀 그동안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던 프로추진위원회도 합당한 등판의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분쟁의 판에 등장하는 선수가 늘어나면서 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도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는데, 상황이 흘러가는 추세로 볼 때 얼마 후에는 이 논란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누가, 무슨 주장을, 왜 하고 있는지' 구별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말이 많아지고 얽히면서 점점 꼬일 때에는, 더욱 더 깊이 파헤치며 논란의 중심을 향해 깊이 빠져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 현상을 큼직큼직하게 묶으며 단순화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혼돈의 늪에 빠지지 않고 주제를 계속 따라가며, '누가, 어떤 의도로,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으니까.    

 

공동번영의 열쇠는 '주권'이었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서 '국가와 국민이 함께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벌어진 일이다.

17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가가 성공하거나 승리하면 그건 결과적으로 왕족과 귀족들의 배만 불렸을 뿐이지 국민들 개개인의 번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며 착취하던 고대국가 시대에도 그러했고, 신분을 영지에 매어놓고 착취하던 중세봉건시대에도 그러했으며, 최저임금 노동자로 얽어놓고 착취하던 초기자본주의 시대에도 그러했다.

국가의 승리와 성공이라는 것은 대개 민초들의 삶과 거의 무관한 사건이어서 그것의 종착역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 자들만의 부귀와 영화였을 뿐이다.

이 길고 길었던 그들만의 통치구조, 지배구조를 마침내 바꿨던 것이 근대 민주주의였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이 휘몰아치며 근대 시민민주주의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나서야, 달리 말해서 시민들이 입법과 사법과 행정에 대한 권리를 직접 행사하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나라가 발전하면 사람들의 삶도 함께 발전하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라 따로, 백성 따로'였다가, 국민이 주권을 가진 후에야 '나라와 백성이 더불어' 좋아졌다는 말인데, 이러한 사정을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이렇게 된다.

1. 사람들이 합당한 권리를 가지면, 나라도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도 함께 발전한다.

2. 그 권리를 빼고 말한다면, 제아무리 달콤한 사탕발림일지라도 모두 거짓이다.

 

당구는 '새 시대'를 열 수 있다

당구는 어떨까. 이대로 쭉 가면 날로 발전해서 당구도 세계적인 스포츠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고, 그 열매는 당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기여하는 바에 따라 알맞게 배분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 전망은 어둡다. 조금 과장하자면, '지금으로서는 싹수가 노랗고, 영 아니올시다'라고 말해야 할 지경이다.

당구는 다양한 주체들이 힘을 모아서 함께 풀어가며 키워야 하는 스포츠산업이다.

따라서 당구가 제대로 발전하고 성장세 또한 꾸준히 이어갈 수 있으려면 당구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에 맞도록 그에 해당하는 권리를 각각의 주체들이 나누어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깝게도, 그리고 터무니없도록 부당하게도, 당구산업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그에 걸맞는 권리가 배분되어 있는 상황은 비정상적으로 몹시 왜곡되어 있는 실정인데, 특히 선수들의 경우가 가장 심각한 형편이다.

선수들은 당구산업에 기여하는 역할에 대해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주장하지 못한다. 그건 고사하고, 심지어는 선수들 자신의 신분에 대한 권리도 가지지 못한 상태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런 권리를 가져야겠다는 논의조차 꺼내기 어려운 통치구조에 눌려 고통을 겪고 있다.

역사책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오늘날 당구선수들이 처한 상황과 꽤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 그러니까 자신이 기여하는 역할에 걸맞는 몫을 주장할 수도 없었거니와 심지어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권리조차 주장하기 어려웠던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 사람들을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대국가의 '노예' 그리고 중세국가의 '농노'.

당구선수의 지위가 아직도 이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건 정말 아니다. 이렇게 시대에 맞지 않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한편으로는 옳지 않은 것이기에 고쳐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게 이미 당구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해물도 되어버렸기에 반드시 고쳐야 한다.

선수의 지위에 대한 합당한 개혁 없이는 당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는 '선수의 신분'에 대한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되는데, 그 내용은 전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다음의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압축된다.

"선수단체의 자체규정에 따라, 당구선수를 (1) 선발하고 (2) 관리하고 (3) 징계하는 권리"

위기와 격변의 시기를 맞으며 우리 선수들은 바로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KBF-UMB의 분쟁을 놓고 앞으로 쏟아져 나올 많은 주장들 중에서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판별하는 잣대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언뜻 보기에는 자기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만일 그의 주장이 선수단체가 선수의 신분에 대한 권리를 독점적으로 가져야 함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당구계 전체의 발전과 당구인 전체의 행복을 함께 이루도록 만드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마치 민주주의라는 열쇠로 인해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 함께 일어나게 되었듯이.    

그와 반대로 만일 선수의 신분에 대한 권리 이야기는 쏙 빼서 숨기려 들거나 혹은 갖은 구실을 내세워 부정하려 들면서, 자기 말대로 하면 앞으로 점점 대회가 많아진다느니, 상금액이 커진다느니, 선수협회에 수익의 얼마를 나눠준다느니 따위로 대충 봉합하려 한다면 그것은 전형적인 사탕발림의 농간일 뿐이며 나중에 아무 때라도 상황이 바뀌면 얼굴을 바꾸겠다는 속셈의 궤변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야말로 '선수들의 단결'이 필요한 때

선수들은 앞으로 전례가 없었던 여러 사건들을 보게 될 것이다.

거대 단체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당구계를 휘저을 것이고, 그에 따른 혼란이 격랑의 모퉁이를 휘감아 돌 때마다 유력자들은 각자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줄 세우기와 세 과시를 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많은 사건들을 낳고 부름으로써 결국 당구계 전체에 한바탕의 회오리를 몰고 올 것이다.

선수들은 이럴 때일수록 단결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그렇게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그 시간, 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할 바로 그 시간이다.

어느 길이 진정으로 당구의 발전과 당구인의 화합으로 가는 길인지, 누가 개인적인 욕심을 공공의 이름으로 포장하며 거짓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지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판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사사로운 인연이나 사적인 동기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전체 선수의 입장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단일대오를 유지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미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회오리바람을 맞고 있을 우리 선수들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당부하고 싶다.

앞으로 더 이상은 선수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하기에, 그리고 또한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당구 발전을 이루고 당구인 모두가 함께 행복한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에.

"선수선발, 관리, 징계권은 선수단체가 가져야 한다"

 

 

 

글 김태석(레이아웃 3쿠션 L3C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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