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리그 선발이 정말 간절했습니다. 전북 선수 중 저만 팀리그에서 뛰지 못했거든요"
이상대(42·웰컴저축은행)는 과거 전북당구연맹 선수 중 프로당구(PBA) 투어에서 가장 기대되는 선수였다.
그러나 프로 성적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슬럼프가 길어진 데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운영하던 식당마저 문을 닫으면서 투어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아마추어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김임권(웰컴저축은행)과 최원준을 비롯해 여자 선수 김민영(블루원리조트)까지 모두 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지만, 이상대는 슬럼프에 시달리며 투어 성적이 계속 좋지 않아 팀리그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다.
3년 차까지 총 18차례 개인투어에 출전해 16강에 3번 올라간 것이 전부였다. 가장 부진했던 두 번째 시즌이 끝난 후에는 큐스쿨로 내려가기도 했고, 3년 차에는 개막전과 마지막 투어에서 16강에 올라 겨우 큐스쿨행을 면할 수 있었다.
개인투어 성적이 뒤따라야 팀리그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처럼 그는 1부 투어에 생존하는 것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됐다.
그러나 4년 차인 지난 2022-23시즌에 부진을 털고 일어나 8차례 개인투어 중 준우승 1회와 8강 4회 등 5차례나 입상하며 마침내 팀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이상대는 지난 5월 23일 열렸던 '2023 프로당구(PBA) 팀리그 드래프트'에서 최강팀 웰컴저축은행에 2라운드 5순위로 지명됐다.
"드래프트 당일 지명되는 순간까지도 몰랐어요. 혼자 고민이 많았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페리당구클럽에서 만난 이상대는 모처럼 웃는 얼굴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 팀리그에서 하나카드 대체선수로 잠시 팀리그를 뛰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팀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팀리그 선발이 간절했다.
"원준이 형, 임권이 형, 민영이까지 전북 출신의 동료 선수들이 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게 부러웠어요"
"난 프로당구에 갈 거야. 두 번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이상대는 아마추어 시절에 10여 년 동안 전북을 대표하는 잔뼈 굵은 선수였다. 지난 2008년 선수 등록 후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인지도를 쌓아 어린 나이에 전북 대표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4년 '당구 레전드' 고 이상천 회장이 미국에서 돌아와서 대한당구연맹(KBF) 회장을 맡아 기획한 '당구를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당구투어'.
고 김경률, 강동궁(SK렌터카), 조재호(NH농협카드), 최성원(휴온스) 등 여러 선수가 이 투어를 통해 전문선수로 발전했는데, 이상대도 그중 한 명이었다.
"매번 큐를 잡고 대회에 나가 실력을 겨루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어느 순간 전북에서 가장 잘 치는 선배들과 경쟁하게 됐습니다. 다들 당구를 너무 잘 치더라고요"
전문선수로 등록하고서 얼마 후 이상대는 전북에서 임현성, 하경수, 최원준, 김임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톱레벨로 성장했다.
대회에 나가 경쟁하는 것을 10년 동안 반복하며 전북 대표 선수로 올라섰지만, 생계와 비전이라는 문제에 직면하면서 내리막이 시작됐다.
"모든 당구선수가 그렇듯이 당장 먹고사는 것부터 해결해야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족발집과 양고기집을 했어요. 아무래도 훈련량이 부족해지다 보니 성적이 떨어지게 됐습니다"
결국, 이상대는 내리막을 걸으면서 7~8년 동안 유지했던 전국대회 시드권까지 빠졌다. 그러다가 2019년에 출범한 프로당구(PBA) 투어 출범 소식이 들렸다.
"난 저기 갈 거야. 두 번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PBA 출범한다는 소식에 너무 좋았어요"
프로당구 첫 시즌에 이상대는 나름대로 적응을 잘했다. 모든 게 새로운 도전이었던 상황이었지만, 본선에 여러 차례 올라가며 과거의 모습을 찾은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에 코로나 사태로 음식점 문을 닫게 되면서 슬럼프가 다시 시작됐다. 2020-21시즌에 이상대는 단 한 번도 서바이벌을 통과하지 못하고 모두 1회전에서 탈락하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로 가게 문을 닫으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멘탈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같이 PBA에 온 원준이 형(최원준)은 개인투어 우승도 하고 팀리그에 들어가고 그랬는데, 나는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큐스쿨로 내려갔습니다"
세 번째 시즌을 앞두고 큐스쿨로 떨어진 이상대는 가게를 다 정리하고 전주에서 평택으로 올라와 힘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도약의 발판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연습했어요"
고비마다 만난 사파타와의 아쉬운 승부
이상대가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2년의 세월이 더 걸렸다. 그 과정에서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와는 아쉬운 승부로 얽혔다.
큐스쿨을 통과하고 1부 투어에 복귀한 그는 세 번째 시즌 개막전 16강에서 사파타와 처음 대결해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했다.
모처럼 살아나던 순간에 당한 뼈아픈 패배였다. 이상대는 이후 5차 투어까지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해 다시 큐스쿨로 내려갈 처지에 놓였다.
마지막 6차 투어에서 32강 이상 올라가야 겨우 1부에 잔류할 수 있었던 상황. 그런데 6차 투어 64강에서 사파타와 만나는 대진이었고, 이번에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었다.
사파타는 128강에서 성상은에게 패해 64강에 올라오지 못했다. 이상대는 64강과 32강전을 승리하고 큐스쿨행을 면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시즌 개막전에서 이상대는 사상 첫 8강에 진출했는데 상대가 사파타였다. 결과는 0-3 패배. 전 시즌 개막전 16강에서 당한 뼈아픈 패배가 재연됐다.
그러나 한 가지 달랐던 점은 인고의 시간을 거친 이상대가 더 단단해졌다는 것. 2차 투어에서 그는 사상 처음 준결승과 결승 관문을 넘어섰다.
"준결승에서 명진이 형(최명진)하고 벌인 승부가 가장 힘들었어요. 3-0으로 앞서 쉽게 이기는 줄 알았는데 3-3 동점을 허용했습니다. 7세트 승부는 많이 떨렸어요"
이상대는 결승에서 사파타와 운명처럼 또 만났다. 당시 사파타는 개인투어에서 5번째 올라온 결승전이었다.
오랜 시련을 이겨내고 4년 만에 결승에 올라온 이상대와 개인투어에서 결승전 최다 진출자인 동시에 4전 4패를 기록한 '비운의 제왕' 사파타. 두 선수 모두 승리가 절실했고, 승부는 아주 치열했다.
세트스코어 3-3, 7세트까지 이상대가 6:5로 앞서 있었는데, 사파타가 두 타석 연속 3득점으로 전세를 뒤집고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나간 혹독한 시간을 모두 털어버리기까지 단 5점을 남겨두고 이상대는 큐를 접었다. 결과는 너무 아쉬웠지만, 3차와 4차 투어에서 다시 8강에 연달아 진출하면서 이상대는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7차 투어에서 다시 한 차례 8강을 더 밟은 이상대는 네 번째 시즌에서 5차례 입상하며 시즌 랭킹 9위에 올랐다. 두 번의 슬럼프를 극복한 그가 몇 년 만에 올린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웰컴저축은행의 팀리그 우승을 위해 새로운 도전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낸 이상대는 마침내 팀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가장 강팀인 웰컴저축은행이 그를 선발해 다음 2023-24시즌에 팀리그를 뛸 수 있게 됐다.
"너무 감사했어요. 지명되는 순간까지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드래프트가 끝나고 뉴스를 통해 지명 소식을 들었는데, 힘들었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당구 황제'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이 이끄는 웰컴저축은행은 모든 프로 선수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드림 팀이다. 이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쿠드롱과 같은 팀으로 만나게 돼서 영광이고, 웰컴저축은행이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웰컴저축은행은 이상대와 함께 김임권을 영입해 다시 한번 우승 전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알려진 것처럼 두 선수는 전북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다.
"선발 소식을 듣고 임권이 형이랑 서로 축하하면서 한 시즌 잘해보자고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같은 팀에서 뛰게 된 게 신기하고 좋습니다"
이상대는 이제 프로에서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프로 데뷔 후 세 시즌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던 이상대는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한 끝에 모든 슬럼프를 극복하고 팀리그에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버티고 마침내 빛을 보게 된 이상대가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팬들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