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 사이그너 ⓒLEE WOO SUNG

7년 만에 그가 돌아왔다. 2007년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UMB에서 주최하는 모든 공식 대회의 출전을 보이콧했던 세미 사이그너가 얼마 전 돌연 복귀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당장 9월에 열리는 포르토 월드컵부터 출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지난 8월에는 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일주일간 한국 당구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바쁜 일정을 소화한 탓에 인터뷰는 일정 마지막 날 오후에 잡혔다.

두 시간 남짓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사이그너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했다. 7년이나 걸린 그의 이야기 속에는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은 단순히 터키와 사이그너 사이만의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비롯한 모든 세계 당구인들이 듣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일 듯하다. 지금부터 사이그너, 7년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당신은 세계 당구선수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당구선수 활동을 접었나?

나는 당구선수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당구선수로 남을 것이다.

‘당구선수 활동 보이콧’을 선언한 이후에도 난 단 한 번도 내가 당구선수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본 적이 없다. 언젠가는 그 무대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키우며 살아왔다.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선수의 성공이 없으면 그 종목은 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터키당구연맹 전 집행부 임원들은 선수들을 뒷전으로 내몰고 자신들이 앞에 나섰다. 그러면서 연맹을 스포츠 단체로 운영한 것이 아니라, 마치 개인회사처럼 운영했다.

연맹의 존재 이유인 당구와 선수가 아닌 마치 다른 목적(different thing)을 위한 회사처럼 말이다. 이것이 내가 보이콧을 선언한 이유다.
 

다른 목적이란 어떤 것을 말하나?

비즈니스다. 그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선수를 장악해야 했고, 그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선수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제거시키는 과정을 드러내며 자기들의 권력에 도전하지 말라는 암시를 주었다.

그 희생양이 내가 되었던 거다. 선수를 위한 스포츠 단체 임원들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굴복하느니, 나 스스로 당구를 포기하는 것을 선택한 거다. 그런데 내가 떠나가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동요했다.

집행부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했고, 그들에게 잘 보이면 국가대표가 될 수도 있다는 얄팍한 심리가 꿈틀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나를 마지막까지 터키 당구를 쇠락시키는 도구로 활용했다.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동안 터키는 정부에서 지원도 많이 받고, 월드컵도 매년 개최하지 않았나?

그들의 비즈니스일 뿐이다. 실제로 월드컵 이외에 터키당구연맹은 스폰서를 영입한 어떤 국내대회도 개최하지 않았다.

오로지 선수들에게 출전비를 받고 그것을 모아서 상금으로 돌려주는 그런 방식의 대회 운영이 전부였다.

그 속에서 그들은 10년 동안 계속해서 비즈니스를 해왔다. 이런 사람들이 터키 당구를 망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애써 외면하고, 침묵하고, 내가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연맹 집행부의 퇴진을 요구하며, 당구선수 활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월드컵에서 본 것을 2007년으로 기억한다. 터키당구연맹으로부터 징계가 있었나?

터키당구연맹은 나를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징계를 했다. 그 외에는 모든 월드컵에 출전할 수 있었다.

나는 2007년에 수원을 포함한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하겠다고 터키당구연맹에 신청했었다. 그런데 연맹에서는 어떠한 답변도 내게 들려주지 않았다.

자기들과 관계가 불편하니 출전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전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 임원들이 정말 당구를 사랑하고 터키의 당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다면, 선수의 출전조차 방해하는 이런 최악의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맹과 갈등은 2005년 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던데?

그렇다. 발단이 된 사건이다. 2003년과 2004년 나는 타이푼 타스데미르와 터키를 2년 연속 챔피언에 올려놓았다.

2005년에도 나는 타스데미르와 함께 몇 달 동안 대회를 준비했다. 매일 타스데미르의 클럽까지 40km가 넘는 거리를 두 시간 반 동안 왕복하면서 터키의 3연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회 며칠 전에 터키당구연맹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대회에 터키 랭킹 1, 2위를 내보낸다며 타스데미르하고는 같이 못 간다고 했다. 나는 당시 터키 랭킹 3위였다.
 

원래 국내 랭킹 1, 2위에게 출전권이 부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룰은 없었다. 그 당시 연맹의 행정력 부재로 터키 내셔널챔피언십을 개최하지 못했는데, 챔피언십 결과가 없는 랭킹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셔널챔피언십만 개최되었어도 나와 타스데미르가 1, 2위를 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나는 회장에게 디펜딩 챔피언을 한 번도 아니고 2년 연속했다는 점을 참작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타스데미르는 탈락했고, 나는 후보선수로 독일에 가게 되었다.

사이그너 ⓒLEE WOO SUNG

그 당시에 당신이 선수 선발권을 강요했다고 들었는데?

부탁이 강요로 둔갑한 거다. 터키 팀이 막상 1회전에서 탈락하고 나니 독일 현지에서부터 후폭풍이 몰려왔다.

그 와중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나를 타겟으로 온갖 거짓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내가 선수 선발권을 무리하게 요구했고, 과도한 금전적 문제를 요구했고, 독일에 있던 터키 당구팬들을 선동해서 연맹을 비난했고, 연맹에서 출전을 요구했는데도 거부했다는 등 여러 가지 거짓말로 나를 징계위원회에 회부시켰다.


독일에 있는 터키 당구팬들을 선동했다는 것은 무슨 내용인가?

독일에는 약 200만명의 터키 사람이 살고 있다. 그래서 터키는 독일의 가장 큰 커뮤니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터키 사람들은 당구를 좋아해서 자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많은 교민들이 경기장을 찾는다.

그런데 터키 팀이 탈락할 위기에 몰리자 현지에서 불만이 터져 나와 교민들이 회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타스데미르는 어디 있는 거며 사이그너는 왜 경기를 뛰지 않는거냐는 등 회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회장과 몸싸움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드난 육셀이 난 도저히 못 치겠다고 나한테 대신 치라고 했다.
 

육셀의 부탁은 당신이 거절했나?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육셀에게 그만 치고 나오라는 말을 할 수가 있겠나?

이런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서 징계를 하더라. 더 웃기는 사실은 그 사건 다음 해인 2006년에 나는 랭킹이 없었다.

이때 터키 랭킹은 타스데미르가 1위, 무랏 나시 초클루가 2위였다.

그런데 회장은 난데없이 랭킹이 없는 나와 3위였던 육셀을 터키 대표로 지목했고, 끝내 나와 육셀이 출전했다.

회장에게 룰을 보여달랬더니 그런 룰은 없다며, 자기 육감에 따라 보낸다는 웃지 못할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지만, 당시 나는 난생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는 것이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그런 연맹 측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

내가 유명세를 이용해서 연맹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소문을 퍼트려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믿었다.

동시에 터키 선수들 사이에서는 연맹에 잘못 보이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반대로 연맹에 잘 보이면 국가대표도 될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하는 선수도 있었다.

스포츠는 항상 정정당당한 것인데, 스포츠인이라는 사람들이 알량한 권력과 명예와 돈 몇 푼에 스포츠를 이렇게 죽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연맹 측의 마타도어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았나?

나는 내 인격과 명예와 모든 것을 걸고, 결코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유명세를 이용하여 연맹에 어떤 특별한 대우와 배려를 바란 적도 없고, 그들에게 존경을 요구한 적은 더더욱 없다.

나를 비롯한 모든 선수에게 정당한 대우와 올바른 행정을 해주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한 사람에 의해 터키 당구가 좌지우지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런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멀쩡한 선수가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심한 끝에 결국 2007년 보이콧을 선언하게 되었다.
 

너무 긴 시간 동안 당구선수 활동을 중단했는데, 개인적으로 손해가 클 듯하다.

나는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다는 결정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내가 그들에게 굴복하고 계속 선수활동을 했었더라면 지난 7년 동안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고, 성적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7년간 너무나 행복했다. 가수로 앨범도 내었고, 탤런트로 TV 시리즈에서 연기도 했고, 극장에서 원맨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강사와 이벤트 사회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돈도 많이 벌었고 인생 공부도 더 많이 할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다른 분야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볼 수 있었다.

내가 당구만 쳤다면 만나지 못했을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이그너 ⓒLEE WOO SUNG

7년 동안 당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변하지 않는 것 한 가지는 나는 당구선수라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당구선수라는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방향과 목적, 그리고 소소한 일상과 인생관까지도 모든 것에 큰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할 일이 더 많아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올해 말까지 25회의 강연이 예약되어 있고, 다양한 분야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그동안 당구계 밖에서 당구를 보며 느낀 점이 있나?

당구는 변화가 없다. 참 오래된 느낌이 든다. 항상 똑같은 월드컵 시리즈를 반복하고, 똑같은 오픈 대회가 반복되면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만한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전문가가 아닌, 전문성과 기획력을 가진 사람이 당구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런 전문가가 없다면 외부에서 자문을 구해서라도 당구를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포츠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중이 환영하고 관심을 갖는 스포츠에는 자본이 유입되기 마련이고, 그런 환경이 갖춰지면 당구는 성장하게 된다.
 

당구에 어떤 기획이 필요한지 생각한 것이 있나?

예를 들자면 선수들의 의상도 아주 오래전의 고전적인 모습 그대로를 이어가고 있다. 과연 이것이 현대의 스포츠와 맞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골프나 볼링처럼 충분히 당구도 스포티한 의상을 입고 경기를 할 수 있다. 오히려 경기력에 더 도움이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는 전통적인 당구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라는 인식을 갖기에 너무 답답하고 딱딱하다.

의상에 스폰서가 너무 작게 노출되는 점도 문제다.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대형 스포츠 의류업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의상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구가 스포츠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미디어다. TV에서 볼 수 없는 스포츠는 한계점에 도달한다. 당구는 어디서든 쉽게 몸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인 동시에 관전의 묘미를 가진 재미있는 스포츠다.

그런데 당구가 아직 스포츠성이 부족한 이유는 TV와 뉴스 등의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구선수들이 자주 TV에 나가고 뉴스에 노출되어서 당구가 어떤 종목이라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 당구 경기도 대중에게 자주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각 나라 연맹의 임원들이 할 일이다.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 몇푼 때문에 이런 임무를 저버리고 연맹을 개인 회사처럼 운영해서는 안 된다.


당구는 상업화가 되어야 하지만, 연맹은 상업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정확하다. 당구라는 종목은 분명히 상업화될 만한 기질을 갖고 있다. 대중과 미디어, 스폰서의 3대 요소가 결합되면 당구는 상업화에 성공할 수 있다.

여기서 대중이라는 것은 지금처럼 당구클럽에서 당구를 즐기는 대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구선수를 당구클럽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만으로는 상업화가 되지 않는다.

광의적인 의미의 대중과 미디어가 당구를 찾을 때 비로소 큰 기업과 같은 스폰서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당구선수로 7년간의 공백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일단 해봐야 아는 것이다. 7년 동안 큐를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신 있다. 다만 클럽에서 공을 치는 것과 정식 경기장에서 치는 것은 전혀 다른 게임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몸은 준비가 되어 있다. 내 나이가 50세인데, 운동을 열심히 해서 20대의 몸을 갖고 있지 않나? (웃음)


랭킹이 없어서 예선 라운드부터 뛰어야 하는데?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랭킹을 쌓으려면 한 2년 정도는 예선부터 뛰어야 한다. 앞으로 예선을 포함해서 모든 월드컵에 참가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어서 감각을 되찾으려면 더 많은 경기를 치러봐야 한다. 오히려 예선부터 뛰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부끄럽기는 하겠지만(웃음).
 

한국에는 얼마 만에 왔고, 어떻게 오게 되었나?

2009년에 드래곤프로모션 초청 이벤트로 방문한 것이 마지막으로 기억한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DS코리아의 오경희 대표가 한국 당구팬을 위해 한국에 와 달라고 부탁했고, 나 역시 세계 최강의 캐롬 강국인 한국의 당구를 다시 직접 체험하고 싶었다.
 

한국에 와서 어떤 시간을 보냈나?

주로 한국 당구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SBS ESPN에서 예술구 시범을 촬영하기도 했지만, 방송 촬영을 하는 것 이상의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한국 당구팬들의 당구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고, 그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낸 듯해 대단히 기쁘다.
 

마지막으로 동료 선수와 당구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산체스, 쿠드롱, 블롬달, 야스퍼스 그리고 한국의 떠오르는 신예 강자들과 함께 다시 세계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당구를 사랑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과 함께 만난다는 것이 무척 기대된다.

지난 7년 동안 항상 기다리고 꿈꿔 왔던 시간이 눈앞에 다가오니 너무 설레고 매우 기쁘다.

앞으로 모든 월드컵에서 우리가 만날 때 항상 즐겁고 밝은 모습으로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모든 경기와 어떤 상황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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