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전용' 당구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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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설 ‘성인 전용’ 당구장

이용자 1,000명 이하의 소규모 체육시설이라고 하더라도 당구장은 엄연한 체육시설이다. 커피숍, 음식점, 술집까지 전면 금연화가 이뤄진 요즘 같은 시대에 체육시설인 당구장에서 흡연을 허용한다는 것조차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성인 전용’ 당구장까지 출현하면 법적 체육시설에서 합법적으로 흡연할 수 있는 구태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당구가 수십 년간 인기 생활체육 스포츠로 자리 잡아 건전하게 저변 확대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당구장의 ‘성인 전용’이 법제화된다면 단순히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것뿐만 아니라 불법 오락기, 퇴폐성 요소 등 성인을 위한 위락 시설이 당구장에 침투하여 ‘당구장 불법 영업’이 근절되기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나경원 의원이 발의하는 ‘당구장 금연구역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단순히 청소년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입법 취지에 대한 효과보다 당구문화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우려가 큰 법안이다. 그리고 사실상 스포츠를 청소년이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법안이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당구장은 법적 체육시설이다. 그런 체육시설을 ‘성인 전용’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성인과 청소년이 다른 장소에서 즐겨야 하는 규제가 지워진 스포츠가 어디 있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에도 스포츠는 정치적으로 독립하여야 하고 여자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올림픽 종목은 여자와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종목이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구 종목이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 도전장을 내밀고 최근 외신이 대서특필하여 국내에도 각종 TV 뉴스와 신문에 보도된 것이 불과 두 달 전 일이다.

안 그래도 ‘담배를 피우면서 하는 스포츠’라는 오명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당구가 다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청소년이 제한받는 스포츠’라는 올가미까지 씌워질 경우 당구와 당구장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 보듯 뻔하다. 

김가영, 최성원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여 한국 당구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드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당구계는 올바른 당구문화를 이끌어나갈 책임과 의무가 있다. 당구장의 환경 변화 내지는 제도의 변화는 이제 필수적이다.

법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당구장이 지속된다면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에서 어긋나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체육시설이라는 스포츠적 지위를 스스로 저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당구장만 왜 금연이 될 수 없는가?

굳이 ‘당구장 금연’의 타당성을 재차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당구장을 금연화시키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설명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국민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는 사실이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는 2015년 1월부터 당구장을 포함한 모든 실내체육시설에서 금연을 시행할 것이라고 대통령 업무보고까지 해놓고, 올해 초 갑작스럽게 ‘당구장은 금연 구역에서 제외’되었다고 발표했다. 정부 시책과도 다른 이런 결정이 어떻게 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올해도 당구계는 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금연 문제에 대해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나경원 의원에 의해 청소년 출입을 제한하는 ‘성인 전용’ 당구장으로 이원화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뜻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지난 4월 23일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김동현 회장과 기자는 국회 나경원 의원실을 방문했다. 입법자의 법안 관련 취지를 듣고 진행 상황 등을 알기 위해서였다.

나경원 의원실 관계자는 “처음 전면 금연으로 법안을 준비했는데, 동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해결책을 찾다가 지역구 민원인에 의해 ‘청소년이 담배 피우는 당구장에 출입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듣고 1차적으로 청소년을 당구장과 분리하는 법안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이번 법안은 전면 금연으로 가는 중간 단계다. 준비는 다 되어 있고 제출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아무리 중간 단계라 하더라도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는 ‘성인 전용’당구장을 만드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체육시설이 ‘성인 전용’으로 운영되도록 법을 만드는 것이 타당한지 다시 검토해 주었으면 한다.

당구는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 기대되는 유망 스포츠 종목이며, 한체대와 국민대에서 당구 특기생을 뽑고 중고등학교에 당구부가 창설되었으며, 전국체전 정식종목에 채택되어 서울시청, 수원시청 등의 실업팀이 존재하는 엄연한 스포츠 종목이다. 그런 스포츠를 하는 시설에서 흡연한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전면 금연의 원안대로 입법을 추진해 달라.”고 부탁하였으나,

“그런 이유는 너무 거시적인 것이고 현실과 괴리가 있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 이 법안을 가지고 지역구민을 만나보니 10명 중 7~8명은 찬성했다. 우리는 소수의 영업생존권도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일단 준비한 대로 입법 절차를 밟을 계획이지만, 통과되기까지 수개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합당한 이유와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총의를 모아 달라. 법안 심의 과정에서 그 의견이 반영되면 다시 전면 금연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수도 있다”고 답하였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이러니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오히려 영업생존권을 주장해야 하는 쪽은 국회의원이 아닌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다. 당구계 내부에서조차 당구를 치면서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현행 환경에 대해 규제해달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거시적인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입법 권리자인 국회의원 쪽은 소수의 권리를 내세워 다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구를 치면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기 때문에 당구장은 전면 금연이 되어야 한다”는 우리 쪽 주장에 대해 “과연 다수의 주장이 맞느냐, 당신의 의견이 다수라면 증명을 해서 전체의 뜻을 모아 오면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겠다”는 식의 논리는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필연적인 당구장의 환경 변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근거로 하여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되어서는 안 되며, 법적 체육시설인 당구장을 이에 준한 환경으로 개선시키는 법률을 만들어가는 것이 입법 권한을 가진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법률의 정당성을 심판하는 헌법재판소에서 스포츠 당구와 체육시설인 당구장, 그리고 당구장에 청소년이 출입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는 점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당구 자체의 속성에서 유래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당구장 시설, 환경과 출입자의 성분 때문이라고 보여지고, 문화체육부장관은 당구장이 18세 미만자에게 유해하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없다고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구 자체에 청소년이 금기시해야 할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당구를 통하여 자신의 소질과 취미를 살리고자 하는 청소년에 대하여 당구를 금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의 한 내용인 일반적인 행동자유권의 침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당구는 스포츠이고, 스포츠를 즐길 청소년의 권리를 막아서는 안 되며, 청소년이 즐길 수 있도록 당구장 환경을 개선시켜 당구장을 법이 정한 대로 체육시설에 준한 시설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구장을 청소년이 출입할 수 있는 금연 당구장과 청소년의 출입을 제한하는 ‘성인 전용’ 당구장으로 이원화시키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엄연히 체육시설로 법적 제한을 받는 당구장에 대한 금연화를 시키지 못해 끝내 ‘유기’ 시절의 당구로 돌아갈 위험이 있는 법률을 무리하게 제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당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청소년이 당구장에 출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말한다.

아니, 지금 당구와 관련된 많은 사람조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당구장에 청소년을 못 들어오게 하고서라도 전면 금연을 막고 소상공인 영업생존권을 지키겠다는 이런 안타까운 생각이 이번 법안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것이 과연 옳고 그름을 따질 만한 일인가. 당구가 술, 담배처럼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면 당구를 청소년이 치지 못하게 법을 만드는 것이 맞고, 당구장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면 당구를 청소년이 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맞다.

그런데 앞뒤가 바뀌어 당구장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으니 당구장 환경을 바꾸는 대신 청소년을 출입시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아울러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에 따른 모든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 권리를 당구장 운영자의 선택에 맡기겠다는 것도 입법기관은 물론 국가기관의 권한과 의무를 저버린 무책임한 판단이다. 

입법의 근본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2년 전인 1993년 5월 13일, 헌법재판소는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의 당구장 출입 금지’와 관련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5조에 대해 청소년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미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왜 당구장이 이원화되어서는 안 되고, 체육시설의 본분에 맞는 ‘전면 금연’이 이뤄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소수의 영업 생존권을 지켜주기 위해 다수의 당구선수와 꿈나무 학생선수들, 그리고 당구를 사랑하는 수많은 동호인들이 피해를 받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국민의 건강을 증진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2015년판 당구장 청소년 출입금지 법안’ 발의는 재고되어야 한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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