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마케팅 대행권 계약

대한당구연맹과 당구선수들을 위한 후원금을 대행사가 그대로 전부 가져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러닝 개런티가 마케팅 기본 계약 관행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방송권 계약 두 달 뒤인 지난 4월 20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빌리어즈TV 본사에서 대한당구연맹-(주)타임앤플레이스(빌리어즈TV 모회사) 간의 대한당구연맹 마케팅 대행권 체결식이 있었다.

대한당구연맹에서 진행해야 할 체결식을 ‘을’인 빌리어즈TV 사무실에서 진행한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날 체결식과 함께 지엔텍-타임앤플레이스-대한당구연맹의 3자 후원협약식도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주)지엔텍은 1억5,000만원을 대한당구연맹에 후원하기로 한 업체다. 지엔텍의 후원금 중 1억원은 잔카세이프티배 당구대회를 치르고 나머지 5,000만원은 대한당구연맹 공식후원금으로 설정한다는 내용의 협약식이었다. 

타임앤플레이스는 이날 대행사 계약과 동시에 첫 번째 실적을 올렸다. 지엔텍이 대한당구연맹과 공식후원사 계약을 체결하는 데, 타임앤플레이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대한당구연맹에 관련 내용에 대해 질의했을 때, 사무국에서 세부 내용에 대해 공개를 꺼렸다.

이번 계약이 사상 처음 있는 마케팅 대행사 선정이었다는 것과 사전에 알려진 계약 내용대로라면 ‘향후 5년간 대한당구연맹의 마케팅 대행권(스폰서 유치권)을 연간 2억5,000만원, 총 12억5,000만원에 타임앤플레이스(빌리어즈TV)가 행사한다’는 크게 홍보할 만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 세부 내용에 대해 함구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 진행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후에 계약 관련 내용이 드러나게 되면서 예상했던 대로 마케팅 대행권 계약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문제가 된다는 쪽과 문제가 없다는 대한당구연맹 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니 양쪽 모두 틀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당구연맹은 나름대로 이유 있는 변명을 했고 반대쪽에서는 명분 있는 지적을 했다. 그러나 계약상의 오류는 분명히 있었다. 

 

1. 마케팅 대행권 계약의 두 가지 오류

외형만 보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관계자들이 전한 계약 과정과 세부 내용의 일부가 전해지면서 타임앤플레이스의 이익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이 쏟아졌다.

타임앤플레이스는 빌리어즈TV의 모회사로 방송권 계약 이후 대한당구연맹의 마케팅권까지 획득하면서 대한당구연맹의 핵심 사업권을 가진 최대 사업자로 떠올랐다. 빌리어즈TV는 연간 5억원을 투자하면서 대한당구연맹의 최대 협력업체이자 후원사가 된 셈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5억원은 서류상의 액수일 뿐, 실제 금액은 이에 못 미친다. 빌리어즈TV에서 대한당구연맹에 지급해야 하는 계약금은 방송권 2억5000만원과 마케팅 대행권 8,700만원 등 총 3억3,700만원이다.

2억5,000만원의 마케팅 대행권 계약금이 8,700만원인 이유는 대한당구연맹에서 이미 계약을 끝낸 스폰서십 1억6,300만원까지 타임앤플레이스가 지급해야 할 계약금 5억원 안에 포함했기 때문이다. 그중 같은 날 계약을 체결한 지엔텍의 5,000만원까지도 포함되었다. 논란이 점화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리고 다음에서 논란은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기 계약까지 계약금 안에 포함하는 형식이라면 이미 계약된 1억6,300만원은 수수료 지급 없이 계약금 안에만 포함시키고 계약금 2억5,000만원이 넘어가는 부분에 대해서만 타임앤플레이스 쪽이 수수료를 받는 계약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마케팅 대행권 계약은 계약금 2억5,000만원을 상회하는 계약이 발생하면 모든 수익이 타임앤플레이스에 돌아가는 이해할 수 없는 계약이었다.

만약 2억5,000만원의 후원금이 채워진 상태에서 어떤 기업에서 대한당구연맹에 1억원의 후원금을 주겠다고 하면 사실상 그 1억원은 대한당구연맹의 후원금이 아닌 타임앤플레이스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계약 내용이라면 올해 타임앤플레이스는 남은 8,700만원의 후원을 채우고 그다음부터는 대한당구연맹 후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사의 수익사업을 하게 된다.

후원 기업은 대한당구연맹 공식후원사가 되지만, 후원금은 대한당구연맹과 당구선수를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따라 전액 타임앤플레이스라는 마케팅 대행사의 영업이익으로 편입되는 재미있는 계약인 것이다.  

이번 마케팅 대행권 계약은 일반적인 마케팅 대행사 계약 관행을 볼 때 결코 납득이 가지 않는 계약이다.

타 체육단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마케팅 대행권은 러닝 개런티, 결과에 따라 수수료가 주어지는 방식으로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대행사가 많은 후원을 가져온다고 해도 후원금이라는 명분으로 받는 돈을 대행사가 모두 가져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후원금은 말 그대로 후원금이지 공식후원사 타이틀을 달아주고 후원금으로 내는 돈을 그 종목과 단체를 위해 쓰지 않고 대행사가 그대로 가져간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래서 대부분 1~2년의 계약 기간 동안 계약금 1~2억원을 설정하고 이 금액을 넘어가는 후원금이 발생하면 대행사에게 커미션을 지급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대행사가 계약 기간 내에 설정된 계약금을 못 채웠을 경우 다음 해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거나 파기하게 된다.

어찌 된 영문인지 대한당구연맹은 5년 동안 2억5,000만원을 보장받고 그 이상의 권리는 포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정상적인 마케팅 대행권 계약이라면 앞서 말한 대로 추가되는 후원금에 대한 권리는 러닝 개런티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또한, 계약 기간을 짧게 가져가면서 상황에 따라 계약을 갱신하는 방법이 대한당구연맹 뿐만 아니라 빌리어즈TV에도 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질문에 대한당구연맹 이성혁 전무이사는  “대한당구연맹은 매년 2억5,000만원의 후원금을 대행사를 통해 보장받게 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당구는 후원금이 2억5,000만원 이상 들어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 타임앤플레이스가 남은 계약금 8,700만원 이상의 후원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인지가 미지수일지 모르지만, 마케팅 대행권을 행사하는 대행사라면 연 1억원 이상은 외부 기업을 통해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빌리어즈TV가 계약금 2억5,000만원의 스폰서십을 채우지 못한다면 매년 대한당구연맹에 차액을 지급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과연 대한당구연맹에 이득인지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2. 합의가 부족했던 마케팅 대행권 계약

계약서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본지의 요청에 대해 공개 거부한 대한당구연맹은 세부조항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이번 계약이 절차를 따르지 않았고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속전속결로 사인까지 이뤄진 점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계약의 목적과 과정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전국체전 정식종목 변경과 관련하여 대의원들에게조차 사실을 알리지 않고 일을 처리했던 대한당구연맹 집행부가 이번 마케팅 대행사 계약 건에서도 대의원들에게 세부 내용을 알리지 않고 어떤 협의도 없이 계약을 진행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대한당구연맹은 어느 한두 명에게 사유화된 단체가 아니다. 당구인과 당구선수 전체를 위한 단체이기 때문에 이들을 ‘대의’ 할 수 있는 대의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충분히 대의원과 논의를 나눴어야 하고, 절차상의 문제가 없도록 계약을 진행해야 했다.

본지에서 확인한 결과 대의원들 중에 이 계약과 관련된 세부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의원들에게조차 세부 정보에 대한 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단지 후원금이 5억원으로 늘어났다는 점만 알려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대한당구연맹 집행부는 계약 과정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으며 어떤 조율이 이뤄졌는지 공개하고 계약서 세부내용을 대의원들과 당구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3. 수의계약이 가능한 사안인가?

이번 마케팅 대행권 계약은 절차상에도 큰 오류가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30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2,000만원 이상의 계약은 반드시 2인 이상의 입찰을 통해 계약하게 되어 있다.

계약 담당자의 비리 및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체육단체도 역시 2,000만원 이상의 계약을 위해서는 입찰 공고를 띄우고 심사 기준에 따라 객관적으로 적정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계약은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다. 수의계약을 아예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의계약은 국가계약법 제2조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계약 사업자가 특허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특정 기술을 가져서 경쟁을 할 수 없을 때와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지자체와 국가기관의 계약 같은 경우에나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이번 마케팅 대행권처럼 특정한 기술에 관계되지도 않고 경쟁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아니다. 더군다나 억대의 계약금이 오고 가는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큰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세금과 관련된 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수의계약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런 마케팅 대행권 계약의 경우 수의계약보다는 입찰을 통해 대행사를 선정하는 것이 대한당구연맹에 훨씬 더 이득이 된다.

후원금 유치가 목적이었다면 정확하게 공고를 내고 전문 마케팅 대행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하여 대한당구연맹에 더 많은 후원을 가져다줄 사업자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선정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대한민국에는 마케팅 대행만 하는 수많은 전문가 집단이 있다. 마케팅 대행사의 경우 사업자의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1년 이상 좋은 실적을 유지하면 다른 경쟁 대행사에서 더 나은 조건의 오퍼를 받기도 한다.

마케팅 대행권은 대행사가 아무리 일을 많이 해서 실적을 가져온다고 해도 사실상 마케팅 대행사에 유리한 조건의 계약은 쉽지 않다. 그게 당구라고 다르지는 않다.

1년 이내에 마케팅 대행권이 잘 마무리되면 다음 해에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해주면 된다. 칼자루는 당연히 계약의 주체인 연맹이 쥐고 있어야 한다.

마케팅 대행권은 단순하지만은 않은 권리다. 일방적으로 대행사에 유리한 계약을 하면 갑을 관계가 전도되어 다른 사업에 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좀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4. 왜 갑자기 마케팅 대행사를 두었나?

대한당구연맹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케팅 대행사를 둔 적이 없다. 연간 3억여원을 국고와 국민체육진흥공단 자금을 통해 지원받고 중계권료와 후원금 등 매년 2억여원 이상을 운용해왔던 대한당구연맹이 갑작스럽게 절차와 합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마케팅 대행사를 선정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지난해 말 대한당구연맹 최대 후원사인 이트레이드증권의 재계약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극적으로 재계약이 이뤄졌고, 올해를 마지막으로 내년 재계약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한당구연맹 집행부는 새로운 후원사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이 새 후원사 영입 문제는 올해 회장과 전무이사에게 주어진 필수적인 과제였다. 제안서를 들고 기업과 직접 접촉하거나 대행사를 이용하여 안정적으로 수익을 보장받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대한당구연맹 집행부는 대행사를 선정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대행사를 선정하면 후원금의 일정 부분을 러닝 개런티로 주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전문가 집단을 통해 효율적으로 후원사 유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집행부가 후원사 영입에 자신과 의지가 있다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여 후원사 섭외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만약 자신이 없다면 대행사를 두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대행사를 선정할 때는 입찰 방식으로 사업자를 모집하여 해당 사업자의 재무제표나 신용보고서 등을 확인한 뒤 객관적으로 우수한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장기 계약보다는 단기 계약으로 적정한 계약금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러닝 개런티를 나누는 정상적인 방식의 마케팅 대행권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마케팅 대행권 계약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타임앤플레이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력을 인정할 수 있는 정확한 데이터도 없이 상호 간에 오간 단순한 ‘말’에만 의존해서 중요한 계약을 처리하고 말았다.  

게다가 정부 지침에 따라 내년 9월까지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게 되었다. 대한당구연맹도 상급 단체의 안이 내려오면 국민생활체육 전국당구연합회와 곧바로 통합해야 한다.

그 안이 아직은 어떤 방향으로 잡힐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통합 이후 단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돈이 오고 가는 계약과 관련된 사항이라면 더욱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2년 이상의 계약은 자칫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계약을 책임질 수 있는 임원들의 거취 기간 내에서만 계약을 해야 다음 집행부가 들어섰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의 소지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빌리어즈TV 입장에서는 다른 방송사업자와의 경쟁을 고려하면 장기간 계약을 끌어내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대한당구연맹은 빌리어즈TV의 입장과 크게 관계가 없다.

대한당구연맹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대변해야 하는 대한당구연맹의 임원들이 굳이 빌리어즈TV의 입장을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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