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쿠션 세계 최고 우승상금 대회가 한국에서 열렸다.

잔카세이프티배 우승상금 3,000만 원의 주인공이 된 김형곤. <사진 우철>

지난달 한국 당구 사상 처음으로 우승상금 3,000만원 대회가 열렸다. 국내에서 열린 당구대회 중 1,000만원 이상의 우승상금이 걸렸던 대회는 이번 ‘2015 잔카세이프티배 3쿠션 챔피언십’이 최초다.

수억원의 우승상금이 오가는 스포츠 이벤트 시장에서 우승상금 3,000만원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상금이지만, 어렵게 성장하고 있는 3쿠션 종목의 현실을 이해하고 이번 대회에 걸렸던 ‘우승상금 3,000만원’이 주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3쿠션 세계 최고의 우승상금은?

당구 종목 중에서 3쿠션은 유난히 우승상금이 적은 종목이었다. 이번 2015 잔카세이프티배 3쿠션 챔피언십의 우승상금 3,000만 원은 현재 전 세계에서 열리는 3쿠션 대회 중 사상 최대 규모의 우승상금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이것이 3쿠션 종목의 현주소다. 스누커는 억대의 우승상금이 걸린 대회가 매월 개최되고 포켓볼은 억대까지는 안 돼도 매월 수천만원의 우승상금을 놓고 전 세계에서 토너먼트가 벌어진다.

포켓볼도 한때 우승상금 5억원짜리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스누커와 포켓볼은 이렇게 상금만으로도 충분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종목별로 100여 명 정도가 프로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이에 비해 3쿠션은 세계 톱 랭커들조차도 ‘프로 당구선수’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한 상금 체계를 갖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폰서에 운 좋게 연결되거나 개인적으로 부지런하게 활동하여 억대의 연수입을 올리는 선수도 있지만, 일부 몇 명의 톱 클래스 선수에 불과하다. 이들이 ‘프로 당구선수’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시스템, 즉 프로에 걸맞은 명예와 수입이 보장된 3쿠션 대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3쿠션의 활성화를 위해서 UMB 세계캐롬당구연맹이 월드컵 상금을 더 높게 책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디에 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의 우승상금을 계속해서 주면 어느 누가 3쿠션에 도전하겠느냐는 말이다.

유럽에서 30년 동안 챔피언이 바뀌지 않고 새로운 선수가 발굴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고 말한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다른 대회들도 마찬가지다. 선수에게는 적당한 상금을 주고 경기단체 재정만 늘리는 시스템은 내부의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이 장기화되는 것이 3쿠션을 퇴보시키는 주된 원인이라는 의견이다.    

UMB는 이런 상금과 관련된 문제가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월드컵의 상금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책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의 총상금은 3만5,000유로, 한화로 환산하면 약 4,400여만 원에 불과하다. 총상금이 이렇다 보니 월드컵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우승상금이 챔피언에게 주어진다.

월드컵 우승상금은 고작 5,500유로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7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이유는 있다. 3쿠션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해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고 당구 시장이 작아서 후원을 유치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경기단체와 그 소속 임원들의 임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돈이 없으니 적게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당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키울 자신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키울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본인에게 우리 당구 전체에게 좋은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에서 있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지피와 같은 외부 기업 주최 대회보다도 UMB라는 국제 경기단체에서 개최하는 월드컵 시리즈의 우승상금이 너무 적다는 주장에 대해 “선수에게 상금을 많이 주게 되면 연맹이 선수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는 전혀 이해할 수 없고 결코 믿을 수 없는 논리를 공공연하게 펼쳤다.

심지어 중책을 맡고 있는 한 임원은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기자에게 서슴없이 말하기도 했다.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인지는 별로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대로 현행 시스템에서 스폰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이렇게 ‘선수를 상금으로 통제한다’는 논리를 공공연하게 표출하고 아지피와 같은 3쿠션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에 제대로 협조조차 하지 않는 시스템이 계속 된다면 앞으로도 세계 3쿠션은 갈 길을 찾기 어렵다.  

 

3쿠션의 변화를 꾀한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열렸던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고자 보험회사 아지피의 클로드 파트 전 회장이 절친한 이탈리아의 3쿠션 선수인 마르코 자네티와 손을 잡고 톱 랭커들에게 억대의 상금을 주는 초청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당연히 아지피를 도와서 더 큰 이벤트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UMB에서 오히려 선수들이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에 출전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아지피 측과 마찰을 빚었지만, 선수협의체의 수장을 맡고 있던 자네티가 전면에 나서면서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가 개최될 수 있도록 문이 열렸다.

그리하여 파트 전 회장이 아지피라는 회사에 재직하던 기간에 3쿠션 사상 최고의 상금이 걸린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가 해마다 개최될 수 있었다. 

파트 전 회장이 아지피 회사를 떠나고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가 더 이상 개최되지 못하면서 3쿠션은 다시 침체기에 빠졌다. 만약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와 같은 대회가 지속적으로 개최될 수 있었다면 큰 상금에 도전하려는 선수들은 더 많아졌을 것이고, 선수들의 경기력, 즉 컨텐츠가 좋아질수록 이를 찾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을 것은 자명하다.

UMB는 이런 대회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3쿠션의 프로화, 활성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로 전환시켜야 했다. 그것이 경기단체 본연의 임무다. UMB와 같은 경기단체는 스폰서와 다소 의견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종목 활성화와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반드시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아쉽게도 UMB는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회 초창기에는 UMB에서 아지피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선수들이 UMB의 눈치를 보기까지 했다.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가 오래 지속되고 이를 표본으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와 같은 형태의 대회를 하나둘 개최하게 된다면 3쿠션도 프로 선수가 생길 것이고 종목은 발전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UMB는 아지피와 같은 기업이 나타났을 때 최대한 협조하고 선수들이 커나갈 수 있는 대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UMB에서 주최하는 ‘우승상금 700만원짜리 월드컵’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겠지만, 그것이 UMB 조직에 대단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들을 더 큰 조직으로 발전시키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UMB는 기업들의 대회 유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종목을 발전시키고 프로 선수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UMB의 조직을 더욱 확대시키는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아쉽게도 UMB는 아지피 대회와 같은 큰 대회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아지피 대회가 없어진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어떤 대회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매월 스누커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는 토너먼트가 개최된다. 우승상금은 최소 8,000만원부터 최대 5억원까지 주어진다. ⓒ TAI CHENGZHE

한국에서 열린 세계 최고의 우승상금 대회

종주 대륙 유럽의 아성이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다시 한 번 3쿠션의 중흥을 위한 열쇠를 잡았다. 3쿠션에서 우승상금을 3,000만원까지 주었던 대회는 앞서 언급했던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아지피 대회는 매년 우승상금으로 22,400유로(한화 약 2,800만원)를 걸었고 출전 수당과 10점 이상의 하이런 수당, 베스트 게임 수당 등을 합쳐 수천만원의 상금이 선수들에게 돌아갔다.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가 없어진 이후 여기저기서 아지피를 닮은 새로운 이벤트가 열릴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대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이름만 들어도 아는 굴지의 기업이 참가하는 대형 이벤트가 곧 열릴 것이라는 말이 계속 나왔다. 실제로 대회로 성사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는지 단 한 차례도 대회가 열리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에 잔카세이프티라는 안전화 브랜드를 새로 출시하는 (주)지앤텍(대표이사 윤영선)에서 우승상금 3,000만원을 내건 당구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시에 단발성 대회보다는 마스터스 형식의 시리즈 대회를 구상해볼 것을 관계자와 함께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다른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주)지앤텍에서는 처음부터 장기간 대회를 개최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번 잔카세이프티배 대회장에서 만난 (주)지앤텍 관계자는 “당구를 좋아했던 본사 윤영선 대표이사가 직접 대회 개최를 추진했다. 처음에는 세계대회 개최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다. 협상 과정에서 대한당구연맹으로부터 공식후원사 제안을 받았고 대회 개최비용 중 일부는 대한당구연맹 공식후원금으로, 나머지는 대회 개최비용으로 책정하여 먼저 올해는 전국대회 규모를 치러보는 쪽으로 의견이 조율되었다. 내년에는 더 크게 대회를 치를 예정이며, 아지피와 같은 세계대회를 열게 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지앤텍의 ‘우승상금 3,000만원’ 대회 개최를 계기로 3쿠션은 새로운 궤도 위에 올라섰다.

아지피와 같은 기회가 다시 열리게 되었다. 매년 연속적인 대회 개최 계획을 갖고 있는 (주)지앤텍과 함께 당구계 전체가 힘을 모은다면 아지피 이상의 대회를 개최할 수도 있다. 이런 대회가 계속 개최되고 대회 내용을 널리 알리면 규모도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다만, 컨텐츠가 점점 좋아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은 있다. 이 과정을 충실하게 거치면 우승상금이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그리고 끝내 우승상금 1억원의 대회가 열리는 날이 올 것이다. 

매월 이런 큰 대회가 개최되고 억대의 상금을 가져가는 선수들에게 언론이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하게 될 것이고, 그런 3쿠션 선수들에게는 저절로 프로라는 수식어가 붙게 될 것이다.

(주)지앤텍처럼 당구를 좋아하는 기업을 찾아 제안하고 설득하면 국내에서 아지피 빌리어드 마스터스와 같은 대회를 매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금도 여러 당구계 인사들은 이러한 시도를 물밑에서 하고 있다. 대한당구연맹이라는 선수에 대한 권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권한을 행사하는 단체가 올바로 방향을 잡고 이들과 힘을 모아 추진한다면 ‘우승상금 3,000만원’ 이상의 대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2015년 (주)지앤텍을 시작으로 그 기회가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는가. 영국의 스누커처럼 한국의 3쿠션도 이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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