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르때배 전국 3쿠션 당구대회를 운영한 사람들(왼쪽부터 대한스포츠당구협회 김영재 회장, (주)리베르떼 박흥곤 사장, 경기도스포츠당구협회 강석봉 회장, 김시창 원로)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 신경영을 표방한 제화업체가 당구를 만나 7개월 연속 대회를 열었다

2000년도는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임영렬 초대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후 제2대 김영재 회장이 당구계 재건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던 시기였다.

협회의 재정 기반이 열악하여 대회다운 대회를 열지 못하고 있던 터에, 백상영 전무이사가 그해 4월 아리랑TV와 교섭해 개최비용을 협회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아리랑 2000 당구대회 시리즈’를 개최할 수 있었다.

아리랑TV는 동남아 지역에 시청자 기반을 둔 국제방송이었으므로 당구대회 종목도 3쿠션, 포켓볼, 스누커 등을 망라하고 외국 남녀 선수들을 초청해 한국 선수와 대결하는 형식으로 기획되어 선수들의 대회 출전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는 미흡했다. 

대회 기간 중 본지에 게재한 (주)리베르떼의 제품 홍보 광고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이러한 시기에, 정확히 말한다면 당구라는 종목이 아직 기업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때에 ‘리베르떼’라는 상호의 제화업체에서 매월 연속적으로 3쿠션 대회를 열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 신도시에서 대형 당구장을 경영하고 있는 한국당구원로회의 김시창 원로를 통해 제의가 들어와 김영재 회장이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경기도스포츠당구협회(회장 강석봉)와 김시창당구원이 주관하는 전국대회를 개최할 것에 합의를 이루었다.

본지(당시 <월간 당구>)에도 일정 역할이 맡겨졌는데, 본지의 뒷표지에 매월 리베르떼의 제품광고를 싣고 리베르떼 제화의 상품 할인권을 소봉투에 넣어 정확히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잡지 전체를 투명 비닐로 포장한, 이른바 랩핑을 했다.

그리고 이 대회에 관련된 홍보기사와 대회 상보를 매월 취재하여 게재하기로 했다. 

아직도 당구의 이미지가 기업의 관심을 끌 만큼 메리트가 있지 않던 시기에 당구계에 관심을 보인 최초의 외부기업이란 점에서, 이 대회의 상금 내용이나 대회규모, 그리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느냐를 떠나 당구계로서는 리베르떼의 ‘당구 사랑’의 관심에 대해 높이 평가해야 하리라 본다. 

제1회 대회 입상자와 주최·주관자의 기념 촬영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주)리베르떼는 경기도 안산시에 본사와 공장을 둔 신생 제화업체였다. 이 대회를 개최하기 1년 반 전인 1999년 1월에 뜻을 같이 하는 5명의 이사들이 소위 신경영 추구의 기치 아래 제화업체를 세워, 기존의 제화업체와는 다른 방식의 경영을 해나갔다.

이 해에 이미 30여 개의 대리점을 확보하고 앞으로 50개의 전국 체인망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박흥곤 사장과 류재경 회장을 비롯한 이사들이 당구를 좋아하여 앞으로 그들의 사업이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는 당구와 잘 결합된다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1,200만 당구 동호인을 상대로한 세일즈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제2회 대회 입상자들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그리하여 그 첫 사업으로 매월 1회 당구대회를 개최함으로써 신생 제화업체 리베르떼는 당구를 사업의 동반자로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1회 대회 개최 때 리베르떼 박흥곤 사장이 한 대회사를 통해 그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당구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보며 항상 그들의 환상적인 모습에 매료되어 왔다. 20년 넘게 나 자신도 당구를 즐겨 왔지만, 그간 당구같이 멋있는 스포츠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이번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당구가 정말로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국민 스포츠로 격상되기를 바란다. 이번 대회가 1회 대회라 미흡한 점이 있지만, 앞으로 더욱더 대회 준비에 신경을 써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대회로 이끌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제5회 대회 결승전에서 뱅킹하는 황득희(왼쪽)와 김무순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 7회 대회 중 군포시 산본의 ‘김시창당구원’에서 4회 개최 후 각 지역으로 분산 개최

리베르떼배 전국 3쿠션 당구대회의 제1회 대회는 2000년 6월 25일과 26일에 산본의 김시창당구원에서 팡파르를 울렸다.

참가 대상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각 지부 소속 선수와 동호인이었으나 선수 외의 동호인의 참가는 별로 없었다.

이후 매월 섯째주 일요일과 월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렸는데, 제2회 대회는 7월 23일과 24일, 제3회 대회는 8월 26일과 27일, 제4회 대회는 9월 24일과 25일에 같은 장소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제5회 대회는 개최 장소를 지방으로 옮겨 부산의 장사행당구클럽에서 10월 22일에 열렸고 제6회 대회는 청주시의 무지개당구장(대표 김윤석)에서 11월 25일과 26일에 열렸다.

제7회 대회는 연말 결산대회로서 예선은 산본의 우정당구장에서 12월 16일과 17일, 본선은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의 리스당구장(대표 이태호)에서 18일 개최되었다. 

청주시 무지개당구장에서 열린 제6회 대회의 본선 경기&#160;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경기 종목은 국제식 3쿠션으로 모든 경기가 30점 단판 토너먼트로 치러졌다. 상금은 우승 150만원, 준우승 60만원, 공동3위(2명) 각 30만원 수준이었으며 8강까지 부상이 주어졌다.

참가 인원은 기록상으로 제1회 대회 80명, 제2회 대회 99명, 제3회 대회 110명, 제4회 대회 120명 등으로 대회가 거듭될 수록 참가자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당구계의 상황은 이 대회의 5회 대회(2000년 10월 22일) 개최 직후인 10월 28일에 SBS스포츠채널 주최의 ‘한국당구최강전’ 시리즈가 시작되었으며, 6회 대회 2주 전인 11월 12일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서 당구 종목이 부산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부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회 개최가 요청되는 시기였다. 

(주)리베르떼가 연말까지 7회 대회를 개최하고 2001년에도 새로이 대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회사의 사정으로 실현하지 못하고 그 해로 대회를 마감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7회라는 단명의 대회이기는 하였으나 최초의 외부기업 타이틀 대회라는 점과 대회 개최를 갈망하던 3쿠션 선수들에게 기량 연마의 장이 제공되고, 이 대회에 출전했던 선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긴 황득희는 2년 뒤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대회의 기록을 한번 검토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제5회 대회 우승, 제6회 대회 준우승, 제7회 대회 공동3위를 차지하며 리베르떼배 3쿠션 대회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낸 황득희 <사진 = 빌리어즈 자료사진>

제7회 대회까지의 우승자는 제1회부터 엄태긍(서울), 지형근(인천), 이용희(인천), 임윤수(서울), 황득희(경기), 신용순(경기), 박승희(경기)로 중복 우승이 없다.

준우승자는 김재근(인천), 유창선(서울), 김무순(서울), 김윤석(충북), 김무순, 황득희, 김종완(서울)으로 김무순이 유일하게 3회와 5회 대회에서 두 번 준우승하였다.

3쿠션 선수들의 실력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평준화되어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리베르떼 3쿠션 대회에서 16강 입상자를 기준으로 볼 때 황득희가 우승과 준우승, 공동3위를 각각 1회씩을 차지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데다가 H.R상 3회, B.G상 2회로 단연 앞섰으며 두 번의 H.R 13점을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지형근이 우승 1회, 공동3위 1회를 했으며, 박승희가 우승 1회, 공동5위 1회, 김종완이 준우승과 공동3위 1회, 유창선과 김윤석이 준우승 1회와 공동5위 1회씩을 차지했다.

김철민(서울)과 김봉수(경기)는 각 공동3위 2회를, 김성관(광주), 이홍기(서울), 이승진(대구) 김영섭(경남)은 공동3위 1회와 공동5회 1회를 차지했다.

그리고 윤성하(서울), 정호석(서울), 이재명(대구)이 공동5위 2회를 기록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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