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천
한국의 당구를 세계에 알린 고 이상천 선수.  사진=빌리어즈 DB

지금의 한국 당구가 있기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은 이상천과 김경률, 두 사람이다. 한국 당구선수 중에서 제일 먼저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려 기록적인 첫 발자국을 남긴 것과 동시에,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라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도전은 한국 당구가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에 더 먼 미래를 내다보고 비교적 편안했던 당구선수로서의 삶을 뒤로한 헌신적이고 용기 있는 선택이어서 높이 평가받는다.

8, 90년대에 국내에서는 이미 상대가 없을 정도로 실력이 앞섰던 이상천 회장이나 200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해 전국을 제패했던 김경률 선수 모두 괜찮은 앞날이 보장되어 있었고, 굳이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겨뤄 몸과 마음을 고단하게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현재의 안락보다는 ‘한국 당구’의 비전을 위해 헌신을 선택했고,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결실을 맺어 국내에서 3쿠션 종목의 부흥을 견인하는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이상천, 김경률과 같은 스타가 스포츠에서 종목 자체의 성장을 이끌고 반전한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IMF로 국가적 위기 속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던 한국 최초 LPGA 챔피언 박세리와 MLB에서 ‘코리안 특급’으로 불리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인 박찬호가 대표적이다.

이상천, 김경률과 무대와 규모만 달랐을 뿐, 박세리와 박찬호의 활약은 각 종목에 영향을 미쳤던 비중에는 차이가 없다. 박세리의 우승 이후 골프채를 잡은 ‘세리 키즈’들은 몇 년 후 LPGA를 점령했고, 박찬호를 통해 한국 야구의 가능성을 재평가했던 스카우터들은 한국 선수들을 거액의 계약금과 연봉을 약속하고 데려가 류현진, 김병현, 추신수 등과 같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마찬가지로 이상천, 김경률의 ‘두 거장’이 한국 당구를 세계 무대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최성원, 조재호, 김행직, 조명우, 허정한 등의 챔피언을 탄생시킬 수 있었고, 한국은 물론 3쿠션 종목의 세계 판도를 크게 성장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국내에는 3쿠션 국제식 대대가 보급되면서 당구산업은 변곡점을 맞게 되었다. 지금의 한국 당구는 이상천과 김경률, 두 사람의 큐 끝에서 시작했고, 결실을 볼 수 있었다.

팬과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스포츠 스타가 탄생한 종목은 반전의 기회를 잡게 된다. 골프는 ‘사치’라는 두 글자를 떼어내고 전 국민적 여가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았고, 야구는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를 향한 열망을 일으켜 야구선수들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것과 동시에 중계권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인한 전체 시장의 부가가치 상승, 사회인 야구의 붐으로 인한 새로운 아마추어 야구 시장 형성 등 종목 자체의 이미지는 물론, 산업 규모와 저변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스타 한 명이 탄생하면서 우리가 경험한 부가가치와 시너지 효과, 그로 인한 변화는 실로 컸다. 당구 역시 다르지 않다. 지금의 한국 당구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헌신적 도전에 나섰던 ‘이상천, 김경률’ 두 사람의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 김경률 선수. 보장된 안락함을 뒤로 하고 세계 무대를 개척해 정상에 오른 김경률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당구가 있다. 사진=빌리어즈 DB
고 김경률 선수. 보장된 안락함을 뒤로 하고 세계 무대를 개척해 정상에 오른 김경률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당구가 있다. 사진=빌리어즈 DB

세계 최고 규모라 자부하는 3쿠션 국내 시장은 연간 약 2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국내 전체 당구 시장 연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당구장 운영업은 최근 1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2012년 3200억원 규모에서 2018년 기준 3배 이상 성장하며 1조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통계로 산출되는 유의미한 결과물은 당구 시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고, 통계에서 보여지는 최근 10년 한국 당구 시장의 급성장을 평가할 때 주로 미디어 효과가 대두되곤 한다.

그러나 미디어보다 더 중요한 원인으로 판단되는 것은 ‘스타’, 즉 당구선수들의 활약이다. ‘스타’를 빼놓은 미디어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골프나 야구가 당시 박세리, 박찬호와 같은 스타가 없었더라면 미디어 중계도 없었을 것이고, 만약 이런 스타들이 없는 상태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중계했더라면, 국난 극복 시기에 여론이 결코 좋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당구 역시 수치상 3배 이상의 ‘껑충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바탕은 당구선수들이다. 그 선봉에 섰던 선수가 바로 이상천, 김경률이다. 90년대 세계 정상에 올라 한국 당구의 저력을 확인하고, 또 지난 2004년에 생의 마지막에 돌연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당구연맹(현 KBF)의 회장을 자처하며 3쿠션의 기초를 닦은 이상천 회장과 그의 유지를 받들어 세계 무대에 홀로 도전을 시작한 이후 단기간에 정상에 오른 김경률 선수의 이력이 없었다면, 지금 한국 당구 시장은 3배 성장의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두 사람의 활약에 기반을 두고 국내에 3쿠션 국제식 대대 보급률은 크게 늘어났고, 당구의 스포츠화와 더불어 당구산업의 본류에 변화가 일어나 더욱 탄탄하고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천, 김경률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이름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당구를 미리 내다보고 헌신한 두 거장은 우리 곁에 없다. 3배 성장의 호황과 결실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누려야 할 두 사람이지만, 후대에 모든 영광마저 돌려주고 타계했다. 우리는 이 고마운 두 사람을 계속 기억해야 한다.

국내에서 당구가 어려웠던 시절에 스타에게 주어진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했던 이상천과 김경률, 두 이름을 다시 새기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 준 두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고, 당구의 올바른 역사를 기록해 후대에 남겨야 할 사명이 있는 언론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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