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한 반세기 당구의 역사 속에서 국내 기업의 신기술이 '당구 한류' 이끌어

버호벤보다 1년 먼저 창업한 (주)한밭과 '한국 당구 대명사' (주)허리우드의 신기술 한류로 인정 받아

"당구 한류는 이미 지난 40년간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전통과 신기술 융합되어 발전할 것"

당구는 나무와 함께 태어났다. 나무는 시초부터 현재까지 당구가 수백 년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가장 필수적이고 중요한 소재로 인식되어 왔다.

당구를 치기 위해서 손에 쥐는 당구 큐나 엎드려서 공을 치는 당구대를 모두 나무로 만들어왔고, 그래서 당구는 나무를 떼어 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만큼 나무 의존도가 높다.

만약 당구대나 큐를 나무로 만들 수 없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당구라는 스포츠가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당구가 태생한 16세기 이후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무는 당구를 만들고 지탱해 온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의 당구산업은 주로 나무를 잘 다룰 수 있는 회사들이 좋은 나무를 수급해 당구용품을 제조하고 생산하는 것이 산업의 축이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나무로 당구용품을 만들면서 당구를 이끌어왔다. 이들이 만든 당구대와 큐는 당구의 표준을 제공했고, 점점 진화하며 오늘날의 당구를 완성했다. 그중에는 아직 나무를 통해 수백 년, 수십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전 세계에서 나무를 다루는 당구 회사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회사는 미국의 브런스윅이다. 1845년 설립된 브런스윅은 나무로 당구대를 만들어서 아메리카 대륙에 당구를 보급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당구 중독자’를 자칭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대통령이 되기 10여 년 전인 1850년에 브런스윅 당구대를 소유했을 만큼 유서가 깊다.

1680년에 설립되어 340년 동안 당구대 천을 만들어 온 이완 시모니스와 함께 세계 당구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기업으로 전해진다.

20세기로 넘어오면 벨기에의 당구대 제조사 가브리엘이 가장 긴 85년의 역사를 가졌다.

전반적인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현재는 나무를 직접 다루는 제조 비율을 줄이고 브랜드화에 전념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인해 가브리엘은 현존하는 나무 당구대의 기준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브리엘만큼 많이 알려진 버호벤은 1973년부터 당구대를 만들기 시작해 40여 년 동안 나무로 당구대를 만드는 일을 해왔고, DS코리아(대표 오경희)를 통해 한국에 보급된 샘테이블은 1985년에 첫 당구대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나무와 당구를 연결하는 당구산업의 시작은 꽤 오래되었다. 해방 이후 1950년대에 선구자 방달성 원로의 승리기업사가 처음 당구대 제조의 문턱을 넘기 시작한 한국 내 당구산업은 이후 7, 80년대에는 한밭과 허리우드, 부영목재(민테이블), 비바체, 프롬 등으로 이어지며 탄탄한 제조산업의 기반을 구축했다.

국내 당구계 기업 중 가장 오래된 (주)한밭은 버호벤보다 1년 앞선 1972년에 설립되었다. 한밭 권오철 대표이사는 야구 배트를 만들면서 나무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당구 큐를 만들어 50년 가까이 나무를 다루는 장인 기업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권 대표는 오래 사용해도 나무가 휘지 않는 ‘플러스파이브 공법’을 개발해 한국의 당구산업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 거산산업으로 출발한 (주)허리우드(대표이사 홍승빈)는 미국 BCA 당구무역박람회에 의욕적으로 작품들을 출품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중형 당구대 ‘골드플러스’의 성공에 힘입어 한국 당구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흔히 국제식 대대로 불리는 대형 당구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서 개발되어 (주)빌텍코리아(대표이사 정정우)의 ‘비바체’와 민테이블(대표 민상준)의 ‘클럽’ 당구대가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아 성공하면서 한국의 당구산업은 점점 다양화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허리우드에서 당구와 나무의 500년 전통을 깨트리는 혁신을 시도해 성공을 거둬 눈길을 끌고 있다. 허리우드가 지난해 출시한 ‘판테온’ 당구대는 나무 대신 신소재 대리석을 사용해 만들었다.

"당구대는 나무"라는 500년 공식을 깨는 혁신이었고,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출시 이후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단순히 좋은 당구대가 아닌 새로운 당구대의 기준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신기술과 공법들은 소위 '당구 한류'라는 단어에 어울릴 만한 결과물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한밭 큐의 플러스파이브 공법.  사진=(주)한밭 제공
한밭 큐의 플러스파이브 공법. 사진=(주)한밭 제공

전통과 신기술의 융합
그것이 바로 '당구 한류'의 원천

한국 당구산업은 나무를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고, 캐롬 종목에서는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 최대 시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한국이 ‘당구 한류’에 도전할 수 있는 원천은 이 부분에 있다. 나무와 당구가 연결되는 태곳적 원류에 한국이 지난 50년간의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 가장 첫 번째 이유다.

또한, 같은 시기에 고 이상천 전 대한당구연맹 회장과 고 김경률이라는 걸출한 당구 스타플레이어가 탄생하고, 구 코줌코리아(현 파이브앤식스)와 같은 미디어 기업이 견인한 부분까지 맞물리면서 지금 한국은 ‘당구 한류’를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다.

그런데 당구 한류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이루고 만들어낸 성과에 기반한 결과물로 전 세계 당구계의 평가를 받거나 그로 인해 만들어낸 새로운 부가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당구는 태생이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한류’라는 단어에 어울릴 만한 새로운 무언가가 뒷받침되어야만 전 세계 당구계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한밭이 개발한 플러스파이브 공법처럼 나무를 이용했지만 확실하게 구별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나 허리우드의 대리석 당구대 ‘판테온’과 같은 신공법, 아니면 PBA와 같은 프로투어처럼 한국이 확실하게 앞서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 말이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개별적으로 ‘한류’의 가치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한류를 이루려면 어떤 기준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당구는 개체가 아닌 전체의 ‘스탠다드’를 제시해야 완성될 수 있다.

이유는, 딱 하나다. 반세기 전 한국보다 수백 년 앞서 당구대를 만들고 큐를 잡았던 그들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시하지 못하면 자칭 한류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노력과 시간, 재원이 필요한 일이고, 어느 한순간에 어느 한 기업, 어느 한 인물이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국 당구가 이룬 전통과 신기술의 이 성과들이 융합되었을 때 비로소 ‘한류’라는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나무에서 시작된 전통의 당구는 그동안 유럽과 미국이 끌고 왔다. 그동안 한국 당구는 ‘전통가’ 유럽에 견줄 만한 경력을 쌓아왔고, 그사이에 이미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지금 우리가 ‘당구 한류’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도 지난 50년의 세월 동안 이처럼 한국 당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시간 한국에서 당구가 한 계단씩 올라섰던 것처럼 한류화 역시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한다.

전통적인 나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나는 혁신의 결과물을, 개체가 아닌 당구 전체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 성과를, 과연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 더 신중하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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