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당구인 모두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 둔 김경률을 회상하며...
김경률은 완벽한 월드 클래스이고 마치 로봇처럼 빈틈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마스크를 벗은 김경률은 테디베어처럼 편안한 사람이었고, 누구보다도 멋진 스포츠 선수였다.
2012년 3월 아지피에서 칼럼니스트 프리츠 바커는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김경률을 인터뷰하며 그에게 요청했다. “우리를 위해 다시 한 번 당신의 기쁨을 표현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김경률은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었다. 그는 한국어로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고, 만년설까지 녹일 듯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경률은 완벽한 월드 클래스이고 세계 최강자이지만, 반면에 테디베어 같이 편안한 사람이었다. 2005년 7월, 뉴욕의 ‘캐롬 코너 카페’에서 KRK(그는 거기서 이렇게 불렸다)는 경기에서 이겼지만, 그는 얼굴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김경률은 무척 인상 깊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25:23으로 네덜란드 선수를 간발의 차로 이겼다. 그런데 정중하게 악수를 하고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난 이후에도 승리의 기쁨이 느껴지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나는 마치 그가 ‘3쿠션 안드로이드’ 로봇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솔직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김경률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김경률과 한 번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기꺼이 김경률의 기억을 돌아보려고 한다.
김경률은 2005년 둥지를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 그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그래서 김경률은 자기의 큐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천 선배님은 나에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3쿠션을 쳐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당시에 김경률은 상당히 젊고 방어적이고 신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를 과연 누가 탓할 수 있을까? 해가 지나고 토너먼트가 계속될수록 김경률은 세상이 그렇게 적대적인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안탈리아, 후르가다, 포르투, 쉴티히하임, 리마, 뉴욕에서 김경률은 세계 톱 클래스로 존중받았다.
심판들은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했고, 그의 멋진 샷은 관중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세계 랭킹 10위권의 유명한 상대 선수들은 정정당당하게 김경률과 경기를 치렀다. 그들은 김경률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해야 했다. 그들은 비록 경기에서 김경률에게 패해도 망설임 없이 패배를 인정하며 악수를 청했다.
시간이 흐르자 김경률은 어느새 ‘그들 중의 한 명’이 되어 있었다. 김경률은 매년 좋은 성적을 내는 세계적인 3쿠션 엘리트 선수 그룹에 들어섰고, 세계적인 3쿠션 선수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에게 이제 더 이상 마스크는 필요 없어졌다.
김경률은 우리에게 그의 자랑스러움과 그의 감정, 또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는 성실한 스포츠 선수인지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우리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스포츠는 문화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듯, 우리는 김경률에 의해 거리를 좁히고 차이를 극복하며 서로를 알게 되었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제야 전한다. Rest in peace, KRK.
베르트 판 마넨 칼럼니스트
thebilliards@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