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큐에 1,500점을 치던 일본의 가쓰라 자매

출중한 당구 실력을 뽐냈던 일본의 가쓰라 자매. 빌리어즈 자료사진
1930년대 일본 가쓰라 자매 묘기시범 계기로 한국 당구계를 개화기 맞다.
한국에 방문한 가쓰라 자매가 1,500점을 단큐 쳐내 장내를 감탄시켰다. 
 
193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의 유명 당구대 제작회사 ‘스가누마’는 한국의 판매망인 일승당구장을 통해 당구대 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일본의 유명한 여자 선수인 가쓰라 자매를 한국에 보냈다. 가쓰라 자매는 한국 당구장 여러 곳을 돌며 묘기 시범을 보였다.
 
언니 가쓰라 마사코(1914년생, 당시 21세)와 노리코(18세)를 일본당구협회 이사인 형부 고오바시가 데리고 현해탄을 건너 조선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가쓰라 집안은 일본에서는 당구명가로 알려져 있었고, 당시 두 자매는 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일본 당구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참고로 두 자매의 당구선수로써의 면모를 소개한다면, 언니 마사코는 훗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관식에 초청했을 정도로 유명인이 됐으며, 그때 모인 각국 선수들과의 친선경기에서 당당히 우승함으로써 그 진가를 보여주었다.
 
1940년에는 1만점을 한 큐에 끝낸 최초의 기록 보유자가 되었고, 게임 소요시간도 2시간 40분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일본 대표로서 세계 3쿠션 선수권대회를 3회나 쟁취한 바 있다.
 
동생 노리코도 실력면에서 언니와 전혀 우열을 논할 수 없는 맞수인데다 어리고 귀엽다는 이유로 인기를 더 많이 받았다. 전일본 선수권대회를 여러 해 동안 차지했으며, 한국이 자랑하는 재일동포 당구왕 타카키(한국명 윤춘식)와도 1만점 게임 선수권을 번갈아가며 차지했을 정도다.
 
세리 시범을 보이는 언니 가쓰라 마사코. 빌리어즈 자료사진
가쓰라 자매가 경성에 와서 가진 첫 번째 시범경기는 숙소였던 조선호텔로서 지금은 없어졌으나, 귀빈용으로 당구대 2대가 비치되어 있었다. 처음 마사코가 단큐에 1,500점을 친 다음 3쿠션 15점을 13큐에 쳤고, 이어 등장한 노리코가 역시 단 한 큐로 1,500점을 치고 3쿠션은 10큐에 15점을 끝내 장내를 잠탄시켰다.
 
이튿날은 종로2가 중앙당구장에서 장안의 고점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묘기 중심으로 시범을 보였는데, 여기서도 두 자매는 1천 5백점과 3구식 3백점을 단번에 끝내 참관자들의 넋을 빼놓았다.
 
세 번째 시범은 일반 관중을 위해 을지로2가의 황금구락부에서 열렸는데, 이들의 재기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로 전차길이 완전히 막혀 기마경찰들이 동원되어 정리하는 대소동을 벌였다. 가쓰라 자매가 서울을 다녀간 뒤로 일본의 고점자들이 속속 한국을 방문하였다.
 
일본의 당대 명수들인 아마다, 후지다 등이 이들로서 이를 계기로 한국의 당구계가 활기를 띠기 시작, 마침내 개화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태평양전쟁 발발 시까지 한국 당구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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