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데이비스는 1980년대 말에 스누커 선수로는 최초로 백만장자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스티브 데이비스. 사진제공 월드 스누커

영국 황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살아있는 스누커의 전설
1981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81번의 우승으로 한화 약 93억 원의 상금을 받아
 
[빌리어즈=김민영 기자] 스티브 데이비스는 스누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평가되는 선수 중의 한 명으로, 대영제국훈장인 MBE와 OBE를 수여받은 영국의 가장 유명한 프로 스누커 선수이다. 1957년 8월에 태어난 그는 현재 58세의 나이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자신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BBC의 스누커 방송에서 분석가와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를 평정한 스포츠 선수인 스티브 데이비스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무려 여섯 번(1981, 1983, 1984, 1987, 1988, 1989)이나 우승을 했으며, 1983/1984 시즌부터 1989/1990 시즌까지 무려 7년 동안 랭킹 1위 자리를 지키는 등 당대의 스누커 황제로 군림했다.
 
특히 1985년 데니스 테일러와의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은 1,850만 명이 시청하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스티브 데이비스는 여섯 개의 월드 타이틀뿐 아니라 세 번의 마스터스 타이틀과 여섯 번의 UK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으며, 총 28개의 랭킹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까지 그는 115개의 결승전에 올라 무려 81개의 프로페셔널 타이틀을 따냈으며, 2008/2009 시즌까지 550만 파운드(약 93억 2,000만 원) 이상의 상금을 획득했다. 
 
스티브 데이비스는 350개 이상의 센추리 브레이크를 기록했는데, 그중에서도 방송대회 사상 첫 147점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한 첫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특히 수비 위주의 경기 방식이 대세였던 80년대 초반에 세운 이 기록은 그 의미가 무척 크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맥시멈 브레이크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맥시멈 브레이크가 되었다.
 
그는 1987/1988 시즌 동안, 한 시즌에 UK 챔피언십과 마스터스, 월드 챔피언십을 모두 석권하며 스누커의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한 최초의 선수로, 1988년에는 영국 황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인 MBE를, 2011년에는 한 등급 위인 OBE를 수여받았다.
 
또한, 동료인 토니 메오와 함께 세계 복식 챔피언십에 출전해 4번의 우승을 손에 넣었으며, 잉글랜드 팀으로 월드 팀 클래식과 월드컵에 출전해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스누커를 책으로 배우다
 
스티브 데이비스를 스누커의 길로 인도한 건 그의 아버지였다. 열렬한 스누커 팬이자 플레이어였던 그의 아버지는 12살의 스티브를 동네 워킹맨스클럽에 데려가 스누커를 치게 해주었고, 그에게 조 데이비스의 스누커 교본을 주었다. 책으로 스누커를 배운 스티브 데이비스는 1970년대에 자신만의 기술을 연마했고, 롬포드에 위치한 루카니아스누커클럽에서 플레이를 시작했다.
 
18살 때, 그의 재능에 주목한 스누커홀 루카니아 테인의 회장인 베리 헌은 그를 자신의 클럽 매니저로 채용했고, 베리 헌은 그 후부터 쭉 데이비스의 친구이자 매니저가 되었다. 헌은 경기마다 그에게 25파운드를 주었고, 데이비스는 온 나라를 여행하며 레이 리어던, 존 스펜서, 알렉스 히긴스 같은 인정받은 프로페셔널 선수들과 챌린지 매치를 벌였다.
 
데이비스는 이 시기에 ‘너깃(Nugget)’이란 별명을 얻었다. ‘너깃’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금덩어리를 말하는 것이다. 데이비스는 1976년 19세 이하 잉글리시빌리어드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는 1978년 포틴스 스프링 오픈의 결승전에서 미래의 라이벌이자 파트너가 될 또 한 명의 선수 토니 메오와 경기를 벌여 그를 꺾고는 아마추어로서는 마지막 우승을 손에 넣었다.
 
1978년 9월 17일 프로페셔널로 정식 데뷔한 그는 포트 블랙에서 프레드 데이비스와 프로페셔널 텔레비전 데뷔전을 치렀으며 1979년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했으나 첫 라운드에서 데니스 테일러에게 11-13으로 지며 높은 월드 타이틀의 벽을 느꼈다. 
 
스누커의 새로운 통치자
 
데이비스는 1980년 월드 챔피언십 준준결승전에서 알렉스 히긴스에게 패하기는 했으나, 디펜딩 챔피언인 테리 그리피스를 꺾고는 준준결승에 올라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는 같은 해에 준결승에서 그리피스를 9-0으로, 결승에서는 알렉스 히긴스를 16-6으로 이기고는 그의 첫 메이저 타이틀인 UK 챔피언십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 무려 18개월 동안 왕좌에 올라 앉았다.
 
1981년 클래식에서 우승한 후 인터내셔널 마스터스와 잉글리시 프로페셔널 타이틀을 획득하는 한편, 1981년 월드 챔피언십 첫 우승을 따내며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그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지미 화이트와 알렉스 히긴스, 테리 그리피스, 디펜딩 챔피언인 클리프 쏜번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 올라 18-12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축하 행사에서 그의 매니저인 베리 헌이 경기장을 가로질러 돌진해 그를 들어올려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인터내셔널 오픈에서 데니스 테일러를 9-0으로 이기며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했으며, 이어진 UK 챔피언십에서도 준결승에서 지미 화이트를 9-0으로 제압하고는 결승에서는 그리피스를 16-3으로 이기며 또 하나의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이때부터 6개월 동안 데이비스와 테리 그리피스는 거의 모든 메이저 토너먼트의 결승전에서 부딪혔다.
 
1982년 1월, 데이비스는 그의 스누커 역사를 다시 썼다. 처음으로 텔레비전 방송대회에서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한 것. 올덤 퀸 엘리자베스홀에서 열린 클래식대회에서 존 스펜서를 상대로 방송 중계 사상 첫 맥시멈 브레이크를 기록한 그는 차를 부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결승전에 오른 그는 그리피스에게 8-9로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다. 
 
데이비스는 그다음 열린 마스터스 결승전에서 그리피스를 9-6으로 꺾으며 생애 첫 마스터스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그의 18개월에 걸친 통치기간은 1982년에서야 끝이 났다.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한 그는 첫 라운드에서 토니 놀스에게 10-1로 패하며 일명 크루시블의 저주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해 말, 그는 3회 연속 UK 챔피언십 타이틀 획득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준준결승에서 그리피스에게 패하며 야망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운이 다한 것은 아니었다. 1983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쏜번을 18-6으로 꺾으며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손에 넣은 그는 UK 챔피언십 타이틀 탈환을 노렸으나 결승전에서 7-0으로 히긴스를 리드하다 단 1점만을 남겨둔 상황에도 불구하고 15-16으로 역전패당하고 말았다.
 
1984년 결승전에서 지미 화이트를 18-16으로 이긴 데이비스는 크루시블에서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고, 히긴스를 16-8로 이기며 UK 타이틀 역시 손에 넣었다. 
 
사진제공 월드 스누커
블랙볼 파이널
 
1985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스티브 데이비스는 흠잡을 데 없는 오프닝 세션을 선보이며 83년과 84년에 이어 세 번째 연이은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얻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데니스 테일러와의 결승전에서 그는 7-0으로 리드하며 저녁 세션에는 8-0까지 차이를 벌려놓았으나, 노련한 테일러가 다시 7-9로 역전. 11-11 동점을 이루자 데이비스가 다시금 17-15로 서서히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테일러가 다음 두 프레임을 이기며 게임은 다시금 17-17 동점 상황에 접어들었고, 마지막 단 한 프레임에 의해 승자가 결정될 운명에 놓였다. 안정적인 샷과 포팅을 시도하던 데이비스가 블랙 볼을 두껍게 맞혀 기회가 테일러에게 넘어가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테일러는 가볍게 프레임을 따내면서 월드 챔피언십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조마조마한 피날레는 1,850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을 했으며, 이 블랙 볼 피니쉬는 ‘2002년 채널4 설문조사’에서 스포츠 역사상 아홉 번째로 위대한 순간에 올랐다. 이후 1985년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데이비스와 테일러는 장장 10시간 21분이라는 스누커 역사상 가장 긴 결승전을 펼친 끝에 데이비스가 마지막 프레임에서 이기며 승리를 차지했다.
 
또한, 1985년 UK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윌리엄 쏜에게 8-13으로 뒤지고 있던 데이비스는 남은 8개의 프레임 중 7개를 이기며 16-14로 역전에 성공, 끝내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 해인 1986년 다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 오른 데이비스는 150: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일반 참가자 조 존슨을 만나 12-18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으나, 그 결과가 그의 톱 랭킹 포지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클래식 대회 우승으로 1987년을 시작한 데이비스는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다시 존슨을 만나 18-14로 이기며 3년 만에 다시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한편, 1988년 두 번째 마스터스 타이틀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그는 마이크 할렛을 9-0으로 꺾으며 대회 역사상 유일한 결승전에서의 0패 승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해 역시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다섯 번째 월드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1988/1989 시즌 인터내셔널 오픈, 그랑프리, 월드 챔피언십, UK 챔피언십, 마스터스, 클래식, 아이리스 마스터스의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그는 1989년 UK 챔피언십에서 헨드리에 의해 준결승전에서 3-9로 저지당하면서 4년 무패 행진은 끝이 나고 말았다.
 
이후 1989년 월드 챔피언십까지 다른 어떤 메이저 대회 타이틀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그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스티븐 헨드리와 존 페롯을 차례로 꺾으며 그의 마지막 월드 챔피언십 우승컵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말, 데이비스는 스누커 사상 최초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사진제공 월드 스누커
뜨거웠던 스누커의 태양이 저물다
 
1990년 월드 챔피언십에서 지미 화이트에게 14-16으로 진 데이비스는 8회 연속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7년 동안 지켜오던 랭킹 1위의 자리를 스티븐 헨드리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는  1990/1991, 1991/1992, 1994/1995, 1995/1996 시즌을 랭킹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여전히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2006/2007 시즌까지 5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톱 16위에 랭크될 수 있었다. 
 
2005년 뉴욕에서 열린 UK 챔피언십에서 데이비스는 100번째 메이저 대회 결승전에 올랐으며, 1990년 이래 처음으로 UK 챔피언십 파이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그는 여러 번 은퇴 제안을 받았으나 그때마다 월드 챔피언십 본선 라운드에 오르며 고려할 가치도 없이 일축해버렸다. 
 
2010년 서른 시간의 사투 끝에 아드리안 군넬을 10-4로 물리친 그는 월드 챔피언십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첫 라운드에서 마크 킹을 10-9로 이긴 그는 52세의 나이에 크루시블 대회장에서 가장 나이 많은 승자로 기록되었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 디펜딩 챔피언 존 히긴스를 13-11로 이긴 그는 크루시블에서 챔피언십이 개최된 33년 동안 가장 위대한 예상 밖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그는 에디 찰튼 이후 가장 나이 많은 월드 챔피언십 준준결승 진출자가 되었다.  뛰어난 스누커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며 좀처럼 쉽게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그는 2013년 오랜만에 월드 시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랭킹에서 64위 밖으로 밀려난 채 시즌을 마감한 그는 36년 만에 처음으로 메인 투어에서 제외되었다. 
 
데이비스는 최근까지도 스누커 외에도 풀 토너먼트에도 참가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으며, 현재 스누커기자협회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2012년에는 그의 첫째 아들 그렉 데이비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누커 투어에서의 우승을 목표로 Q스쿨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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