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장조차 없는 척박한 국내 스누커의 현실에 경종을 울릴 일이 벌어졌다.

2009 홍콩 동아시안게임에서 황철호가 한국 당구 사상 처음으로 스누커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 김민영 기자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스누커 환경을 변화시키고
유망주를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황철호는 모든 사람이 안 된다는 99%의 불가능에 도전했다. 많은 시련을 겪고 끝내 1%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9 홍콩 동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사상 첫 잉글리시빌리어드 금메달을 안겨준 것이다. 언젠가 기자가 그에게 "왜"라는 짧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종목에 도전하여 외로운 길을 걷는 이유 말이다. 쉽지 않은 길,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를 본 10년의 세월 동안 황철호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다. 

1%의 가능성

가능성이 희박할 때에는 어느 누구도 그 희박한 가능성에 손을 내밀지 않는다. 바쁘고 빠른 세상에서 어디든 적용되는 경제적인 논리다. 애석하지만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마냥 돕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잉글리시빌리어드와 스누커가 그렇다. 전 세계에 가장 많다고 자부하는 2만여 개에 달하는 한국의 당구클럽 중에 스누커 테이블이 있는 곳은 단 몇 개의 손가락만으로 다 셀 수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스누커 테이블을 놓는 자리에 캐롬 테이블이 있다면 하루에 몇만 원은 더 벌어다 준다. 그래서 스누커는 한국 당구와 맞지 않는다는 말이 진리처럼 맞아 떨어졌다. 

이렇게 마땅하게 연습할 곳조차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이 흘리는 땀을 모두 괜한 짓이라 생각했다. 연맹의 지원도 현실적으로 돌아갔다. 투자 대비 당장 눈앞에 보이는 효과 때문이다. 근시안적인 편견에 의해 스누커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남은 건 고작 1%. “재들 저래 봐야 괜한 짓 하는 거야. 우리나라에서는 안 돼. 연습할 데도 없는데 무슨 금메달이야." 이런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한 한국 당구의 현실에서 스누커에 대한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단 1%만이 나머지 99%의 불가능에 도전했다. 주목받지 못했던 1%의 도전은 오랜 시간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로 조금씩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마침내 2009 홍콩 동아시안게임에서 이뤄낸 황철호의 사상 첫 번째 금메달을 통해 꿋꿋한 땀과 눈물은 1%의 가능성도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황철호의 땀과 노력

황철호가 처음 큐를 잡은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울 서초동에 있던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중고등학교 때 처음 큐를 잡는 대부분의 선수와 달리 황철호는 21살이 돼서야 큐를 처음 손에 들었다. 연습생 시절의 황철호는 묵묵하고 꾸준했다.
 
한국당구아카데미 스누커 테이블 앞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말없이 오랜 시간을 스누커 테이블과 함께 하던 황철호의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그 묵묵하고 끈질겼던 10년의 세월이 흘러 불가능했던 금메달을 따냈다. 땀과 노력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황철호가 그것을 다시 증명했다.

황철호의 꿈은 트럼펫 연주자였다. 물론 스누커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지만,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그는 재수를 하면서까지 밤낮으로 트럼펫 연주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트럼펫 연주자의 꿈이 좌절되었고 절망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스누커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누커를 우연한 계기로 치게 되면서 황철호는 한국에서 스누커를 아는 '단 1%'가 되었다. 외롭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황철호와 스누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스누커 선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주목을 받는 것은 둘째치고, 마땅히 지원을 해야 할 대한당구연맹에서도 다른 종목보다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철호를 비롯한 스누커 선수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생계를 책임져 달라는 것이 아니다. 선수로서 같이 칠 상대가 없고, 배울 코치가 없고, 테이블이 없어서 연습을 할 수 없는 환경이라도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어차피 한국에서 스누커는 외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해낼 수 없다는 99%가 1%의 도전조차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스포츠 중에 상대방과 싸우지 않는 종목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당구라는 것. 그중에 스누커는 지독하게 외로운 종목이다. 선수래 봐야 양손으로 다 꼽을 수 있을 정도이고,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냉정히 말해 가족밖에 없다. 

“맨날 자기들끼리 해봤자, 거기서 거기야. 스누커는 틀렸어. 국제 시합 내보내 주면 성적이나 올려? 우리가 걔들을 왜 도와줘야 해?” 대한당구연맹 관계자가 많은 사람 앞에서 했던 말이다. 목소리 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스누커 선수들을 내몰수록 점점 스누커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인 수군거림을 한방에 떨쳐낼 반가운 소식을 황철호가 가져온 것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스누커에 모든 것을 내준 학생 선수의 어머니는 황철호가 금메달을 따왔다는 소식에 너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중국의 10년을 보면 답은 알 수 있다. 10년의 세월을 투자한 중국은 세계 최대의 스누커 시장과 딩준후이라는 스누커 세계 챔피언을 얻었다.
 
아시안게임에 걸린 5개의 스누커 금메달은 이미 중국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 당구는 눈을 감고 있다. 지금은 애써 외면할 수 있어도 결코 모른 척할 수 없는 시간이 언젠가 오는데도 말이다. 
 
2009 홍콩 동아시안게임 잉글리시빌리어드 금메달. 사진 김민영 기자

황철호는 말한다.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스누커 환경을 변화시키고 유망주를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스누커 종목을 지원해도 메달을 가져올 수 있다는 객관적인 성과가 필요했고, 이번 금메달이 앞으로 스누커에 대한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는 충분한 명분을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재능이라면 10년 안에 스누커 세계 챔피언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환경이 바뀌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누커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코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남아시아권 스누커 코치를 한국에 데려오는 데 많은 돈이 들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한당구연맹에서 스누커 육성을 목표로 연 2~3,000만 원만 지원한다면 얼마든지 실력 있는 스누커 코치를 섭외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3쿠션 인프라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미래를 내다보고 할 수 있는 투자다. 

앞으로 세계 스누커 무대와 한국의 스누커 선수들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1%의 땀과 노력에 날개를 달아줄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외로운 싸움을 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칼자루는 다른 이들이 쥐고 있지만, 99%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불을 댕기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황철호의 금메달을 축하하며, 1%의 한국 스누커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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