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대한당구연맹(KBF)과 세계캐롬연맹(UMB)의 갈등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

연맹은 ‘탐욕’ ‘강탈’이라는 강렬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UMB를 성토했고, UMB는 연맹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UMB의 새로운 규정에 대해 한국만 예외로 할 수 없다고 응수했다.

양측이 내놓은 날카로운 말꼬챙이들 모두가 세계 3쿠션을 주도하는 거대 단체들의 워딩이라 하기에는 그 수위가 너무 높아서 한편 놀랍고, 또 한편으로는 벌써부터 이 지경으로까지 서로 날을 세웠으니 이러다가 머지않아 강 대 강 충돌의 실제 행동에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무지랭이 범부로서는 높은 분들이 왜 이렇게 상것들처럼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는지 그 자세한 내막을 감히 헤아리기 어렵지만, 뭐랄까 마치 서로 맞지 않는 볼트와 너트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이 헛돌기만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헛도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당구계는 이번에도 위쪽으로 한 계단 더 오르지 못하고 또다시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장래의 이권을 둘러싸고 휘몰아치는 바람결에 잔가지와 잎사귀들은 마치 나무 전체가 뿌리째 뽑히기라도 할 듯이 요란하지만, 이번에도 정작 중요한 기둥과 뿌리는 뒷전으로 밀려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니, 이 요란한 소음이 사실은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이 없고 이 다툼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라도 그 결과는 당구계가 지금까지 보여 왔던 양상과 별 차이가 없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맹과 UMB가 맹렬하게 부딪치는 쇳소리는 귀에 거슬리도록 이렇게 시끄럽지만 정작 리그를 가동시키고 살찌울 선수들의 목소리와 그들에게 박수치고 환호하며 당구계를 떠받칠 동호인 애호가들의 함성은 이번에도 들을 수 없을 거 같다는 말이고, 그래서 이번 싸움이 어떻게 마무리되더라도 그건 대원군이 이기느냐 명성황후가 이기느냐와 비슷한 문제일 뿐이며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의 건국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왕조 지배체제는 그대로 둔 채 실권자만 바뀌는 것으로는 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없듯이, 기존 지배체제를 그대로 둔 채 당구가 고품격화와 스포츠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당구선수는 '지나가는 행인1'이 아니다

'잼라이브'라는 모바일 퀴즈프로그램이 있다.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상금 100만원을 걸어 놓고 아무나 참여해서 객관식 12문제를 풀게 하고서 모두 맞힌 사람들이 상금을 나눠 가지게 하는 스마트폰 앱이다.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기만 하면 누구나 이 퀴즈쇼에 참가할 수 있다. 어떻게 저런 기특하고 기발한 기획을 해냈는지 참으로 놀라운데, 그 덕분에 따분할 수 있는 시간을 아주 재미있게 보내게 되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잼라이브 이벤트의 뿌리와 기둥은 그걸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이벤트를 일주일에 몇 번 할지, 몇 시에 할지, 상금을 얼마로 할지, 광고를 넣을지 말지 등 모두 그들이 정하면 된다.

퀴즈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그걸 즐겁게 소비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댓글을 통해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청할 수는 있지만 그걸 반영할지 말지는 고스란히 운영자의 몫이며, 퀴즈 참가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 때건 자기가 그만두면 그뿐이다.

당구대회와 잼라이브는 같은 성격의 이벤트인가. 당구대회도 대회를 할 때마다 참가자가 다르고, 몇 명이 참가하는지도 모르고, 참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우승했을 때 자기에게 분배될 상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그저 기획자가 모든 사안을 결정하면 그만인 대회인가.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 잼라이브의 본질은 랜덤(Random), 비정형성이지만 당구대회의 본질은 레귤러(Regular), 정형성이다.

당구는 대회마다 참가자격이 정해져 있고 참가인원도 미리 결정되며, 참가하는 사람들도 누구인지 정해져 있고 우승했을 때 상금액수도 정해져 있다.

둘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르냐면, 잼라이브는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당구대회는 불참했을 때 상응하는 제재가 있다.

잼라이브 퀴즈를 풀다가 전화가 와서 도중에 앱을 끄고 중단할 수도 있지만, 당구대회 시합 중에 그만두려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탈이 없다.

만약에 잼라이브 퀴즈풀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도중에 중단했다가는 선수자격까지 문제가 된다.

이것이 당구계가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해왔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정한 자격을 가진 당구선수들을 마치 아무나 참가해도 되는 퀴즈대회의 참가자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당구산업의 대세가 당구선수들이 담당하는 역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구단체는 시대착오적으로 여전히 당구선수들을 퀴즈프로참가자나 또는 로마시절의 검투이벤트에 나오는 일회용 전사처럼 대하고 있는데, 그 부작용은 이미 상당한 정도로 심화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주연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배우들에게 스스로를 '지나가는 행인1', '지나가는 행인2'로 알고 있으라고 계속 주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니 탈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현 단계에서는 바로 이것 때문에 당구계의 발전이 지체되고 가로막히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나머지 과제들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

선수들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걸맞도록 의사결정 권한을 가져야만 당구의 고품격화도 지름길을 찾게 되고, 스포츠산업화도 체계가 세워지며 동력이 전달될 수 있다.

그래서 당구선수들이 당구계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 그것은 현재 시점에서 당구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포함하지 못한 어떠한 논의나 다툼도 헛바퀴다.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

동호인의 평가를 목표로 선수들의 목소리를 정당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UMB와 대한당구연맹이 아무리 강렬하게 불꽃을 튀기고 끽끽 쇳소리를 내며 충돌할지라도 그건 그저 그들만의 시끄러운 이권다툼일 뿐 당구계의 발전을 근원적으로 추동할 수 없다.

 

당구계의 질적 도약을 향하여

대한당구연맹 없이는 한국의 당구계가 오늘의 발전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세부적인 사례들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그건 당구계의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심각한 오류의 가능성이 숨어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구가 발전해 오는 초기의 과정에서는 선수들보다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기여가 더 결정적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게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인가"라고 질문해보면 상황이 이제는 그렇지 않음을, 바꿔 말해 '당구발전에 기여하는 주체들의 구성이 과거와는 전혀 달라졌음'을 누구라도 바로 알 수 있다.

체육회 지원금과 행정단체들의 협조를 중심으로 꾸려나가야 했던 말죽거리 잔혹사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시대가 바뀐 줄 모르고 아직도 과거의 방법에 매달리려는 경향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지 못했을 뿐이다.

1000만 동호인에 2만 3000개소의 당구장과 최다 인원의 실제 이용자 수를 자랑하는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체육회지원금과 그에 수반하여 연맹에 부여되는 자격을 움켜쥐고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다음 차례에는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만 마음 써 왔던 관성 때문에 당구인 모두가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해 왔을 뿐이다.

이점에 대하여 UMB도 결코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세계대회 우승상금이 서로 비슷했던 1940년대 이후에 골프의 산업 규모가 수천 배 성장하는 동안 세계당구연맹은 대체 뭐하느라 허송세월을 했기에 당구의 산업 규모를 이 지경으로 지체시키고 말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당구산업을 탄탄하게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동호인들은 선수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당구경기를 즐기기 위해 여러 지출항목에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당구계는 그걸 바탕으로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초창기에 체육회 지원금에 매달리며 생존을 도모하던 '의존성' 또는 '기생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당구계가 스스로 생존하며 자체적으로 확대해나가는 '자립성' 또는 '독자성'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다.

험한 강을 건너는 데 썼던 바로 그 배를 타고 우리의 앞을 가로막은 험한 산도 넘을 수는 없다.

당구계가 처한 여건이 달라졌고 풀어야 할 과제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과거에 당구계의 발전을 이루는데 효과적이었던 방법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미래의 발전을 이루는 방법도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왕년의 무용담들, 과거에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었던 여건에서 누가 얼마나 고생의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스토리는 후배들의 참고용으로 기록으로 남겨놓고 선술집에서 추억을 되살리는 안주용으로나 꺼낼 이야기들이다.

과거의 여정에 매달리기만 하거나, 더 나아가서 혹시라도 그걸 근거로 행세할 요량으로 당구계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가치중립적인 학술적 표현을 빌리자면, 미래로 나아가자는 마당에 과거의 방법을 풀어놓으며 방해하는 것, 바로 그것을 지칭하는 말이 저 유명한 정치학용어 ‘리액셔너리(Reactionary,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것. 반동)'이다.

이런 경향은 우리가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피해야 할 오류이자 위험한 함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옛날 배고프던 그 시절에 '동백 아가씨'나 '미워도 다시 한번'이 아무리 듣기 좋던 노래였어도 이제는 모두 철이 한참이나 지난 유행가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한 반복으로 옛노래만 틀어대는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용필을 거치고 서태지를 거치고 핑클과 SES를 지나며 계속 나아가야만 결국 '한류 열풍'을 이루고 모두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음을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자명하다. 현재를 진단하고 그걸 바탕으로 미래로 가는 도구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여건은 무엇인가를 분석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분석을 기반으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야 하고, 그 후에는 목표로 나아가는 효율적인 방법을 의논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필자의 영역 밖의 일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L3C의 공식입장에서도 또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항상 현재 단계에서 당구계의 최대과제가 '선수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시스템'임을 강조해 왔다.

우리는 연맹, 당구관련 업체, 동호인, 방송사, 스폰서 등 당구의 발전에 기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함께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 수 있으며, 우리가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선수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정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세우는 것임을 항상 강조해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모두가 당구선수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선수들은 스스로의 역할과 소양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자각해야 하고, 다른 주체들은 과거의 선입견을 바탕으로 선수들을 소홀히 대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이 앞으로 소양을 더하고 더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당구계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들에 대한 논의는 당구계의 여러 주체들이 장기간에 걸쳐 함께 논의할 영역이며 필자가 함부로 구체적인 화두를 꺼내 참견할 일이 아니다.

다만 그런 논의가 어떤 결론을 끌어낸다 해도 당구선수들이 실질적으로 배제된 논의라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빌리어즈>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 김태석(레이아웃 3쿠션 L3C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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