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전용' 당구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지난해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104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1993년 5월 13일을 기억하라!

당구가 한국에 도입되는 시기부터 당구장 환경이 상업화되다 보니 스포츠 당구는 ‘유기 또는 오락’이라는 오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구장 출입문에 떡하니 붙어 있었던 ‘18세 미만 출입금지’ 문구가 당구장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는 장소라는 것, 당구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했기 때문이다.

‘성인 전용’이었던 당시 당구장의 환경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당구는 억울하게도 스포츠가 아닌 오락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고, 한때 법으로조차 당구를 ‘유기’로 치부했던 시기가 있기도 했다. 

그런 당구가 스포츠라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한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89년「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당구장이 골프, 탁구, 수영, 볼링 등 19개 종목과 함께 체육시설로 분류된 것이다. 당구장업은 구 공중위생법(1986.5.10 법률 제3822호)상 ‘유기장업’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와 선수위원회가 발족되어 지속적으로 당구가 스포츠임을 알리는 대회를 추진하고, 당구 전문지인 본지(월간당구)가 문화관광부로부터 당구 잡지를 스포츠 잡지로 허가를 받아내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구는 관에 의해 그리고 법에 의해 유기의 굴레를 탈피하고 스포츠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1989년에 당구는 비로소 스포츠로 운신하는 길이 트였지만, 「 체육시설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때 다른 종목과 달리 당구는 구 공중위생법 소정의 유기장업으로 당구장업이 규제받을 당시의 행정내부처리 지침상 규제관행이 법령 변경 이후에도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존치하여 “18세 미만 청소년의 출입을 금지하는 문구를 출입문에 부착해야 한다”는 시행규칙이 삭제되지 않았다.

당구장이 법적 체육시설로 규정되기는 했지만, 청소년이 당구장에 출입하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면서 하는 스포츠라는 불편한 사실로 인해 당구와 당구장은 여전히 유해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당구에 대한 부당한 제한을 풀기 위해 당구인들이 수년간 자료를 모으고 준비한 끝에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은평지회장 출신이었던 당시 박기호 은평구의원이 선두에 나서 헌법재판소에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과 동 시행규칙에 명시된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당구장 출입 금지’ 법안에 대해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5조에 대한 헌법소원’(92헌마 80)을 제기하게 되었다. 

당시에 보수적인 한국 사회의 통념 때문에 당구장에 청소년이 출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고, 당구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오락이라는 판결이 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당구는 스포츠이고 당구장은 법적 체육시설이기 때문에 ‘청소년이 들어갈 수 없다’는 시행규칙은 최상위법인 헌법에 명시된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에 전면 배치되는 법률이었다는 판단으로 헌법소원이 진행된 것이다.

스포츠를 정당하게 즐길 권리가 있는 청소년이 체육시설인 당구장에 출입하는 것을 막을 것이 아니라, 체육시설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행동을 못 하게 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결국, 이 헌법소원은 1992년 5월 18일에 과연 헌법재판에 회부될 가치가 있는가를 결정하는 예비재판을 통과하고, 그로부터 꼭 1년 뒤인 1993년 5월 13일에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 금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게 되었다.

이날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판결은 훗날 당구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결정적인 두 번째 사건이 되었다.  

 

매년 한국에서 개최되고 있는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헌법재판소, 당구는 스포츠다!

헌법재판소는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청구인의 주장과 이에 반대의견을 낸 문화체육부장관, 법무부장관의 의견을 바탕으로 청소년의 기본권 침해가 있었는지, 당구장 직업종사자 자유에 대한 제한이 있었는지, 당구를 다른 종목과 차별하여 관리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는지,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한 문화체육부가 모법으로부터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해당되는 것인가 등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청구인은 ‘18세 미만 청소년의 출입 제한’ 표시를 게시할 것을 의무화하는 규정이 모법에 근거가 없는 규제를 가하고 있고, 유독 당구장업에 대해서만 차별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은 헌법상의 사회보장권, 자유권리존중권,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반해 문화체육부장관은 “당구장에서 불건전한 행위가 이뤄지고 있고, 청소년의 비행과 탈선을 조장하는 장소로 인식되기 때문에 18세 미만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제한은 타당한 규제다”라는 의견을 제출했고, 법무부장관 역시 “헌법 제37조 제1항의 청구인이 침해당하였다는 권리 내용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평등이란 절대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으로 제도의 목적달성을 위하고 사회 통념상 적정하며 인간의 존엄에 위배되지 않는 규제는 합리적인 것이며, 출입 금지를 게시만을 의무화한다고 해서 출입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모법의 위임한계를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청구인의 헌법소원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내놓았다.     

시민단체와 각종 언론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하는 등 여론까지 좋지 않은 상황에서 9인의 헌법재판관을 설득하기 위한 청구인 박기호 의원과 이 사건의 변론을 맡은 이원형(당시 민주당 국회의원) 변호사는 1년 동안 2.5톤 트럭 2대분의 서류를 제출하며 꼼꼼하게 준비했고, 본지를 비롯한 당구계는 이들을 도와 합리적인 판결이 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그 결과 1년 뒤인 1993년 5월 13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9인이 전원일치로 ‘당구장의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출입 제한’위헌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국가와 법의 권력, 국민의 부정적인 인식을 상대로 한 길고 오랜 싸움을 통해 당구는 비로소 정당한 권리를 찾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통해 ‘당구는 스포츠다’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국가대표 선수단

헌법재판관 9인의 설득

1993년 당시는 당구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도 더 좋지 못한 시절이었다. 매스컴을 통해서 당구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부분만 대중에 노출되어 당구장에 출입하는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때였다.

원로 당구인들은 이런 불합리한 대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구선수라는 것을 가족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하고, 당구선수라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당하고, 가족들은 아버지가 당구선수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던 평생의 설움을 감내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당시 시대적 정서를 뒤집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어떻게 나왔던 것일까? 그것도 헌법재판관 9인의 만장일치로 말이다. 이것은 당구인들의 노력이 헌법재판관들을 설득시켰기 때문이다. 

대한당구경기인협회(당시 회장 김영재),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당시 회장 양태주), 한국당구위원회(당시 회장 김문장) 등의 당구 관련 단체가 합심하여 91년 UMB 서울 월드컵 유치, 한국당구최강전 시리즈, 월간당구배 전국아마추어당구대회 개최 등 당구의 스포츠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당구가 대중에게 스포츠로 점점 인식되는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당구인들이 합심하여 진행된 당구의 스포츠화 사업은 몇 년 뒤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헌법재판관을 설득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고 김영재 회장이 사재를 털어 유치했던 91년 서울 3쿠션 월드컵이 왜 한국 당구사에 길이 남을 쾌거였는지, 원로 당구인들이 개최했던 크고 작은 대회들이 왜 당구가 스포츠화되는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인지는 당구계 내부적으로도 올바른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당구 원로와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는 한국 당구의 스포츠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이다. 이들의 노력에 의해 지금의 김경률, 최성원, 김가영, 차유람 등이  당구선수라고 불릴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의 스포츠 당구가 한국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국에서는 “당구가 유해한 것인가, 스포츠인 것인가”하는 논란이 헌법재판관 9인의 판결로 판가름나는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그 판결문에는 단순히 논란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만 기술한 것이 아니라, 당구의 스포츠적 요소, 당구문화 형성 방안, 미래 당구 종목의 발전 방안 등에 대해 낱낱이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헌법재판소가 판단한 청소년이 당구를 칠 수 있는 권리, 당구장이 체육시설로 발전해야 할 의무, 당구가 스포츠로 인정되어야 할 이유 등을 기반으로 당구는 스포츠로의 발전을 도모해 왔다.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당구와 청소년의 권리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1989.7.12. 체육부령 제13호) 제5조의 ‘체육시설업의 시설, 설비, 안전관리 및 위생기준’(별표1)에 수록되어 있는 ‘안전관리 및 위생기준의 개별기준’(당구장업)에 의해 당구장은 출입문에 18세 미만 청소년의 출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표시를 해야 했다.

따라서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은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당구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오락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청소년이 갈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이었던 당구장 역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관 같은 대접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당구와 당구장은 모두 유해하여 청소년은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그걸 법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 앞서 말한 법률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바로 이 법이 ‘청소년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문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A4 용지 10매 분량의 판결문의 전문은 본지(월간당구 1993년 7월호)에 실린 바 있다.

이 위헌 판결문을 간추려보면 “18세 미만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제한하는 법률은 1 다른 스포츠 종목에는 적용되지 않은 법률로 당구장업자의 헌법상 직업종사(수행)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고, 2 18세 미만 청소년 중 당구에 소질이 있어 그 방면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서 청소년의 헌법상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내지 행복추구권, 평등권, 복지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며, 3 당구장에 미성년자가 출입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폐해 내지 문제점을 당구장 시설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미성년자에 대한 일률적인 출입금지가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요지로써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을 금지하는 법률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근거로 “당구를 스포츠로 인정하고 당구장 환경을 개선하여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종목 선수로 육성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전문을 살펴보면 헌법재판소는 “서울 장애자올림픽이나 바르셀로나 장애자올림픽에서 당구가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어 있었던 사정과 한국체육대학에서 체육교재로 쓰이고 있는 책자에 당구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운동의 일종임이 분명한 것으로 판단되고, 당구에는 신체운동적 요소와 경기 속성상 정신을 집중시키고 성격을 침착하게 하는 기능도 없지 않으며, 짧은 시간에 스트레스 해소나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여가선용이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비용부담의 문제도 승마장이나 골프장에 비하여 과중하다고 하기 어렵고, 음주, 흡연이나 도박의 문제도 당구장에 한해서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장애자올림픽 등에 대비해 선수의 조기발굴과 조기훈련이 불가피하다는 수요를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판결문은 당구를 오락이냐, 스포츠냐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대중에게 ‘당구는 스포츠이고, 긍정적인 기능을 가진 생활체육 종목이며, 국위선양을 위해 엘리트 선수를 조기 육성해야 한다’는 것을 법적 판결로 인정한 것이다.

당구장의 청소년 출입 여부를 놓고 한동안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셌지만, 무려 22년이나 지난 지금 청소년의 당구장 출입으로 인한 그 어떤 폐해도 증명된 것이 없고, 오히려 청소년에게 당구장을 개방함으로써 김경률, 최성원, 김가영, 차유람 등이 아시안게임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국위선양을 하는 긍정적인 결과가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실버 시대를 맞은 요즘은 당구를 통해 노년을 즐기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 헌재의 판결문에 명시된 바 있는 당구장의 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시기다.

그런데 이런 시대의 요구와 흐름과 달리 당구장의 환경 문제, 금연 문제를 놓고 청소년 출입금지 ‘성인 전용’ 당구장과 청소년이 출입할 수 있는 금연당구장으로 이원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인가? 

('응답하라, 1993(3)'에서 계속)

 

<빌리어즈>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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