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여성 국회의원의 ‘겐세이’ 발언으로 한참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월 2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 중 대정부질문을 하던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소유한 서울 대치동 아파트를 문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

이 의원이 “거주하지도 않는 아파트를 김 부총리가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상호 간에 언성이 높아졌고, 회의를 주재하던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질의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제지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유 위원장에게 “겐세이를 놓으신 거 아닙니까”라고 따져 물었던 것.

여론은 3.1절을 앞두고 국회의원이 일본식 표현인 ‘겐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 의원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 의원의 겐세이 발언은 언론에 보도되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국회에서 문제가 된 '겐세이'는 오래 전부터 '견제'라는 단어로 사용을 유도해 왔으나, 한국 당구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관계로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본지 87년 10월호에 게재한 '올바른 당구경기 용어' 기사 중 일부.


필자는 하필이면 당구의 부정적인 부분이 부각되어 이번 논란의 중심에 회자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문제가 된 ‘겐세이’라는 단어는 ‘견제’를 뜻하는 일본어 ‘켄세이’에서 온 것으로 그동안 당구장에서 게임 중에 자주 사용되던 용어다. 

초창기 당구가 일본의 영향을 받다 보니 당구 용어는 일본어를 번역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국제 당구대회를 국내에서 개최하고 방송 중계를 하는 등 제도권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일본식 당구 용어 사용을 자제하게 되었고, 대부분의 당구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어로 순화된 용어를 사용해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겐세이’도 ‘견제’나 ‘방해’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완전하게 일본식 표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당구장에서 사용되었던 겐세이를 비롯해 마오시, 우라, 히끼 등 많은 일본식 표현들은 여전히 당구 문화에 남아 있다. 본지에서 당구 용어 순화 문제를 제기하며 당구에 대한 이미지 변화를 시도했던 것도 벌써 3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80년대 후반 당구의 이미지 변화를 위해 일본식 당구 용어를 본격적으로 한국어로 순화하기 시작했다. 본지 87년 10월호에 게재된 '올바른 당구경기 용어' 기사 중 일부.


31년 전 필자가 <빌리어즈(월간 당구)>를 창간할 87년 당시에 당구는 공중위생법의 적용을 받는 유기업종이었고, 그 당시에도 계속해서 일본을 통해 당구를 배우고 있던 처지였다. 따라서 일본식 당구 용어를 사용하는 국내 당구 문화를 쉽게 벗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구 용어조차도 ‘일본의 잔재’로 남아 있는 것을 탈피하고자 창간 직후 당구인들의 조언을 얻어 올바른 당구 용어를 한국어로 순화하여 기사로 게재하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진 일본식 당구 용어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지만, 당구선수와 당구인들의 의식 변화를 통해 용어도 서서히 순화되어 갔다.

세월이 흘러 한국 당구가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 중심에 서 있는 지금, 아직도 일본식 당구 용어가 빈번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당구인들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 국회의원의 ‘겐세이 발언 사태’는 당구계 입장에서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사건이다. 

당구선수들의 활약으로 당구 이미지가 한참 고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국민 정서에 어긋난 용어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도 당구클럽에서 사용되는 일본 잔재의 용어를 흔적없이 지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구가 건전한 국민 스포츠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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