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는 많은 얼굴이 담긴다. 선수뿐만 아니라 관중들의 모습도 저절로 들어온다.

내가 쓰는 아이디는 ‘LifeTimePhoto’다. 이 아이디는 사진은 인생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은 인생의 순간, 연속된 시간의 한 장면을 정지화면으로 남긴다.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는 뷰파인더 속에서 무수한 이야기들을 한 컷의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을 좋아한다. 그래서 난 스튜디오 사진이나 마주 보며 찍는 사진보다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몰래 찍는 사진을 좋아한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색감과 자연스러운 표정이 더 좋은 사진을 만들어 준다. 

사진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왔다. 중학교 시절 사진부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본 친척이 ‘미놀타 X-100’이라는 카메라를 선물로 주었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갖게 되어 신이 난 나는 독학으로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 이 책, 저 책 뒤지면서 사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공부했고, 시간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포토그래퍼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마구 눌러대는 셔터맨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뷰파인더 속에서 보았던 순간이 인화지에 그대로 담겨 나올 때면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다. 

당구대회를 찍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수원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에서부터였다. 그 후부터 여러 대회의 진행을 맡으면서 시간 날 때마다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매년 열렸던 월드컵과 지난해 열렸던 인천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 그리고 이번에 서울에서 열린 세계3쿠션당구선수권대회까지 최근 한국 당구계에 있었던 크고 작은 대회의 장면들을 뷰파인더를 통해 모두 담아냈다. 

대회마다 대략 3,000~5,000컷의 사진을 찍는다. 연사(연속으로 여러 장 촬영하는)를 사용하지 않고, 한 장면에 2~3컷 정도 연속해서 셔터를 누른다. 이번 세계3쿠션당구선수권대회에서도 5,390컷을 찍었다. 대회 진행을 돕는 시간이 아니라면 내 눈은 항상 뷰파인더를 보고 있었다. 비슷한 장면이나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제외하니 컴퓨터에 대략 2,000컷의 사진이 남아 있다. 

내가 찍은 사진 중에는 선수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기를 보는 관중, 득점을 외치는 심판, 바쁘게 뛰어다니는 스태프, 대회장에 설치된 장치와 장식물 등 대회장 구석구석까지 모든 것을 찍는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관중의 사진이다.

어떤 사람들이 당구 경기를 보러 오느냐, 어떤 매너로 당구 경기 관람을 하느냐는 당구가 과연 얼마나 발전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당구 경기의 관중은 둘로 나뉜다. 일반 관중과 관계자 관중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의외로 일반 관중보다 관계자 관중의 관람 태도가 좋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관계자가 경기 진행에 방해가 되는 경우에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민망하다. 

일반 관중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에 하나가 바로 음식물 반입이다. 과거에는 휴대폰 벨소리가 간혹 경기를 방해하곤 했지만 요즘에는 많이 좋아졌다. 대신 음식물 반입이라는 또다른 문제가 눈에 보인다. 일반적으로 실내경기장(혹은 공연장)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영화관의 경우 상당부분 매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반입을 하용하고 있지만, 감정 이입을 하고 영화를 보는 순간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부스럭거리며 팝콘과 콜라를 마시면 마찬가지로 관람에 방해가 된다. 

당구 경기는 야구나 축구처럼 신나게 응원하면서 볼 수 있는 종목은 아니다. 그래서 경기장 입구에‘음식물 반입 금지’라고 써 놓지만, 실제로는 음료수, 커피, 샌드위치, 빵, 김밥, 떡볶이, 순대 등 다양한 음식물이 반입되고 있다.

나도 가끔은 스테이크를 썰면서 당구 경기를 관람하는 상상을 하곤 하지만, 이벤트 경기라면 모를까 세계선수권대회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경기가 치러지는 순간에는 선수들의 경기력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선수가 샷을 하기 위해 엎드렸는데, 맞은편 관중이 우물우물하면서 김밥을 먹고 있다면 어떻겠나. 물론 선수는 공에 집중하기 때문에 잘 보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장면을 수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일반 관중이 아닌 관계자 관중이라면 더욱 실망스럽다. 대회를 마치고 관중석 철거할 때 바닥에 제일 많이 남는 것이 생수통과 종이컵, 음식물 찌꺼기 등 관중이 남기고 간 취식의 흔적들이라는 것은 아직 관중 문화가 성숙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성숙한 관중 문화가 스포츠의 양적, 질적 성장을 견인한다. 당구라는 스포츠에 격에 맞는 관중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ID카드를 목에 건 관계자 관중은 일반 관중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ID카드를 목에 걸고 경기 중에 휴대폰 소리를 내거나, 음식물을 취식하거나, 소리 내 떠들거나, 선수가 샷을 하는 앞을 지나가는 행동을 한다면 일반 관중 역시 그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성숙한 관중 문화는 당구인이 먼저 모범을 보이고, 일반 관중이 관계자 관중의 행동을 따라 하도록 인식시켜야 한다. 마이크로 열심히 이래라저래라 해놓고 막상 ID카드에 얼굴과 이름을 새겨놓은 당구인이 함부로 행동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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