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호가 얼마 전 열린 버호벤 오픈에서 시도한 긴 더블레일 빈쿠션치기. Kozoom 방송화면 갈무리

[빌리어즈=김탁 기자] "도대체 저런 샷을 어떻게 생각했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가끔 일반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길을 찾아서 생각지도 못했던 샷을 구사해 성공시키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득점력을 인정받는 조재호(37∙서울시청)는 지난 7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2017 버호벤 오픈 3쿠션 당구대회'에서 '긴 더블레일 빈쿠션치기'를 성공시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우승을 차지한 그는 8강전에서 '사대천왕' 프레데릭 쿠드롱(49∙벨기에)과 대결해 경기 초반 5:2로 근소하게 앞서 있었다.

어느 순간 조재호 타석에서 쉽지 않은 배치가 놓였다. 

목적구 2개가 좌우로 길게 벌어져 있었고, 둘 다 레일에 바짝 붙어 있어서 오차 범위가 적기 때문에 정확성이 더욱 요구되는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당구대를 보면서 잠시 생각하던 조재호가 제1적구가 아닌 빈쿠션을 향해 엎드렸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어떤 샷을 구사할 것인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긴 더블레일은 조재호의 특기이기도 하지만, 빈쿠션을 먼저 쳐서 좌우로 길게 벌어져 있는 2개의 적구를 맞히는 것은 확률이 무척 떨어져 보였다.

그래픽=장한얼 기자

그런데 큐 끝을 출발해 쿠션에 맞고 당구대 위에서 궤적을 그려 나가 휙휙 길게 움직이던 수구는 레일을 3번이나 돌아 제1적구에 접촉했다.

제1적구에 맞고 난 다음 수구의 움직임을 보니 '제대로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 제1적구의 두께를 맞힌 수구는 제2적구를 타격할 수 있는 오차 범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네 번째, 다섯 번째 레일에 맞은 수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2적구를 타격했다. 
 

세계 최고의 득점력을 인정 받는 조재호. 빌리어즈 자료사진

이상천 경기 보는 듯한 '긴 더블레일 빈쿠션치기' 
조재호,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그려졌다" 

평소 워낙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 때문인지 조재호는 어려운 포지션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만의 플레이를 구사한다.

이것이 조재호 경기가 당구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재호는 <빌리어즈>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긴 더블레일을 자주 치다 보니까, 타석에 들어서면서 눈에 그려졌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조재호처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의 경기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당구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당구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플레이로 명성이 높았던 선수는 고 이상천 전 대한당구연맹 회장이다. 

이 전 회장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샷'을 실전 경기에서 성공시키는 플레이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정석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었다. 

한 당구인은 "이상천이 대단한 이유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샷을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구사해 보란 듯이 성공시키기 때문이다"라며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조재호의 '긴 더블레일 빈쿠션치기'는 이상천 전 회장을 기리기 위해 열린 버호벤 오픈에서 나온, 마치 이상천을 보는 듯한 샷이기에 그 의미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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