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누커 월드 챔피언십 트로피. 빌리어즈 자료사진(Tai Chengzhe)


'꿈의 프로당구 무대' 월드 스누커(World Snooker)에 한국 당구선수가 진출할 가능성은 정말 희박할까. 

연간 100억원 이상 상금을 주는 세계 최대 당구 투어 '월드 스누커'는 중위권 이상 선수들도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 수만 명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매년 도전장을 내민다. 

스누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과 경쟁해서 상위 0.1% 안에 들어야 한다.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진입 장벽이 무척 높은 것.

이 때문에 한국 당구선수의 월드 스누커 진출은 녹록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이 월드 스누커 무대에 진출하는 것을 두고 '할 수 있다, 없다'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논쟁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열린 '2017 아슈하바트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에 스누커 국가대표로 출전한 이대규(21∙인천시체육회)가 한국의 월드 스누커 진출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한국의 이대규. 빌리어즈 자료사진(ACBS 아시아스포츠당구연맹)


이대규는 실내무도대회 스누커 남자부 개인전에서 16강전에 진출했다. 

지난 9월 25일 열린 16강전에서 이대규는 이란의 소헤일 바헤디(28)와 대결했다. 

그리고 이어서 벌어진 박빙의 승부는 세계 스누커 관계자들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바헤디는 IBSF 아마추어 스누커 월드 챔피언십에서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실력자다. 

IBSF 월드 챔피언십 우승자라는 것은 바로 '전 세계 상위 0.1%'에 해당하는 월드 스누커 프로선수라는 얘기.  

바헤디는 지난해 아마추어 스누커 세계 챔피언에 오르며 올해 처음으로 스누커 프로선수가 되었다. 

국제무대에서는 이미 아마추어 최강 실력자로 인정받는 선수였고, 최근 아주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7월 열린 '2017 브로츠와프 월드게임' 스누커 남자부 개인전에서 인디언 오픈 4강에 올랐던 중국의 스누커 프로선수 쑤시(19)를 3-2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아슈하바트에서도 이대규를 만나기까지 스누커 종목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따고 있었다. 

 

'2017 아슈하바트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 스누커 남자부 개인전 16강에서 한국의 이대규와 명승부를 벌였던 이란의 소헤일 바헤디는 월드 스누커 프로 무대에서 두 번이나 본선에 진출한 프로 선수다. 빌리어즈 자료사진(ACBS 아시아스포츠당구연맹)

이대규, 스누커 프로 바헤디 상대로 박빙 경기력
"한국 스누커 가능성 여실히 입증한 것"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바헤디가 '꿈의 무대'인 월드 스누커 본선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린 선수라는 것이다. 

바헤디는 지난 8월 3일 잉글랜드 프레스턴 길드홀에서 열린 '2017 888스포츠 유럽피언 마스터스' 예선 128강전에서 스누커 세계 랭킹 43위에 올라 있는 베테랑 스누커 선수 마이크 던(45)을 4-0으로 완파하고 64강 본선에 진출했다.

바헤디는 이 경기에 하루 앞서 열린 인디언 오픈 예선전에서도 마틴 굴드(세계 22위)를 4-1로 꺾고 인디언 오픈 본선에 오르기도 했다.

이대규는 이렇게 아슈하바트 16강전에서 한창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바헤디를 상대했다.

그런데 바헤디는 이대규를 상대로 쩔쩔맸다. 1프레임을 40:70으로 내주었고, 2프레임에서도 접전 끝에 64:48로 겨우 이겼다.

3프레임을 68:5로 이긴 바헤디는 4프레임에서 66:67로 1점 차 참패를 당했다. 이어서 5프레임. 이대규는 83:36으로 승리하며 프로선수 바헤디를 상대로 경기를 뒤집었다. (3-2)

승리까지 남은 단 한 프레임을 두고 바헤디의 저력이 나오면서 이대규가 끝내 3-4로 패하긴 했지만, 스누커 프로선수를 상대로 스물한 살의 한국 유망주가 이길 뻔한 경기를 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일이었다.
 

최근 월드 스누커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중국의 저우여룽(맨 오른쪽) 등과 나란히 아슈하바트 시상대에 오른 소헤일 바헤디(오른쪽 두 번째). 빌리어즈 자료사진(ACBS 아시아스포츠당구연맹)


월드 스누커 무대에서 세계 톱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바헤디와 명승부를 벌인 이대규는 한국 스누커의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십 년 안에는 결코 넘기 힘든 높은 벽이라고만 여겼던 스누커 프로 무대가 성큼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관계자들은 "유소년 스누커 선수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유망주들을 계속 키워나가다 보면 십수 년 내에 중국처럼 월드 스누커 무대에서 수십억 상금을 받고 한국에 돌아오는 '스누커 스타'를 배출할 날이 올 것이다"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또 "한국 스누커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이대규가 그것을 보여주었고, 이제는 장기 계획을 세워 어떤 투자와 지원을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때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기관과 구성원들은 스누커에 대한 지원과 육성 방안을 이제는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주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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