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학 국회부의장이 회장 맡아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을 치른 후 피란생활에 수복을 한 당구인들은 1955년도에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당구장 숫자도 만이 늘고 당구계도 서서히 질서가 잡히면서 당구인들 간에는 당구를 발전시키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당시 정치인들, 특히 집권당인 자유당 국회의원들이 당구를 아주 좋아해서 틈 나는 대로 당구장을 출입하며 당구인들과 어울리기를 즐겨 하였다. 그때 그들의 당구 실력은 자유당 국회의원인 김익기 의원이 300점, 하태환 의원 150점, 김재황 의원 150점, 민관식 의원 150점, 정태천 의원 120점, 이재학 국회부의장이 80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과 당구인들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자유당 국회의원들이 당구계의 현실을 알게 되고 당구계 발전에 협조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한종 이사장

55년도에 미도파백화점 뒤 삼화당구장에 이들 국회의원들과 당구인들이 많이 모였는데, 당구 발전을 위한 논의가 이곳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결과 그 해 11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당구계 조직인 대한당구협회가 설립되었다. 회장에 이재학 국회부의장, 부회장에 당구인 방용하와 홍사철 중소기업연합회 전무, 이사장은 당구인 이한종이 맡았다. 


■ 대한당구협회 주최 전국당구대회 개최 

56년 1월 19, 20일에는 대한당구협회 창립 기념 제1회 전국선수권대회가 명동에서 1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국회의장상, 국회부의장상, 문교부장관상, 보건사회부장관상 등 당구인들로서는 처음 대하는 상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조동성 씨

해외파인 최용의 묘기공 시범은 참관자들을 매료시켰다. 경기종목은 도시대항전, 최고조(1000점), A조(500점), B조로 실시하였다. 최고조에서는 조동성이 우승을 하였는데, ‘대한뉴스’에서 우리나라의 최고 고점자로 소개되었다.

A조에서는 박윤조(부산)가 우승, 최기창(서울)이 2위를 차지하였는데, 특히 최기창은 1회전에서 5회전까지 단번치기로 경기를 끝내는 좋은 기량을 보여 갈채를 받았다. 도시대항전 1위는 서울팀이 차지하였다. 

57년 5월에는 서울 신문회관에서 제2회 대한당구협회 주체 전국당구대회가 개최되었다. 우승은 최석영이 차지하였다. 

부산에서는 대한당구협회 부산지부(지부장 전병학)가 조직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57년 10월 19, 20일에는 부산지부 주최로 경남고등학교 강당에서 전국당구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종목은 4구식 경기, 3쿠션 경기 2종목이었다. 대대에서 3쿠션 경기가 치러지기는 이 대회가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박수복, 조동성, 그리고 제2회 전국당구대회 우승자인 최석영이 초청되었다. 3쿠션 경기에서는 조동성이 G.A 1.00의 좋은 기록으로 우승하였고, 4구식 경기에서는 최고조에서 윤진태가 우승을 차지하였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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