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당구 종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없다. 왜냐하면, 한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단연 캐롬이 강세이고, 미국과 대만, 중국 등에서는 풀이 대중적이다.
 
반면,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과 중국, 대만, 인도 등에서는 스누커의 인기가 상당하다. 특히 스누커는 당구 종목 중 유일하게 프로 리그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상금 규모 또한 어마어마해서 당구 종목 상금 랭킹에서는 스누커 선수들의 상금 수입을 아예 열외로 놓고 있다.
 
또한, 스누커 세계선수권대회가 시작되면 영국에서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일주일 동안 스누커 대회를 생방송으로 중계한다. 몇 년 전부터는 중국의 가세로 스누커의 영국에서의 열기가 아시아로 옮겨 오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스누커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세계 최고의 당구 천국이라고 여겨지는 당구클럽 문화는 대부분 4구나 3쿠션의 캐롬 중심이다. 선수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당구연맹에서도 인기종목인 캐롬에만 관심을 두고 있고, 스누커와 풀은 체계적인 훈련과정과 동기부여가 될 만한 대회가 전무한 실정이다.
 
상금 규모는 말할 필요도 없고, 대회 자체가 거의 열리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사실상 한국에서 스누커 선수로 산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10여 명의 스누커 선수가 있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부터 스누커의 매력에 빠져 언젠가는 한국을 대표해 세계 최고의 스누커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오늘도 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주니어 선수들이 있다.
 
비록 연맹은 예산이 없다며 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조차 열어주지 않고, 국제대회에 국가대표로 나가려면 인솔자의 경비까지 고스란히 떠 안고 출전해야 하지만 그래도 스누커 선수가 되고 싶다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국제대회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8월에 열린 ‘U21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3명의 한국 선수들이 모두 12강에 올라 한국 스누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혜민도 그중 한 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며 주니어에서 성인무대로 막 옮겨온 최혜민은 이제 우리나라의 유일한 여자 스누커 선수가 되었다.
 
덕분에 핸디도 없이 성인 남자 선수들과 겨뤄야 하지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만 있다면 그런 핸디캡쯤은 감수할 수 있다. 
 
8월에 열렸던 ‘U21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 12강까지 오르는 성적을 올렸다. 축하한다. 
▶ 감사하다. 이대규, 박정민 선수랑 함께 출전해서 셋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둬서 더 기쁘다. 앞으로 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2번 남았는데, 꼭 우승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처음부터 스누커로 당구를 배우기 시작한 건가?
▶ 중학교 때 당구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때는 스누커란 종목이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스누커의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누커를 모른다. 나도 당구는 3쿠션과 포켓볼만 있는줄 알았다. 상명중학교에 당구부가 생긴다고 해서 당구부에 들어가서 중2 때부터 본격적으로 포켓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스누커 선수로 전향을 했나?
▶ 포켓볼을 시작하고 4개월 만에 전국대회에 나가서 3등을 했다. 그 대회에 나갔다가 스누커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께 스누커를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스누커를 배울 수 있도록 해주셨다. 
 
학교 당구부에서 스누커도 배울 수 있었나?
▶ 그렇진 않았다. 학교 당구부에서는 3쿠션과 포켓볼만 훈련할 수 있었다. 계속 당구부에 소속이었지만, 스누커는 따로 배워야 했다. 
 
스누커는 코치도 없고, 연습할 훈련장도 거의 없어서 쉽지 않았을텐데?
▶ 그게 가장 힘들었다. 스누커 선수들에게 배워야 했는데, 워낙 스누커 선수 수도 적고, 대회 때는 선수들도 시합을 준비하고 대회에 출전하느라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에 혼자 연습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은? 특별히 훈련을 받고 있나?
▶ 지금도 코치 없이 혼자 연습하고 있다. 스누커 당구대가 있는 곳도 많지 않아서 자리가 없을 땐 혼자 연습하기도 쉽지 않다. 
 
훈련하기도 열악한 환경에서 괜히 스누커로 바꿨나 후회한 적은 없나?
▶ 전혀 없다. 나 같은 경우는 포켓볼보다 스누커가 더 잘 맞는 것 같고, 더 재밌게 느껴진다. 
 
스누커의 어떤 점이 좋았나?
▶ 포켓볼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밌는데, 9볼이 포켓에 들어가면 게임이 순식간에 끝나 버리는 게 너무 허무했다. 반면에 스누커는 끝까지 게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부분이 더 좋았다. 
 
한국에서는 스누커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종목이 아니다. 선수층도 얇고, 비전도 확실치 않다. 시작하면서 두려운 마음은 없었나?
▶ 오히려 어릴 때 시작해서 그런 부분은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단, 연습할 곳도 마땅치 않고 배울 수 있는 곳도 찾기 힘들었던 점, 그리고 생소한 종목이라 적응하느라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하지만 스누커를 치면서 상도 타고 나름의 성과를 내면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이 더 부담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크다. 이제 대학생이 되면서 성인부로 올라갔는데, 여자부가 따로 없어서 남자 선배들과 같이 핸디 없는 대회를 해야 하는데 주니어 때랑 비교할 수도 없는 경쟁을 하려니 좀 부담스럽다. 
 
학생부 때도 또래 선수들끼리의 경쟁이지만 남자 선수들과 경쟁을 해왔다. 성적은 어땠나?
▶ 학생대회에서는 꾸준히 입상을 해왔다. 중학교 때는 2, 3등을 꾸준히 했고, 고등학생 때는 1등도 2번이나 했다. 덕분에 당구특기생으로 국민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쉽게도 국민대학교에서 이제 당구특기생을 더이상 안 뽑는다고 들었다. 
▶ 내가 국민대학교 마지막 당구 특기생이 되었다. 교수님께서 내가 열심히 하면 다시 생길 수도 있으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셔서 진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당구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한 번 생겼다 없어진 특기생 선발 기준이 다시 생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당구 특기생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다. 
 
학교에서는 특기생에게 어떤 배려를 해주나?
▶ 연습하는 것, 시합 나가는 것에 대한 배려와 대회에 출전할 때도 항공권이나 숙박비 등을 지원해 주고 있다. 전담 지도교수와 조교수를 배정해 체계적인 관리를 해주고 있어 심리적으로도 든든하다. 
 
스누커를 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 무엇보다 테이블 설치된 곳이 별로 없다 보니 연습할 만한 곳이 없다. 캐롬이나 풀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연습할 곳이 있는데, 스누커는 연습조차 맘껏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전문 스누커 코치의 부재도 아쉬운 부분이다. 또 여자 스누커 선수가 혼자다 보니 생각지 못한 곳에서 변수가 생긴다. 가장 최근에는 당연히 전국체전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자격이 남자 선수로 한정돼서 출전조차 할 수 없었다.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연맹에서 적극적으로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 줬으면 좋겠다.
 
스누커 선수로서 가장 바라는 것은?
▶ 구리월드컵처럼 스누커 세계대회도 한국에서 한 번 열렸으면 좋겠다. 지난 번에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갔을 때 IBSF에서 한국에서 스누커 대회를 열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의지만 보인다면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한국에서는 낯선 종목이지만 한국 선수들과 당구팬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대회에서 캐롬이나 포켓볼은 결승전 같은 중요 경기는 방송대회로 촬영을 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데 스누커도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선수들도 동기부여가 돼서 더 열심히 하고, 사람들도 스누커가 어떤 종목인지 알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 일단 처음에도 말했듯이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출전 기회가 이제 2번 남았는데, 입상하는 것. 최종적으로는 우승이 목표다. 올해 대회를 통해 희망을 봤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출전한 U21 대회였는데 작년과 올해 경기 내용이 완전히 달랐다. 점점 성장하고 있다. 비록 시합에서는 졌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또 12강에 오른 후 세계 랭킹도 진입했다. 주니어 세계 랭킹 21위, 세계 여자 스누커 랭킹 99위로 드디어 세계 랭킹에 진입했다. 랭킹에 내 이름이 올라 있는 걸 보니 점점 더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국내대회에서 꼭 우승을 해보고 싶다. 여자 선수도 남자 선수와 동등하게 겨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가장 큰 목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스누커 선수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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