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3쿠션 여왕, 굴센 데게너

터키를 대표하는 남자 3쿠션 선수로 세미 사이그너가 있다면, 터키를 대표하는 여자 3쿠션 선수로는 당연히 굴센 데게너를 꼽는다.
 
유럽은 남자 3쿠션의 메인 무대이자 최고의 실력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반면 여자 3쿠션은 거의 활동이 없는 편이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가 전부일 정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자 3쿠션 챔피언은 네덜란드의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다.
 
워낙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고 클롬펜하우어의 환경이 그나마 다른 유럽 여자 3쿠션 선수들에 비해 나은 편이라 당구에만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롬펜하우어 외에는 당구에만 몰두해 본격적인 연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의 선수들이 거의 없다 보니 그녀의 뒤를 이을 유럽 챔피언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3쿠션 여자 선수들의 성장이 무섭다. 그렇다고 여자 3쿠션의 미래가 아주 밝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여자 3쿠션의 환경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여자 3쿠션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여자 선수 없이 당구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만나게 되어 반갑다. 터키를 대표하는 미녀 당구선수로 유명하다. 터키에서 당구는 얼마나 대중적인가? 특히 여자들은 3쿠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나?

▶ 90년대 중반에는 터키에서 당구가 엄청 인기가 많았다. 세미 사이그너 같은 선수는 당구선수뿐 아니라 엔터테이너로서 유명세를 떨치며 대중적인 인기도 많이 얻었다. 나도 90년대에는 사이그너처럼 광고를 비롯해 많은 제안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난 대중 앞에 쉽게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서 모두 거절했다. 만약 사이그너처럼 그 제안들을 모두 받아들였다면, 여자 당구선수가 지금보다 유명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터키의 여자 3쿠션 선수는 몇 명이나 있나?

▶ 최근 3명이 늘어서 11명이 되었다. 터키에서는 3쿠션을 치는 여자들이 거의 없다. 일반인들 중에서 3쿠션을 치는 여자를 본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처음 3쿠션을 치러 당구장에 갔을 때도 사람들이 뭐하려고 왔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언제, 왜, 그것도 3쿠션을 치게 됐는지 궁금하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나?

▶ 처음 당구를 친 게 1989년이었으니까 내가 20살 정도 되었을 때다. 난 처음 당구를 포켓볼이 아닌 4구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엄격하셔서 학교 끝나면 무조건 집으로 가야 했었는데, 아버지 눈을 피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데이트가 학교 끝나자마자 남자친구가 있는 당구장에 가서 잠깐 그를 만나고 오는 것이었다. 나는 당구장까지 남자친구를 만나러 쫓아갔는데, 정작 남자친구는 당구만 치고 난 그저 구경만 하는 게 너무 화나서 집에 가겠다고 했더니 남자친구가 나를 붙잡으려고 당구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처음 남자친구로부터 큐 잡는 법을 비롯해 자세를 배우고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처음 치는 사람 같지 않다며 의심스럽게 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구를 배운 후부터 내가 남자친구는 뒷전이고 당구만 치니까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터키에서도 4구를 치나?

▶ 테이블만 대대에서 치고, 룰은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취미로만 당구를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3쿠션 선수로 활동하는 이유는 뭔가?

▶ 원래 내 직업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독일과 터키에서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독일에서 결혼한 다음에 이스탄불로 이사를 갔는데, 당구를 치고 싶어서 클럽을 찾아봤더니 사람들이 ‘재키빌리어드’라는 곳을 알려줬다. 그런데 거기에서 당구를 치는 사람들이 단순히 재미로만 당구를 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하고 있더라.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당연히 그렇게 당구를 쳐야 되는 건 줄 알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 그때 3쿠션을 배운 것인가?

▶ 처음 클럽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큐가 있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했더니 큐를 주면서 공을 3개밖에 안 주더라. 의외였지만, 우선 준 공으로 평소 4구 치듯이 혼자 치고 있었더니 뭐하냐며 여긴 3쿠션만 친다고 하더라. 그래서 얼떨결에 3쿠션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3쿠션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3쿠션 대회의 경험은 어땠나?

▶ 3쿠션을 치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아마추어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상대방은 상당히 잘 치는 사람이었고 나는 운이 좋아서 2, 3점 내는 게 전부였다. 상대방에게 엄청 무시를 당했고 그때의 수치스러운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진 것보다 그런 대우를 받은 것에 더 화가 났다. 그때 당구장에 갔을 때 제일 처음 만났던 사람이 그게 인생이고, 그게 당구라고 하더라. 지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그건 당구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터키의 당구문화를 바로 잡고 싶었다. 3쿠션을 제대로 배워서 사람들에게 당구는 이런 게임이고,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여자 3쿠션 선수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언제였나?

▶ 95년에 이스탄불에서 독일의 베를린으로 이사를 갔고 그때 아기를 가지면서 당구를 더 이상 못 치게 되었다. 독일에서도 당구를 치려고 클럽을 찾았지만 터키와는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구를 안 치게 되었다. 아기를 낳고 나서 BWA에서 활동하고 있는 터키 당구의 핵심인물인 울라프에게 엽서를 한 통 받았는데, 토브욘 블롬달을 비롯해 유명한 당구선수들이 그 엽서에 딸의 출산을 축하한 메세지를 적은 것이었다. 2년 전인 93년도에 터키에서 3쿠션 월드컵이 열렸을 때 출전해서 예선에서 터키의 랭킹 2위 선수를 이겼었는데, 나를 기억해주고 축하까지 해준 것에 큰 감동을 받았다. 3년 후쯤 울라프가 여자 3쿠션 대회가 열린다며 연락을 했다. 3년 동안 아이만 키우고 당구도 안 쳤는데 내가 어떻게 거길 나가냐며 거절했다. 하물며 난 개인 큐도 없었다. 하지만 울라프가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고 결국 터키 선수가 큐를 빌려줘서 대회에 나갔다. 대회 준비를 하면서 연습을 하는데 그때 그 희열과 감정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그때 그 대회에서 10년 동안 무패를 자랑하고 있던 게리 기렌이라는 네덜란드 챔피언을 내가 이겨버렸다. 더 이상 당구를 안 칠 이유가 없었다. 
 
복귀전 치고 강렬했다. 

▶ 그 대회 전에는 여자 3쿠션 대회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여자 3쿠션 선수도 따로 없었다. 울라프는 여자들이 당구를 쳐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했고, 선수들을 수소문한 끝에 많지는 않지만 유럽과 아시아에 여자 3쿠션 선수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울라프가 직접 선수들을 모았다. 그 대회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총상금 2만 유로를 내걸었고, 네덜란드의 모든 신문이 여자 3쿠션 대회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실었다. 클럽에서 열린 대회라 180명 정도밖에 수용을 못 했는데 클럽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초청받은 선수들은 호텔에서 자지도 못하고 클럽에서 자면서 대회를 치렀다. 마지막엔 클럽에서 음악을 틀고 다 같이 춤도 추고 마치 파티 같았다. 지금처럼 UMB가 아닌 BWA가 치른 대회였고, 우승자는 일본의 히다 오리에였다. 
 
히다 오리에를 비롯해 아시아 선수들이 여자 3쿠션 선수들 사이에서 선전을 보이고 있다. 한국 선수와 대결한 느낌은 어땠나?

▶ 2년 전에 열렸던 여자3쿠션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이신영 선수와 대결을 했는데, 결코 잊을 수 없는 시합이었다. 그 당시 이신영 선수가 보여준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완벽한 포커페이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심리적 동요나 초조함을 비롯해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웃더라. 그제야 사람인 줄 알았다. 
 
이번에 한국에서 열린 여자3쿠션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소감은?

▶ TV방송으로 중계된 것과 진행 부분에서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단, 관중들의 호응과 관심부분에서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관중들이 너무 없었고, 여자 선수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좀 실망스러웠다. 
 
테레사 클롬펜하우어와 히다 오리에는 1점대의 애버리지를 보여줬고, 클롬펜하우어는 결승전만 제외하고 쭉 1점대의 애버리지를 유지했다. 여자 선수들도 1점대의 애버리지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 당구종목에서 왜 여자가 남자보다 못 치는가에 대해 과학적으로 얘기하라고 하면 난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당구는 힘으로 하는 게임이 아니다. 그저 여자 선수들의 수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의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에 실력 향상이 더딘 것이다. 더 많은 경쟁의 기회를 얻게 되면 여자 선수들도 남자 선수들만큼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테레사나 오리에는 태어난 나라 자체가 당구에 많은 관심이 있고, 흥행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유럽의 선수들보다 실력이 빠르게 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터키 같은 경우는 여자가 3쿠션을 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많은 결심과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테레사나 오리에는 가족들의 도움과 관심을 받고 당구를 치지만 나는 당구를 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경쟁의 기회와 주위 환경이 실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여자 3쿠션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 우선 대회가 많아져야 한다. 유럽의 여자 3쿠션 대회는 일 년에 딱 한 번 열린다. 랭킹이 무의미하다. 유럽의 연맹들은 여자 3쿠션 경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시합이 없으니 훈련을 할 필요도 없다. 비교적 대회가 많은 아시아의 여자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유럽 여자 선수들의 훈련은 그냥 노는 수준이다. UMB를 비롯한 각 연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UMB 안에 여자3쿠션 부문을 따로 설치해 여자대회를 후원할 후원자들을 적극적으로 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3쿠션의 모든 사업이 남자 선수들에게 너무 치우쳐져 있다고 생각하나?

▶ 그렇다. 각 연맹들은 여자 선수들에게도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앞으로 당구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큰 국제대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자 부문과 더불어 여자 부문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여자들의 실력이 못 미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여자 3쿠션에 대해 평소에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맞다. 단순히 여자 3쿠션 선수로 전성기를 누리다 끝내고 싶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3쿠션을 여자들도 더 좋은 조건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나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여자3쿠션을 위해서 봉사하겠다. 크든 작든 내가 여자 3쿠션 선수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여자 3쿠션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3쿠션이 어려운 게임이기는 하지만 여자들도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 비록 엄마로, 주부로 1인 다역을 해내느라 힘들지만 테이블 앞에만 서면 새 힘이 생기는 걸 우리가 모두 경험하지 않나. 분명 여자 3쿠션이 발전하려면 주위의 도움과 더불어 여자 선수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전 세계 100명도 안 되는 숫자지만 우리가 노력한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