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에 시작한 ‘SBS배 한구당구최강전’
2) 2000년 10월 시작한 SBS스포츠 채널 주최의 ‘SBS배 한국당구최강전’ 1차대회~11차대회와 왕중왕전(2001년 10월)

한국 당구계의 입장으로는 TV 당구 방영이 절실했음에도 불구하고 1995년 7월 김문장이 대한당구선수협회 회장을 그만둔 이후에는 TV와 당구경기를 연계한 기획은 어느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모처럼 1999년 7월에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제2대 김영재 회장이 취임하면서 백상영을 전무이사로 기용하여 2000년 2월부터 아리랑TV 주최 ‘아리랑 2000 전국 3C 최강전’을 매월 개최해 12월까지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대회 시리즈가 끝나갈 무렵인 이 해 10월에 마침내 SBS스포츠채널(채널 30) 주최의 ‘한국당구최강전’이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주관으로 시리즈로 열리게 되었다.
 
종전의 SBS 당구는 지상파 방송 SBS가 촬영 방영한 반면, 이번 SBS스포츠채널은 SBS의 새로운 스포츠 전문 방송이었다.
 
대한스포츠당구협회는 대한체육회에 인정종목 경기단체로 가맹되어 있는 처지여서 국고 지원 없이 자력으로 단체를 운영해야 했으므로 이런 방송대회를 시리즈로 진행하기란 어려웠다.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주관하며 소속 선수들을 출전은 시킬 수 있었으나 운영은 당구의 TV 방영을 절실히 갈구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맡아 해야 했다. 
 
이 고된 임무를 맡은 사람은 대한당구선수협회 김문장 회장 집행부 당시의 변기선 전무이사와 백정기 기획이사 외에, 당구선수로 출발해 당구클럽을 운영하다가 나중에 당구대 생산업으로 진출한 이태호 등이었다.
 
이 대회의 출전 신청 접수를 협회가 아닌 백정기당구클럽으로 한 사실만을 보더라도 재정 부담은 단체가 아닌 다른 곳임을 알 수 있다. 
 
‘SBS배 한국당구최강전’은 1차대회를 10월에 시작하여 매월 개최, 11차대회를 치른 다음 왕중왕전으로 시리즈를 끝내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소속 선수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3쿠션 15점치기 3전2승제의 예선전을 치러 32명을 선발해 본선은 토너먼트로 진행,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서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SBS스포츠채널이 녹화 방영하였다.
 
각차 대회가 끝나면 1위~32위에게 차등으로 승점을 배정해 11차전이 완료되면 합산 승점으로 왕중왕전 진출자를 결정했다.
 
그리고 각차 대회 4위까지는 다음 회차 대회에 16강 시드를 배정받았다. 상금은 우승 200만원, 준우승 100만원, 3위 50만원, 4위 30만원, 5위~8위 각 10만원 등 총 420만원이 시상되었다.
 
1차대회는 김철민당구클럽(서울시 고덕동)에서 예선을 치른 다음 10월 28일 올림픽경기장 내 SBS스포츠채널센터에서 본선을 진행했다.
 
제2차대회는 한 달 뒤에 산본 우정당구장에서 예선을 치르고 본선은 SBS스포츠채널센터에서 개최했지만, 제3차대회부터는 본선 경기 장소가 바뀐다.
 
이태호가 서울 흑석동 중앙대 앞에 방송 촬영에 적합한 시설로 새로 단장한 ‘LEE’S 당구클럽’을 개업했으므로 앞으로의 모든 본선 경기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2001년 5월에 치른 8차대회부터 예선전은 산본의 쉘부르당구장으로 장소가 바뀐다.
 
2001년 8월까지 매월 한 차례씩 진행된 SBS배 한국당구최강전은 11차대회를 마무리하고 승점을 합산, 16명을 최종선발하여 왕중왕전 최종 예선 1, 2차전을 9월 4~6일 마스터스 경기방식으로 치러 8명을 선발하였다.
 
이들 8명이 10월 5일 7, 8위전부터 상위로 진출하는 마스터스 경기를 치러 왕중왕을 결정하는 순위전을 가졌다.
 
이 순위는 당시의 한국 캐롬 3쿠션 최강자의 랭킹을 그대로 제시한 현주소라 할 수 있다.
 
1위 황득희, 2위 김무순, 3위 박승희, 4위 최문갑, 5위 이홍기, 6위 길형주, 7위 임윤수, 8위 정정우로 랭크되었다.
 
2000년 10월에 시작하여 2001년 10월에 끝난 ’SBS배 한국당구최강전’은 여러가지 여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대회 기사를 다룬 <월간당구> 2001년 11월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SBS배 한국당구최강전의 원년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이 대회를 이끌어오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세 사람의 당구인에 대한 감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 이 화려한 승리자를 만들어낸 뒤에는 백정기, 변기선, 이태호라는 세 당구인의 피와 땀이 스려 있었다.”
 
‘SBS배 한국당구최강전’ 11차대회를 모두 끝내고 왕중왕전에서 2위, 1위, 3위를 차지한 김무순, 황득희, 박승희(왼쪽부터)
‘SBS배 한국당구최강전’ 11차대회를 끝내고 왕중왕전에서 1위~8위를 차지한 선수들
3) 2001년 11월 시작한 SBS스포츠채널 주최의 ‘SBS배 한국당구최강전 2차 시리즈’ 1차대회~11차대회와 왕중왕전(2003년 11월)
 
’SBS배 한국당구최강전 2차 시리즈’는 앞 대회의 후속편이었다.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제3대 회장으로 유력 기업인이라는 유태성 회장의 취임식을 6월에 성대하게 치르고 단체명도 대한당구연맹으로 바꿨지만 SBS 방송대회를 단체가 직접 주최, 주관하기는 시기상조였다.
 
이 시리즈도 백정기, 변기선, 이태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11월 20~21일 산본 쉘부르당구클럽에서 치른 1차전 예선에 참가한 선수는 110명이었다.
 
이들이 3쿠션 경기로 15점치기 3전2선승제로 16명을 선발해 서울 서초동의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본선을 진행했으며, 최종 5명을 선발하여 1차 시리즈 왕중왕 경기시 적용했던 마스터스 방식으로 SBS TV가 촬영하는 가운데 4, 5위전부터 상위로 치고 올라가는 박진감 있는 경기 진행을 택했다.
 
매월 1회씩 개최된 한국당구최강전 2차 시리즈의 7차전까지의 본선 경기는 서울 서초동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진행했으나 2002년 6월에 열린 8차전부터는 경기도선수협회 회장을 역임한 강석봉이 김문장의 조언을 얻어 경기도 오산역 근처 번화가의 쇼핑몰 건물 3층 전체에 ‘베스트빌리아드클럽’이라는 당구클럽 겸 TV방송용 캐롬 경기장을 시설함으로써 본선 경기를 여기에서 계속 치르게 된다.
 
강석봉은 김문장의 프로위원회 출신 선수로서 오산을 당구 도시로 만들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강석봉도 ’SBS 당구’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된다. 
 
2차 시리즈는 11월에 11차전으로 마무리를 짓고 1년간의 랭킹 포인트를 합산해 다음의 8명을 선발했다.
 
황득희, 조문환, 김무순, 이승진, 최문갑, 김순종, 조재호, 고철수. 이들이 12월에 마스터스 방식으로 왕중왕전 1차전을 치러 4강으로 황득희, 김무순, 이승진, 조재호를 확정 짓고 2003년 1월 10일에 2차 시리즈 왕중왕전을 치른 결과 대망의 우승은 1차 시리즈에 이어 황득희가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의 여세를 몰아 차지했다.
 
2위도 1차 시리즈 2위의 김무순이 올랐으며, 3위 조재호, 4위 이승진의 순위였다. 
 
‘SBS배 한국당구최강전 2차 시리즈’ 왕중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황득희(오른쪽)와 준우승의 김무순
4) 2003년 3월 시작한 ‘SBS배 당구대제전’ 1차대회~4차대회와 왕중왕전(2003년 12월)
 
지난해까지는 SBS스포츠채널이 개인과의 계약으로도 방송대회를 추진할 수 있었으나 이 해부터는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와 계약을 체결하도록 방침이 변경됨으로써 대한당구연맹이 계약의 주체가 되어야 했다.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SBS 당구를 통해 당구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저변이 많이 확산되어 당구 경기(景氣)가 좋아졌을 뿐 아니라, 매월 개최되는 정기적인 경기에 참가함으로써 선수들의 사기와 선수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고취되었다.
 
따라서 대한당구연맹으로서는 ‘한국당구최강전’ 이후의 방송대회를 계속 이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한당구연맹 이영재 전무이사가 유태성 회장에게 방송대회 개최를 간곡히 요청한 결과, 대한당구연맹이 주최, 주관하는 대회를 추진하기로 하고, ‘한국당구최강전’을 이끌어 온 백정기와 변기선이 SBS 측과의 원활한 업무제휴를 위해 역할을 계속 맡기로 함으로써 ‘SBS배 당구대제전’ 개최가 성사되었다. 
 
2003년 한 해 동안 5차대회를 치른 다음 왕중왕전으로 결산을 하며 ‘한국당구최강전’ 때보다는 상금이 증액되었다.
 
3쿠션은 대회마다 우승 500만원, 준우승 300만원, 공동3위 각 100만원, 5~8위 각 50만원, 9~16위 각 20만원 등 총상금 1천360만원 규모로 발표했으나 3차대회 때는 우승 100만원, 4차대회와 왕중왕전은 우승 200만원으로 하향되었다.
 
‘한국당구최강전’ 때와는 달리 경기 종목을 캐롬 3쿠션 외에  포켓볼 활성화 대책으로 남 ·  여 포켓9볼을 추가하였다.
 
3쿠션은 본선 8강전부터 7경기를 TV 녹화 촬영하고 해설은 ‘한국당구최강전’ 때와 마찬가지로 백정기가 맡아했다. 남·여 포켓9볼은 준결승과 결승전을 녹화했다.
 
2002년 3월에 시작한 ‘SBS배 당구대제전’ 1차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강동궁(오른쪽)과 이승진
’SBS배 당구대제전’ 1차대회의 3쿠션 예선전은 2003년 3월 14~17일 서울 반포동 뉴코리아당구클럽에서 개최되었으며 본선은 25일 오산의 BB당구클럽(대표 강석봉)에서 진행되었다.
 
남자 포켓9볼은 4월 19~20일, 여자 포켓9볼은 4월 26~27일에 예선을 치른 다음 28일에 BB당구클럽에서 준결승과 결승전을 TV 촬영 경기로 진행하였다.
 
2차대회는 3쿠션은 5월, 남 · 여 포켓9볼은 6월에 치렀으며, 3차대회는 3쿠션과 남 · 여 포켓9볼 경기를 8월 10~13일에 연속해서 가졌다.
 
4차대회는 3쿠션은 10월 7~8일에 예선전을 치르고 9~10일에 본선 8강전을 가졌으며, 포켓볼은 마지막 시리즈로 ‘포켓9볼 최강전’이라는 타이틀로 진행하였다. 포켓9볼 최강전의 남자부는 우승 최인규, 준우승 조필현, 공동3위 김원석 · 정홍조로 랭크되었으며, 여자부는 우승 임윤미, 준우승 정성현, 공동3위 차유람 · 권미숙으로 순위가 결정되었다. 
 
‘SBS배 당구대제전’의 마지막 최강을 가리는 왕중왕전은 4차대회까지의 종합성적으로 선발된 16강이 12월 9일에 4개조 풀리그의 예선전을 치러 8강을 가린 다음 10일에 본선 8강 토너먼트로 자웅을 겨루었다.
 
랭킹은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 우승 강동궁, 준우승 김경률, 공동3위 김무순 · 박춘우.
 
‘SBS 당구대제전’ 왕중왕전의 결승전 뱅킹. 강동궁(왼쪽)이 우승, 김경률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5) 2004년 5월 시작한 ’SBS 당구 2004 당구사랑 마스터스’ 1차대회~5차대회와 왕중왕전(2005년 1월)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상천이 한국에 돌아와 당구계를 위해 보탬이 되겠다고 작심하고 시작한 ‘당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국당구대회’ 투어의 첫 출발이 2004년 1월 16~18일 산본 화성당구클럽에서 테입을 끊었다.
 
그리고 이 투어의 성공의 여세를 몰아 이상천은 5월 14일 대한당구연맹 제4대 회장으로 선출된다. 바로 이 무렵에 시작된 것이 ‘SBS 당구 2004 당구사랑 마스터스’이다. 
 
1차대회의 예선은 5월 20일 산본 화성당구클럽과 안산당구클럽에서 90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려 5명을 최종 선발, 21일에 서초동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SBS 미디어넷 TV 촬영대회로 본선을 치렀다.
 
이 대회의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본선전은 마스터스 경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상금은 우승 100만원, 준우승 50만원 등으로 약소했다. 
 
2차대회는 (주)허리우드가 주후원을 했으며 본선은 6월 11~12일에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8명을 선발해 마스터스 경기로 진행, SBS TV가 촬영했다. 
 
3차대회는 풀코(당구대 생산업체, 후에 민테이블로 개칭) 주후원으로 7월 30~31일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본선을 치렀으며, SBS TV가 촬영하는 가운데 8명이 마스터스 경기로 순위를 가렸다. 
 
4차대회는 (주)허리우드의 주후원으로 10월 8일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8명이 마스터스 경기로 본선을 진행했으며, SBS TV가 녹화했다. 
 
이 무렵에는 당구계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상천 회장이 취임 후 갑자기 위암 판정을 받고 4개월 동안 투병하다가 10월 19일 타계하고 21일 영결식을 가졌다.
 
이런 가운데도 대한당구연맹은 이 대회의 스케줄대로 11월 16~19일 천안시의 SBS당구클럽에서 5차대회의 예선과 본선을 치렀다.
 
대회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당구계 외의 KT&G의 주후원을 확보함으로써 상금은 우승 200만원, 준우승 100만원 등 총 520만원을 시상했다. 
 
11월 29일에는 대한다구연맹 제5대 민영길 회장의 취임식이 있었다.
 
대한당구연맹이 새 회장을 맞아 조기에 안정을 찾음으로써 ‘SBS 당구 2004 당구사랑 마스터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중왕전을 잘 치를 수 있었다.
 
예선과 본선 모두 천안아카데미당구클럽에서 치러졌는데 12월 21~22일 진행된 예선전은 5차 대회의 성적을 주로 반영한 32강 중에서 8명을 선발하였다.
 
본선은 SBS 스포츠채널이 촬영하는 가운데 새해인 2005년 1월 5~7일 마스터스 경기로 진행했다. 
 
왕중왕전의 최종 성적은 1위 강동궁, 2위 이태현, 3위 이재근, 4위 강인원, 5위 김도근, 6위 이국인, 7위 김철민, 8위 황득희로 결정되었다.
 
상금은 우승자에게 300만원, 준우승자에게 150만원 등이 시상되었다. 
 
2005년 10월에 열린 ‘SBS당구 한국당구최강전’ 5차대회
6) 2005년 3월 시작한 ‘SBS 당구 한국당구최강전’ 1차대회~5차대회와 왕중왕전(2005년 11월)
 
대한당구연맹 제5대 민영길 회장의 취임으로 대한당구연맹이 제대로 주최, 주관한 대회였다. 이 시리즈의 1차대회 예선전이 2월 18~19일 천안아카데미당구클럽에서 열려 본선 진출자 8명을 선발했는데, 불과 4일 뒤인 2월 23일에 고대하고 고대하던 대한당구연맹의 대한체육회 정가맹의 낭보가 들렸다.
 
1차대회의 본선은 3월 17~18일 SBS 미디어넷 TV가 촬영하는 가운데 7-8위전부터 상위로 진행되는 마스터스 경기 방식으로 치러졌다. 
 
1차대회부터 5차대회, 왕중왕전까지 예선, 본선 모두 천안아카데미당구클럽에서 열렸으며, 상금은 매 대회 우승 300만원, 준우승 150만원, 3위 50만원 선으로 시상되었다.
 
2차대회 경기 진행 방식은 1차대회와 같았으나 3차대회부터 5차대회까지는 예선전에서 8명을 선발해 마스터스 경기방식이 아닌 토너먼트로 본선을 진행하였다.
 
특기할 것은 2차대회 때는 대한당구연맹의 국제식대대 국산 장려책으로 본선에 허리우드당구대를 사용하여 출전선수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0월로 5차대회를 끝낸 ‘SBS 한국당구최강전’의 왕중왕전은 11월 22~24일에 개최되었는데, 1차~5차대회 우승자 5명(강동궁, 김경률, 이홍기, 김성관, 황득희)과 준우승자, 8강 입상자 등 22명이 예선전을 치러 8명을 선발해 본선을 가졌다.
 
토너먼트로 본선을 치른 결과 왕중왕전의 우승은 김경률이 차지했으며 강동궁이 준우승을, 공동3위는 최성원 · 이홍기, 공동5위에는 김성관 · 김봉수 · 황득희 · 박광열이 올랐다. 
 
2005년 11월에 개최된 ‘SBS당구 한국당구최강전’ 왕중왕전 1위~4위 선수들. (왼쪽부터) 공동3위 이홍기, 왕중왕 김경률, 2위 강동궁, 공동3위 최성원.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SBS당구’ 는 막을 내렸다.
이로써 ‘SBS당구’ 시대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2006년부터는 대한당구연맹이 MBC-ESPN과 당구경기 중계방송권을 장기계약하는 시대가 열린다.
 
덧붙여 말한다면 지금까지의 TV방송 당구경기 중계는 비용 일체와 상금까지를 당구인 또는 당구단체인 사용자가 모두 부담하였으나, 앞으로는 중계권료를 받고 TV방송대회를 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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