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ren Reyes

1954년 8월 26일, 필리핀의 작은 동네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던 아이의 부모는 형제가 살고 있던 마닐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불과 5살밖에 안된 아이는 삼촌의 당구클럽에서 일하며 다양한 종목의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키가 당구대에 닿지도 않을 정도로 작았기 때문에 코카콜라 박스를 옮겨가며 그 위에서 당구를 쳐야 했고, 밤에는 당구대 위에서 잠을 자며 당구를 치는 꿈을 꾸었다.
선택의 여지 없는 어린 시절의 가난 때문에 배운 당구는 그를 필리핀 최고의 풀 선수로 성장시켰다. 사람들은 아이를 이름 대신 '바타'라고 불렀다.
'바타'는 타갈로그어로 '꼬마'라는 뜻으로, 당시 나이 많은 당구 선수 중에 '에프런'이란 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둘을 구별하기 위해 그를 '바타'라고 불렀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풀 선수인 에프런 '바타' 레이즈라는 이름을 얻었다.
70개 이상의 국제대회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전설의 에프런 레이즈는 8볼과 9볼 두 개 종목의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첫 번째 선수이며, 14번의 더비시티클래식 우승, 두 번의 월드컵 우승, 또 두 번의 월드 풀리그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등 매번 역대 최고 상금 기록을 갈아 치우며 어마어마한 우승 상금을 획득했다.
특히 그는 팬들과 평론가들뿐 아니라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장 위대한 풀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1960년대부터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3쿠션으로 내기당구를 시작한 그는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우승 후에야 프로모터들은 레이즈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그는 더 많은 대회에서 경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꾸준히 성적을 올리며 자국에서 풀 선수로서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국제적인 인지도를 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미국에서 점차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주당 8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족의 영웅이 되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넘나들며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1990년대 중반에는 호세 패리카와 프란시스코 부스타만테와 함께 필리핀 국가대표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4년 US 오픈 9볼 챔피언십에서 닉 버너를 꺾고 우승을 한 레이즈는 본격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특히 미국인이 아닌 첫 번째 US 오픈 우승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2년 후에 열린 컬러 오브 머니 대회에서는 얼 스트릭랜드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10만 달러의 우승 상금을 거머쥐었다. 이는 풀 대회 중 가장 큰 상금이었다.

2001년 도쿄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당구 토너먼트에는 총 1억 엔의 상금이 걸렸으며, 7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최고 상금을 놓고 격전을 벌였다.
결국 이 대회의 2천만 엔의 우승 상금 역시 결승전에서 넬슨 페이옌을 15-7로 꺾은 레이즈의 차지가 되었다.
1999년 TV로 방영된 WPA 세계 9볼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이즈는 2004년 연말 WPA 세계 8볼 선수권대회의 타이틀마저 거머쥐며 WPA 역사상 8볼과 9볼 두 종목 모두 세계 챔피언에 오른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
2006년과 2009년 프란시스코 부스타만테와 함께 필리핀 대표로 월드컵 오브 풀에 참가한 그는 결승에서 얼 스트릭랜드와 로드니 모리스의 미국 팀과 랄프 수케와 톨스턴 호먼의 독일 팀을 각각 꺾고 두 번의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2006년에만 646,000 달러(약 7억4천6백만 원)를 상금으로 벌어들였다.
그의 천재적인 플레이는 적재적소에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을 만들어냈고, 불가능해 보이는 포지션을 가능하게 실현해 냈다.
그의 마술 같은 풀 실력은 그를 진짜 '마술사'로 믿게 했다. 그의 마술은 그에게 수많은 '최초의' 타이틀을 달아주었고, 결국 BCA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의 마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에프런 레이즈는 61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30대의 젊은 선수들을 압도하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2016 Accu-Stats Make-It-Happen 원 포켓 초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그의 건재함을 알렸다.
처음 그가 미국에 왔을 때, 그는 세자르 모랄레스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미국 선수들도 필리핀의 에프런 레이즈라는 훌륭한 슈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바타(꼬마)', 에프런 레이즈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민영 기자
thebilliards@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