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직은 지난 10여 년간 고된 훈련과 외로운 싸움, 혹독한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 LEE WOO SUNG

[빌리어즈=김주석 기자] 사람은 이름을 닮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김행직은 바르고 곧게 성장했다.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를 4회 연속 우승한 세계 유일한 기록을 작성하고, 어엿하게 시니어 그룹에 입성하여 2015년 아시아 3쿠션 챔피언에 오르더니 당당하게 월드컵 결승전에까지 진출해 세계적인 톱 랭커로 부상했다. 그리고 2015 코리아 오픈과 대한체육회장배, 국토정중앙배 등의 타이틀을 획득하며 국내 대회까지 휩쓸어 ‘최연소(23세) 국내 랭킹 1위’를 기록하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김행직의 이런 비상은 놀라운 일이다. 촉망받던 3쿠션의 기대주였던 김행직은 지난 2013년에 갑작스러운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쓰러져 선수 생명이 불투명했다. 선수 생명뿐만 아니라 아예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다행히 재활에 성공하며 큐를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실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김행직은 이렇게 뜻하지 않게 한순간에 닥친 시련을 홀로 이겨내야 했다. 

이제 92년생인 김행직. 어느새 20대 중반의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행직아”라는 부름이 어울리는 소년 같은 이미지가 남아 있다. 그래서 그 시련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웬만한 사람은 겪어 보지도 못했고 겪어도 이겨내지도 못할 만큼 많은 부담과 시련이었지만, 그는 외롭고 고된 싸움에서 이기고 결국 다시 일어섰다. 김행직은 이제 한국 당구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 당구는 안타깝게도 김경률이라는 기둥을 잃었고, 다행스럽게도 김행직이라는 새로운 아이콘을 얻었다. 워낙 이름처럼 묵묵한 성격 때문에 그가 가진 상징성이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도 있지만, 김행직이 세계적인 당구 기업 시모니스-살룩이 선택한 두 번째 한국 선수라는 것과 대기업 LG에서 후원하는 첫 번째 선수라는 사실이 이를 말하고 있다.

이제 김행직에게서 우리는 미래를 본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한국 당구의 상징’으로 떠오른 김행직을 지켜보자. 곧 변화가 시작되고 한국 당구 130년의 꿈이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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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도 성적이 좋았고, 지난해에도 성적이 좋았다. 매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데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국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고서 자신감이 커졌다. 총 5번의 대회를 치르는 동안 우승 3회, 8강 2회 등의 성적을 올리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커졌고, 실제로 시합에서 집중력도 좋아졌다. 국내 대회 연속 우승이나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 월드컵 준우승 같은 결과도 마찬가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원동력이었다. 

지난해에는 동생 김태관 선수도 세계 주니어 3쿠션 챔피언에 올랐는데, 형의 영향을 좀 받았던 것인가.

사실 동생이 우승할 줄은 몰랐다. 이기기 위해 동생은 준비를 많이 했다. 인터넷방송국 코줌의 결승전 중계방송에서 해설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우승할 때보다 더 기뻤다. 내 영향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동생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주니어 세계 챔피언 아들 두 명을 둔 아버지가 많이 기뻐했을 것 같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당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주니어 세계 챔피언에 오른 것은 아버지 덕이다. 내가 우승했을 때보다 동생이 우승했을 때 더 기뻐하셨던 것 같다. 

본인도 당구가 좋아서 열심히 하지 않았나. 당구가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당구는 참 오묘하다. 아무리 많이 연습해도 완벽해질 수 없고 잘될 때는 쉬워 보이다가도 뭐 하나가 안 맞으면 너무 어려운 것이 당구다. 그 해법을 찾지 못하면 포기하게 된다. 승패를 떠나 이기든 지든 실력을 겨루는 그 순간이 좋아서 당구를 열심히 쳤다. 

당구를 잘 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구는 생각하는 스포츠다. 계속 머리로 생각하면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당구를 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

경험이 중요하다. 나는 세계 톱 랭커를 꺾었던 순간이 계속 기억에 남아 있다. 가끔 지치는 순간이 오면 그 경험을 떠올리면서 힘을 낸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토브욘 블롬달을 30:11로 이겼던 적이 있다. 물론 연습경기였고 블롬달이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이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얼마 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대결한 블롬달을 애버리지 2.00을 치면서 더블 스코어로 꺾었다. 

블롬달하고는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는데.

고등학교 졸업 후에 2년 동안 독일에서 살면서 블롬달과 같은 팀에서 유럽 리그를 뛰었다. 이 때의 추억들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다. 팀원들과 함께 당구를 치며 즐거웠던 순간들,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떤 에피소드가 기억에 가장 남았나.

내 생일 때 블롬달과 팀원들이 모두 모여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던 일도 많았다. 팀원 중에서 블롬달과 마틴 혼은 만화 속 ‘톰과 제리’ 같았다. 둘이 뭉치면 배꼽 빠지게 재밌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 그 모든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돈을 주고도 못 바꾸는 내 인생 최고의 추억이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남들처럼 여자친구와 여행을 다니고 싶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없다. 당구클럽에서 계속 연습을 하다 보니까 여자친구를 만날 시간이 많지 않다. 지난해에 아버지가 인천에서 당구클럽을 오픈하셔서 요즘에는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아버지 당구클럽에서 상주하면서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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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직이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다닐 행, 곧을 직. 이름처럼 바르고 곧게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구 말고도 잘 하는 것이 있나.

운동 중에는 당구를 제일 잘한다. 다른 운동은 당구만큼 아니어도 친구들과 어울려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간 이상은 한다. 

당구만큼 더 잘하고 싶은 것이 있나.

어느 날 신께서 능력 하나를 주신다면 노래 잘 부르는 능력을 받고 싶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당구 실력이 좀 떨어져도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 하하.

최초로 당구선수인 가수가 탄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다. 부담스럽지는 않나.

난 최초라는 수식어가 계속 붙는 것이 오히려 좋다.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외부의 인식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실제로 10대 때 했던 어떤 인터뷰에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선수가 되고 싶고, 25살 이전에 세계 랭킹 12위 안에 진입해 시드를 받는 것이 목표다”라고 한 적이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것이 내 목표다. 

25살 이전에 시드권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러고 보니 지난해 시드권에 들어갔다.

24살에 그 목표를 달성했다. 물론 랭킹이라는 게 기복이 생기면 떨어지기 마련이어서 계속 그 자리에 있지 못했지만, 올해는 다시 톱12 시드권에 진입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지난해 활약 중에 최연소 국내 랭킹 1위는 물론이고, 베스트게임 기록을 두 번이나 세운 것도 눈에 띈다. 쉽게 깨지지 않을 대기록을 세웠다. 

대한체육회장배에서 35점을 5이닝에 끝내서 애버리지 7.00을 기록했고, 대한당구연맹회장배에서는 40점을 6이닝에 끝내서 애버리지 6.666을 기록했다. 연습도 많이 했지만, 컨디션이 좋았다. 과분하고 영광스러운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10대에 세웠던 목표를 향해 10여 년간 꾸준히 노력한 끝에 결국 성취했다. 웬만해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려서 세웠던 목표가 하나 둘씩 이뤄지고 있어서 뿌듯하기도 하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더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도록 올해도 계속 열심히 할 것이다. 

김행직의 당구 인생에 누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나.

고 김경률 선배. 후배로, 그리고 팬으로서 좋아했던 형이다. 좋은 조언을 참 많이 해주셨다. 경률이 형한테 항상 고마웠다. 둘이서 같이 일본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을 가끔 보면 많이 그립다. 보고 싶다. 

김경률에 이어 두 번째로 시모니스-살룩이라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한국 선수가 되었다. 

시모니스-살룩에서 메일이 와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 경률이 형보다 부족한 게 많은데 이런 기회를 주시니 너무나 감사하다. 

LG와의 스폰서십 체결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 당구계에 상징적인 두 가지 계약을 체결했다.

운이 좋게도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이런 기회를 주셔서 기쁘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을 알리는 좋은 선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새해를 맞아 당구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2016년 한 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성취하시는 뜻깊은 해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항상 배우는 자세로 올해에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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