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출신 캐디 샌더스는 16년 전부터 '절친'
올해 미국프로골프투어(PGA)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PGA챔피언십 우승자 지미 워커(미국)는 우승을 확정짓는 챔피언 퍼트를 마친 뒤 캐디 앤디 샌더스를 힘껏 껴안았다.
프로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캐디와 기쁨은 나누는 모습은 흔한 장면이지만 워커와 샌더스는 포옹은 누가 봐도 격했다.
PGA투어에서 선수와 캐디는 대개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계약 관계일 뿐이다. 인간적인 친분 관계를 맺는 선수와 캐디가 없지는 않지만 그리 흔치는 않다.
워커와 샌더스는 그러나 단순한 선수와 캐디 사이가 아니다.
둘은 서른일곱살 동갑 친구다.
예사 친구가 아니라 한때 아마추어 무대에서 자웅을 겨루던 라이벌이기도 했다.
샌더스는 대학 시절만해도 잘 나가던 골프 선수였다.
휴스턴 대학 재학 시절 두번이나 미국 대학 골프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둘의 우정이 싹튼 장소는 이번 PGA챔피언십이 열린 발터스롤 골프장이다. 2000년 US아마추어 골프 선수권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둘은 연습 라운드를 함께 돌았다.
대학 골프 대회에서 봤던터라 서로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한 사이도 아니었던 워커와 샌더스는 그때부터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워커와 샌더스는 2001년 프로로 전향했다. 둘은 2부투어인 웹닷컴투어에서 함께 뛰면서 PGA투어 진출이라는 꿈을 키웠다.
샌더스는 2004년 한쪽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서 다발성 경화증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어가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어지럼증으로 샷과 퍼팅이 엉망이 됐다. 결국 그는 골프 선수의 삶을 접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캐디를 새로운 직업으로 선택했다.
캐디 가운데 골프 선수 출신이 없지는 않지만 엘리트 선수가 캐디로 전직하는 일은 드물다.
자존심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와 인연을 끊기 싫었던 샌더스는 자존심을 버리고 기꺼이 캐디 조끼를 입었다.
웹닷컴투어에서 뛰던 워커는 2007년 퍼팅이 안 돼 고민이었다. 친구 샌더스가 대학 시절부터 퍼팅을 유난히 잘했다는 사실을 떠올린 워커는 도움을 요청했다. 샌더스의 퍼팅 레슨을 받은 워커는 승승장구했고 2008년 PGA투어 카드를 땄다.
꿈의 무대 PGA투어에 진출한 워커는 친구 샌더스에게 캐디를 맡겼다.
샌더스의 도움을 받아 워커는 PGA투어에서 승승장구했다. 남보다 늦게 PGA투어에 입문했지만 5차례 우승을 일궈낸 워커의 뒤에는 항상 샌더스가 있었다.
둘은 PGA챔피언십 출전에 앞서 발터스롤 골프장에 도착하자 남 모를 감격에 휩싸였다. 16년 전 둘의 우정이 싹튼 곳이기 때문이다.
둘은 당시 발터스롤 골프장 어퍼코스 10번홀에서 처음 주고받은 대화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둘에게 특별한 장소인 발터스롤 골프장에서 "일을 한번 내보자"는 무언의 결의를 다진 워커와 샌더스가 PGA 챔피언십 제패의 감격은 두배나 세배 정도가 아니었다.
워커는 "우리 둘에게는 정말 특별한 우승"이라면서 "더없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워커는 "샌더스의 역할이 컸다. 그는 퍼트 라인을 완벽하게 읽었고, 내가 준비됐을 때 샷을 하라고 시켰다. 우리 둘은 완벽하게 하나가 됐다"고 우승의 공을 샌더스에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