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일동포 당구 명인 윤춘식
 
윤춘식 (타카키 쇼지)
1920년에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윤춘식(일본명 : 타카키 쇼지)은 13세 때에 큰 뜻을 품고 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 종업원으로 일하며 독학으로 공부를 하면서 당구에 매료되어 당시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던 미츠헤에게 사사, 마침내 일본 당구계에서 4구 모아치기(세리)와 예술구 분야에서 일인자로 군림하였다. 
 
전일본 4구 선수권을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4구 몰아치기의 만점왕으로서 ‘세리 타카키’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의 일본 당구계에서의 위치는 확고하여 일본 당구의 유일 단체인 사단법인 일본빌리아드협회의 사무국장을 오랜 기간 맡아 일본 당구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가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모국 한국 당구의 발전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한국 측에 당구계 대표단체인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현 대한당구협회 전신)와 제휴하여 10년간 10회에 걸친 한・일 양국 선수들이 교류하는 친선 당구경기대회를 열어 한국 당구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 한・일 친선 당구경기대회 10년간 결산
 
1972년 5월 13, 14일 2일간 서울 명동 성림당구장에서 막을 올린 제1회 한・일 친선 당구경기대회는 1983년 3월 26, 27일 일본 도쿄의 빌리아드 고바야시에서 10회째 경기를 치를 때까지 한국과 일본의 당구 교류와 당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일 친선이라고는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는 한국은 이 교류전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온 것이 사실이다.
 
대한당구협회 제4, 5대 회장 박순락
이에 대한 한・일 양국 당구협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한다면, 한・일 친선 당구경기대회는 1971년 9월 25일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우리 당구계가 민간외교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였으며, 침체되어 있는 당구계에 활력소와 당구 팬 저변 확대의 일환으로 당구기술 개발교류를 위한 추진 목적으로 일본빌리아드협회 측에서 이사장 오카다, 사무국장 타카키(윤춘식), 사단법인 대한빌리아드협회에서 회장 박순락, 총무부장 조광수, 전무 전화영이 회동하여 매년 1회씩 열기로 하되, 4구와 3쿠션을 번갈아 가며 경기종목으로 채택기로 하며,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한국 측에서 주최키로 결정하였다.
 
이후 제6회 대회가 77년에 열리지 못하고 78년에 열린 것과 제9회 대회가 81년에 열리지 못하고 82년에 개최된 사실 말고는 매년 1회씩 정기적으로 열렸으며, 최종대회인 제10회 대회는 일본이 주최, 일본 도쿄에서 열렸다.
 
특기할 것은 일본 빌리아드협회 사무국장 윤춘식은 10회 대회까지 속행될 수 있도록 일본측 선수단장을 맡아 헌신적으로 노력하였고, 그의 현란한 예술구를 한국 당구 팬들에게 선보임으로써 당구의 대중 확산에 큰 몫을 하였다.
 
그리고 한국 측에서는 12년간 협회의 임원진이 바뀌면서 대회장이 네 번이나 교체되었지만, 전무, 총무부장, 감사, 부회장의 직무를 번갈아 맡으며 이 대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개최되도록 막후의 실무자로 일한 전화영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10회를 치른 이 친선 교류전에는 한국 당구의 산증인이라 일컬을 만한 많은 사람이 참가 또는 관계하였다. 따라서 한・일 친선 당구경기대회는 문자 그대로 한국 당구 역사 100년 중 12년의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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