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청마의 해’가 밝았습니다. 

60년 만에 오는 청마의 해가 어느 때보다도 반갑습니다. 1954년이었던 60년 전 청마의 해에는 60년 뒤의 이런 세상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그해 대한민국 사회는 혼란스러웠고, 서민들은 끼니를 걱정할 만큼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살기 위해 살아가는 삶이 고단하여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도 많은 시절이었습니다.  

그럼 60년 만에 다시 맞는 청마의 해는 어떻습니까? 

불황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어렵고 여느 때처럼 사회가 시끄럽긴 하지만, 식민화의 전초가 된 1894년이나 민족 분단의 아픔이 시작된 1954년보다 더 나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전쟁 후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고, 식민화로 접어들 만큼 의식이 뒤떨어지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 2014년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디지털화, 스마트화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돌아보니 우리는 지독하게 가난했던 그 시절부터 풍요로운 현재까지의 과정을 겪어온 전무후무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는 축복받은 세대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문화를 창조하며 시대를 이끌어 왔습니다. 

연예, 영화계 기자로 활동했던 젊은 시절 남겼던 기록들이 시간이 흐르고 보니 모두 문화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는 사소한 행위 모두가 지금에 와서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당구도 다르지 않습니다. 

스포츠와 유기를 논하기 이전부터 당구는 분명히 문화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100년 이상을, 특히 서민과 함께해 온 서민들의 문화입니다. 

당구는 서민들이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최상의 문화적 선택이었습니다. 만약 당구를 몰랐다면 안타깝게도 아주 소중한 문화를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기억 속에서 동료들과 친구들과 함께 당구를 쳤던 기억은 아련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끔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집니다. 

여기에 우리가 다시 문화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을 추억하고, 어떤 기억에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1954년과 2014년이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문화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의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 60년 전의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요롭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어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노래도, 춤도 너무 잘합니다. 아이들은 부족한 것 없이 뭐든 좋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과 문화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의 문화는 교육이고, 교육이 결국 문화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푸른 말이 넓은 들판을 거침없이 질주하듯 아이들에게도 문화를 누리는 자유와 의식을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당구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다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기성세대가 지닌 역사적 사명과도 같습니다. 그 문화를 지키지 못한 우리가 책임져야 할 몫입니다. 

2014년‘청마의 해’가 새로운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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