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앤스포츠=성지안 기자] 최정상의 선수도 첫 경기의 승부는 어렵다. 당구처럼 예민한 스포츠는 미세한 차이로 득점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시합 전에 공평하게 정해진 연습시간을 소화하지만 새로 설치된 당구대와 경기 분위기 등 낯선 환경에서 감을 찾아야 하고, 긴장된 상황에서 멘탈이 다소 불안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승 후보들이 첫 경기에서 패배하는 이변이 종종 일어난다. 3쿠션 세계챔피언에 5차례나 올랐던 '세계랭킹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도 첫 경기의 압박은 피할 수 없었다. 야스퍼스는 세계선수권대회 첫 경기부터 아주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 25일 베트남 빈투언에서 열린 '제76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예선 조별리그에서 야스퍼스는 베트남의 타이홍찌엠(세계랭킹 20위)과 대결했다. 첫 경기부터 홈 선수를 만난 야스퍼스가 출발부터 힘겨운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경기 내내 끌려가던 야스퍼스는 패배가 유력한 상황에서 끝내기타 한 방으로 벼랑 끝에서 탈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첫 경기를 어렵게 승리로 장식했다. 한때 점수 차가 13점까지 벌어지면서 위기가 찾아왔지만, 야스퍼스는 막판에 세 차례 몰아치기로 따라붙어 끝내 역전했다.
이미 한 경기를 치러 승리를 거둔 타이홍찌엠과 달리 야스퍼스는 첫 경기였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 타이홍찌엠이 초구부터 하이런 12점을 치면서 야스퍼스는 최악의 상황에서 첫 발걸음을 떼었다. 3이닝까지 야스퍼스는 3-4-2 연속타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6이닝부터 3-2-1 연속득점을 올려 8이닝까지 야스퍼스는 15점을 득점했다.
그런데 타이홍찌엠이 초구 12점타 후 8차례 공격에서 계속 단타를 쏟아부으면서 15:26으로 점수가 벌어졌고, 12이닝에는 16:29로 무려 13점이나 차이가 났다. 5점타 한 방씩을 주고받아 17이닝 야스퍼스의 공격 전까지 점수는 23:35.
여전히 먼 거리에서 추격하는 야스퍼스와 단 5점밖에 남지 않은 타이홍찌엠의 승부는 끝나는 분위기였는데, 야스퍼스는 막판에 세 차례 공격에서 추격에 성공하며 극적으로 점수를 뒤집었다. 야스퍼스는 17이닝 4득점으로 포문을 연 뒤 18이닝에 6점을 쳐 순식간에 33:35로 추격에 성공했다.
다음 두 번의 공격이 실패하면서 점수는 33:37로 다시 벌어졌지만, 야스퍼스는 21이닝 후구 타석에서 1시간 30분 동안의 열세를 한 방에 뒤집는 끝내기 7점타 한 방에 쓸어 담고 결국 40:37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귀한 1승을 챙겼다.
야스퍼스를 첫 경기부터 쩔쩔매게 한 타이홍찌엠은 '3쿠션 세계챔피언' 바오프엉빈(세계 3위)과 '세계랭킹 2위' 쩐뀌엣찌엔 등 2명을 제외하면 베트남 선수 중 가장 순위가 높은 선수다. 지난해 포르투 당구월드컵에서 바오프엉빈과 마틴 호른(독일) 등을 꺾고 4강에 오르며 이변을 연출했다.
다음 베겔 당구월드컵에서도 8강까지 올라가며 활약을 이어간 타이홍찌엠은 올해 32강에서 연속 탈락했다가 최근 열린 두 차례 당구월드컵에서 모두 16강에 진출하며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세계선수권에는 지난 2022년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 한 차례 출전한 바 있다. 타이홍찌엠은 당시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해 16강까지 진출하며 활약했고,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는 4강에 진출하며 베트남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했다.
이날 앞서 열린 경기에서 투르가이 오라크(튀르키예)를 16이닝 만에 40:27로 꺾어 애버리지 2.5를 기록한 타이홍찌엠은 1승 1패(2.081)로 조별리를 마치면서 현재까지는 2위로 16강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B조 마지막 경기 야스퍼스 대 오라크의 경기 결과에 따라 야스퍼스와 타이홍찌엠의 순위가 결정된다. 야스퍼스는 지난 2021년 세계선수권을 우승한 뒤 2022년에는 준결승에서 탈락했고,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는 16강에서 에디 멕스(벨기에)에게 1점 차의 분패를 당했다.
야스퍼스는 첫 경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으면서 본선 진출도 청신호를 켰다. 다음 경기에서 오라크를 꺾으면 조 1위로 본선에 진출하고, 만약 오라크가 야스퍼스를 이길 경우에는 세 선수 모두 1승 1패 동률이 돼 애버리지가 높은 타이홍찌엠이 가장 유리하다.
다음 경기에서 야스퍼스는 큰 점수 차로 패하지만 않으면 2위로 본선(32강)에 진출할 수 있다. 야스퍼스 대 오라크의 B조 최종전은 26일 오후 4시에 시작된다.
(사진=SOOP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