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원. 최혜미. 사진=이우성 / 메이크업&헤어=신오키새날
허채원. 최혜미. 사진=이우성 / 메이크업&헤어=신오키새날

[빌리어즈앤스포츠=김민영 기자] 시작이 좋았다. 허채원(21, 한체대)은 지난 3월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제12회 아시아캐롬선수권대회' 여자부에 한국 여자 3쿠션 국가대표로 출전해 공동3위에 오르며 오랜만에 입상을 알렸다.

지난해에 김행직(전남-진도군청)과 함께 첫 'WCBS 챔피언십'에 여자 3쿠션 아시아 대표로 국제대회에 첫 출전한 허채원은 아시아A팀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팀의 3위 입상을 이끌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국내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거두지 못한 허채원은 두 번의 결승 진출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한 번은 이신영(PBA 이적, 휴온스), 한 번은 김하은(충북)으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이자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막강한 실력자들이다.

허채원은 원래 핸드볼 선수를 꿈꾸던 '핸드볼 소녀'였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고생하던 중 부상 위험이 적은 당구로 종목을 바꿨다.

어려서부터 운동선수로 길러진 허채원의 내재된 '승리 DNA'는 좋은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우승을 놓치는 지금의 상황이 사실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물론 이유는 있다.

한국체육대에 입학하면서 학업과 당구선수를 병행하는 일이 쉽지 않다. 비록 당구대회 우승은 놓쳤지만, 학과 1등은 손에 넣었다.

이제 남은 건 당구 1등뿐이라는 허채원의 올해 유일한 관심사는 '우승'이다. 작년 3월 국토정중앙배에서 입상한 후 딱 1년 만인 올해 3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입상하며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한 번만, 진짜 한 번만 우승을 하면 그다음은 금방 풀릴 걸 알기 때문에 지금 온통 주파수가 당구에만 뻗쳐있어요."

허채원
허채원

2019년 당구선수로 데뷔한 6년차 여자 3쿠션 당구선수다. 소감이 어떤가?

어렸을 때부터 워낙 발랄하고 몸 쓰는 걸 좋아해서 핸드볼 선수를 하려다가 무릎 부상으로 당구선수로 전향했다. 당구가 워낙 정적인 스포츠다 보니 종목 성격 때문인지, 당구를 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핸드볼은 언제부터 했나?

초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하다가 중학교 진학까지 생각했는데 무릎 부상 때문에 무릎이 안 좋아지면서 첫 번째 꿈을 접었다. 결국 몸에 무리가 덜 가는 스포츠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구를 선택하게 됐다.

핸드볼과 당구는 구기 종목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달라도 너무 다른 종목인데.

원래 완전 까불까불하고 말 많은 완전 소녀 그 자체였다. 그런데 당구를 하면서 종목 자체도 정적이고, 워낙 선수 연령대가 높다 보니 나이 많은 선수들 사이에서 지내야 해서 그런지 성격이 좀 차분해졌다. 이제는 오히려 나이에 맞지 않는 차분함과 진지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럼 당구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나?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주말에 한 4시간씩 연습하는 정도였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했던 것 같다.

당구선수로서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나?

고등부 대회에 나가서 조금씩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서울당구연맹에서 개최한 하림배 당구대회와 실크로드배 당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때는 프로당구 PBA, LPBA가 없던 때라 지금 LPBA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선수들과 경쟁하던 때였다.

사실 전국대회 우승은 없지만, 우승이 아예 없지 않다. 국제대회에서도 입상을 했고. 작년에는 첫 WCBS 챔피언십에 한국 대표이자 아시아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WCBS 챔피언십이 첫 국가대표였다. 첫 국가대표라 사실 좀 두려웠다. 게다가 혼자서 외국에 나가는 것도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이 컸는데, 비행기를 타니까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같이 출전한 김행직 선수가 옆에 있어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

허채원
허채원

세계 톱 랭컵들과 대결해 본 소감은?

너무 떨렸다. 리그전 첫날 3판을 전부 졌다. 자기 직전에 '빌리어즈앤스포츠'에 '전패'라는 뉴스가 나온 걸 보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다음날 두 경기가 남았는데, 이거까지 전부 다 지면 진짜 한국에 못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남은 경기에 들어갔다. 다행히 유명 랭커들을 상대로 이기면서 좀 괜찮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결과적으로 내가 속한 아시아A팀이 3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둬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 전국대회 우승이 없는 건 아쉬운가?

물론이다. 서울당구연맹 대회 우승과 전국대회 준우승 성적은 있지만, 아직 전국대회 우승만 없다.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한 번은 이신영 선수에게, 또 한 번은 김하은 선수에게 졌다.

전국대회 결승에서 두 번 다 패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긴장감을 이기는 게 쉽지 않았다.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긴 한데, 진짜 이러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심장이 너무 뛴다.

이신영 선수와 만난 첫 결승전은 그나마 방송 경기가 아니라서 좀 편하게 경기를 했다. 그날 내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신영 선수가 나보다 한 수 앞서 있었다. 그날은 졌지만 잘 싸웠다고 생각했다.

반면, 김하은 선수와 붙은 두 번째 결승전에서는 진짜 적응을 너무 못했다. 방송 경기라서 조명이나 카메라가 너무 낯설었고, 그날은 진짜 둘 다 너무 못 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확실히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꼭 한번 이겨보고 싶은 선수가 있나?

LPBA에 있는 김가영 선수와는 한 번도 쳐볼 기회가 없었고, 또 만난 적도 없지만 꼭 한 번 같이 쳐보고 싶다. 같이 치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하다. 또 한지은 선수는 연맹에 있을 때 몇 번 대결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이기질 못했다. 그것도 1, 2점 차이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안되더라. 그래서 꼭 다시 붙어 보고 싶다.

LPBA로 이적한 선수들의 기량이 이전보다 많이 늘었다. 자신 있나?

사실 1년 전만 해도 LPBA 대 KBF의 여자 선수들이 붙는다면 LPBA가 압도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김하은이나 박정현 등 우리 쪽 선수들 기량도 많이 올라왔다. 지금 거의 어린 선수들만 남았지만, 이들 실력이 거의 비슷하고 진짜 많이 늘었다.

허채원
허채원

LPBA와 KBF 여자 선수들의 기량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경험과 상금? 일단 LPBA가 상금과 대회 수가 KBF보다 월등히 많다. 사실 지금 누가 상금이 얼마냐고 물어보면 말하기 부끄럽다. 연맹만 있을 때는 딱히 비교군이 없으니 200만원 상금도 그러려니 했는데 프로당구가 생기고 여자 대회 상금 뒤에 '0'이 하나 더 붙으니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우리 상금은 어디 가서 말하기도 부끄럽다. 이번 LPBA 월드챔피언십에서 한지은 선수가 퍼펙트큐 9점 치고 상금 2000만원 받는걸 보면서 진짜 꿀이라 부러웠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맹에 남아 있는 이유가 뭔가?

LPBA로 안 가냐는 소리를 진짜 귀 아프게 듣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프로로 전향하는 것보다 학업에 좀 더 전념하고 싶다. 프로로 전향하게 되면 당연히 성적을 더 잘 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연습 시간도 늘려야 하고, 지금처럼 학업에 전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학교 졸업까지는 연맹에 있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당구와 학업을 병행하는 게 솔직히 진짜 힘들다. 그래서 많은 학생 선수들이 당구에 전념하기 위해 진학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제 3학년이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조명우도 한체대 휴학 중이고, 어떤 선수들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기도 하는데 당구보다 학업에 더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까?

원래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큰 욕심이 없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더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지난해 3월 이후 당구대회 입상 성적은 못 냈지만, 학과 1등을 했다. 당구선수 은퇴 후에는 교수를 하고 싶은 꿈도 생겼다. 당구선수라는 직업도 재밌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아주 희박한 확률로 운 좋게 좋은 대학에 들어왔는데, 거기에 맞는 길도 한번 가보고 싶다. LPBA 선수 중에서도 한체대에서 이미래 선수가 석사 휴학 중이고, 차유람 선수가 박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너무 멋있어 보이고, 나도 그 길을 같이 가보고 싶다.

허채원
허채원

당구선수로서의 삶은 만족스럽나?

학교에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되게 많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금이 아예 없는 종목들도 많다. 당구도 200만원 상금이 적은 금액일 수 있지만, 200만원은 커녕 10만원인 종목도 있고, 아예 없는 종목도 있다. 그렇게 보면 당구가 프로도 있고, 환경이 나쁘지 않다.

또 당구를 하면서 얻은 게 너무 많다.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었고,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당구를 시작했기 때문이었고, 좋은 인연들도 너무 많이 생겼다.

21살의 허채원은 어떤 사람인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 같다.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학업과 당구 둘 다 포기 안 하고 성공해 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잠도 하루에 5시간밖에 못 잔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매일 학교 가서 오후 1시까지 수업하고, 끝나자마자 당구장 가서 자정까지 연습한다. 그러고 또 집에 가서 씻고 자려고 누우면 새벽 2시다. 1학년 1학기 비대면 수업 이후 계속 이 삶의 연속이다. 가끔은 한창 좋은 나이에 '학교-당구장-집' 이러고 있는 내가 좀 짠할 때도 있지만 아직 포기 안 하고 할 만하다.

올해 가장 큰 목표와 관심사는?

당연히 우승이다. 진짜 이를 갈고 있다. 작년에 무조건 우승을 하겠다고 했는데, 엄청 부진했다. 그러면서 랭킹도 많이 떨어지고 자존감도 엄청 낮아져서 이걸 계속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런 순간에 진짜 1년 만에 입상을 한 거다. 그것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작년 3월 국토정중앙배 입상 이후 딱 1년 만이었다.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등을 하고 나서 우승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졌다. 지금은 온통 관심과 주파수가 당구 우승에만 완전 뻗쳐 있다. 이제 은메달, 동메달 말고, 금메달 갖고 싶다.

마지막으로 팬들과 고마운 분들께 이 기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사실 당구만 치는 선수들도 있는데, 있는 시간 다 쪼개서 하고 있긴 하지만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고도 3등이면 잘한 거라고, 오늘 하루 진짜 열심히 살았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나중에 분명히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말씀해 주셔서 그 말을 계속 새기고 살아가고 있다. 그 말씀대로 하루하루 후회 없이 정말 엄청 열심히 살고 있는 중이다. 끝까지 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데 꼭 보답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하겠다.

가장 감사한 건 부모님과 가족들이다. 잔소리도 하시지만, 한결같이 내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해 주고, 묵묵히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다. 또 당구 가르쳐주신 스승님께도 너무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친구들이 있다는 자체가 너무 소중하다. 학교 다니면서도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서 너무 고맙고, 끝까지 믿고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께 좋은 모습으로 꼭 보답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항상 너무 감사하다.
 

(사진=이우성(675스튜디오) / 헤어&메이크업=신오키새날)

저작권자 © 빌리어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