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호와 김보미. 사진=빌리어즈앤스포츠 DB
김병호와 김보미. 사진=빌리어즈앤스포츠 DB

[빌리어즈앤스포츠=김민영 기자] 월드챔피언십 결승에 올라간 딸 김보미(NH농협카드)를 차마 응원하러 가지 못한 아빠 김병호(하나카드)가 진심 어린 축하와 위로를 전했다.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PBA-LPBA 월드챔피언십 2024' 결승전을 앞두고 프로당구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NH농협카드의 조재호와 김보미가 동시에 PBA와 LPBA 결승에 오르며 NH농협카드는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였고, 하나카드 역시 김가영이 4년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해 흥분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작 단 한 사람은 마냥 웃을 수 없었다. 김보미의 아빠이자 하나카드 하나페이의 주장 김병호였다.

딸 김보미를 응원하자니 팀원인 김가영에게 미안하고, 그렇다고 피는 물보다 진하니 김가영을 응원할 수도 없고. 결국 김병호는 이날 대회장에 오지 않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대회가 끝난 후 그는 "도저히 마음 편하게 응원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응원하러 안 갔다. 내가 조재호와 16강을 할 때도 보미가 앉아 있다가 나가더라. 같은 마음일 거다. 이쪽 응원하면 저쪽 눈치 보이고, 저쪽 응원하면 이쪽 눈치 보이고 그렇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딸 김보미와 하나카드 동료 김가영이 월드챔피언십 결승에 맞붙었다.
딸 김보미와 하나카드 동료 김가영이 월드챔피언십 결승에 맞붙었다.

특히 김병호는 두 시즌동안 하나카드 팀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함께 팀을 팀리그 우승까지 올려놓은 동료인 김가영이라 더 불편했을 터.

"팀 동료 둘이 붙는 대회도 아니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방법이 없더라. 전에 응우옌꾸옥응우옌과 무라트 나지 초클루 둘이 결승할 때도 둘 다 잘하라고 응원을 했는데, 막상 초클루가 초반에 좀 뒤지니까 응우옌이 잘했을 때 박수를 쳐야 하는데 눈치가 보여서 도저히 못 하겠더라. 하물며 이번에는 가족 대 팀 선수라서. 보미도 가족이지만, 어떻게 보면 가영이도 가족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더라."

사실 한 팀 선수가 투어 결승에서 맞붙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시즌에는 LPBA 투어에서 웰컴저축은행의 김예은과 최혜미가 결승에서 맞붙었고, PBA 투어에서는 휴온스의 최성원이 결승에서 팀 동료인 하비에르 팔라존과 승부를 겨뤘다. 마지막 9차 투어에서는 하나카드의 응우옌꾸옥응우옌과 무라트 나지 초클루도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였다.

이에 대해 김병호는 "알게 모르게 재미없다"고 표현했다. "한 사람 쪽으로 스코어가 쏠리면 눈치가 보이더라. 우리 팀원들끼리인데도 박수치기가 조금 그렇더라"고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병호는 김보미의 결승전을 한 마디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안타까웠다"고 평했다.

김경영과 결승전 대결 중인 김보미.
김가영과 결승전 대결 중인 김보미.

세트스코어 3-1, 5세트 10:6으로 우승까지 단 1점만 남겨둔 김보미의 우승이 누가 보더라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선배 선수이자 아빠의 눈은 달랐다.

"누구든지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는 "내가 그 상황을 너무 잘 안다. 침착해야 되는데 그게 진짜 힘든 순간이다. 5세트를 내주고 넘어가면 진짜 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애가 많이 탔는데, 공타는 이어지고, 가영이 따라오고. '뭐 아직 어리니까'라고 위안을 삼았다"고 당시 상황을 지켜본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 말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잘했다. 월드챔피언십 준우승도 얼마나 잘한 건데. 다음에 또 하면 된다"고 딸을 위로했다.

특히 그는 이번 월드챔피언십에서 보여준 김보미의 플레이를 높이 샀다.

"다 지고 있다가 역전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쭉 리드한 것도 있었다. 차분하게 잘했다. 특히 4강에서는 이미래가 워낙 컨디션이 좋아서 보미가 질 줄 알았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했다."

김보미는 월드챔피언십에서 첫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밝게 웃지 못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을 바로 눈앞에서 놓쳤기 때문에.
김보미는 월드챔피언십에서 첫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밝게 웃지 못했다. 그토록 염원하던 우승을 바로 눈앞에서 놓쳤기 때문에.

다만, 결승전 5세트 마지막 1점을 끝내 성공시키지 못하고 이어진 세트를 모두 지고 역전패를 당한 것에 대해서는 "멘탈을 또 못 잡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사람이 욕심 앞에서 멘탈이 무너진다. 나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만약에 현장에 있었더라면 '침착해라'라고 말해줬을 것 같다"며 "결승이고 마지막이니까 마음을 비우고 침착하게 해야지 자기 기량대로 할 수 있다. 멘탈을 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 침착하라고 해 줬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딸에게 경기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대회 끝나고 전화도 한 통 안 했다. 그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힘든 걸 아니까"라고 무심한 듯 최선의 배려를 하는 경상도 아버지다.

사실 김병호에게도 이번 월드챔피언십은 처음 시드를 받아 출전하는 월드챔피언십이라 그 의미가 남달랐다. 

김병호는 월드챔피언십 조별리그에서 최성원, 이상대를 연파하고 16강에 가장 먼저 올랐다.
김병호는 월드챔피언십 조별리그에서 최성원, 이상대를 연파하고 16강에 가장 먼저 올랐다.

32강 조별리그에서 최서원과 이상대(웰컴저축은행)를 연달아 꺾고 단 두 경기 만에 16강 진출을 결정한 그였지만, 16강 토너먼트는 녹록지 않았다. 하필 그 상대가 이번 대회 우승자인 조재호였던 것.

"월드챔피언십에 처음 나왔는데, 큰 무대에서 재밌게 경기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조재호가 너무 잘 쳤다. 그때 1세트를 내가 먼저 이겼는데, 경기를 지켜보던 보미가 조금 있다가 나가더라. 거기서 좀 멘탈이 많이 무너졌다. '쟤가 재호한테 눈치가 보여서 저리 나가나' 아빠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 경기에 집중을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초반에 재호가 좀 못 쳤는데, 그때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진짜 잘 치는 선수는 그런 때 눌러줘야 하는데, 그 후에 오히려 내가 더 안되더라. 워낙 잘 치는 선수라 빈틈을 보여주면 안 되는데, 빈틈이 보이자마자 후다닥 치고 나가더라. 그나마 재호가 우승을 해서 우승자에게 졌으니까 그나마 위안도 되고, 조재호 진짜 잘하더라"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어 그는 "다음 시즌에도 우리 팀원들과 한 팀으로 계속 팀리그를 할 수 있다면, 이번 시즌에 못 해봤던 것들이 좀 있다. 작전이나 선수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시도해서 다음 시즌에도 함께 우승을 목표로 달려가겠다. 또 개인 투어에 있어서도 이제 자신감도 많이 생겨서 또 한 번 결승에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음 시즌에 대한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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