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월드챔피언십 결승에 올라 두 번째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는 순간. 사진=제주/이용휘 기자
4번 월드챔피언십 결승에 올라 두 번째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는 순간. 사진=제주/이용휘 기자

[빌리어즈앤스포츠=김민영 기자] '당구 여제' 김가영(하나카드)이 LPBA 통산 7승, LPBA 월드챔피언십 통산 2승을 달성하고 누적 상금 LPBA 최초 3억원을 돌파했다.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늘(17일) 열린 프로당구 왕중왕전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LPBA 월드챔피언십 2024' 결승전에서 김보미(NH농협카드)와 대결한 김가영은 1세트를 먼저 따냈지만, 2, 3, 4세트를 내리 내어주며 세트스코어 1-3으로 뒤지다 5세트부터 남은 세 세트를 모두 차지하며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심지어 김보미는 5세트를 6:10으로 앞서고 있었으나 마지막 1점을 놓치며 끝내 우승을 김가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시상식 후 기자들과 만난 김가영은 지는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은 김가영의 우승 기자회견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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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월드챔피언십 우승이다. 소감이 어떤가?

그동안 우승한 대회 중에 제일 실감이 안 난다. 우승해서 너무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올 시즌 우승을 한 번 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즌이라 시합 준비도 잘 했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또 시합이라는 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했는데, 결과가 이보다 좋을 수 없게 너무 좋아서 지금 너무 행복하고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난다.

역대 가장 어려운 결승전이었다.

사실 지는 줄 알았다. 그냥 이대로 4-1로 지는 줄 알았다. 뭐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공격도 제대로 안 되고, 디펜스도 안 되고. 그런데 김보미 선수는 되게 잘 치고 있고. 나는 테이블 적응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는데, 김보미 선수는 나보다 훨씬 씩씩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4세트 중반까지만 해도 전혀 부정적인 생각을 안 했다. '나한테도 기회가 오겠지. 기회가 오면 나는 잘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었는데, 중후반을 넘어갈수록 준비했던 모든 게 잘 안돼서 오늘 좀 어렵겠구나 했다. 스코어도 많이 뒤지고 있어서 역시 우승은 하늘이 정해주는 건가보다 했다. 그래도 나한테 기회가 오면 포기는 하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공이 안 맞는 상황에서 웃더라. 이유가 있나?

사실 상황이 웃겨서라기보다 이게 웃겨야 웃는 건지, 아니면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는 건지 솔직히 그거는 모르는 거니까 웃어라도 본 거다. 그러면 좀 마음을 놓고 릴렉스하게 칠 수 있지 않을까, 웃을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었지 즐거워서 웃은 건 아니다.

사실 인상 쓴다고 뭐 달라지나. 그냥 한 번 웃어보자, 그때가 되게 안 되고 있었던 상황이어서 그냥 미소라도 한 번 지어봤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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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잘하고 나왔는데, 잘 안됐다고 했다. 어떤 점이 좀 잘 안됐나?

공격이든, 수비든 훈련한 만큼 제대로 퍼포먼스를 못 했다. 일주일 넘게 경기를 하고 있는데, 테이블이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테이블 컨디션을 모르겠더라. 짧아질 것 같은데 길어지고, 길 것 같은데 짧고, 결승에서 이걸 못 잡고 있는 게 되게 막막했다. 혼자 망망대해에 돛단배 띄우고 헤매는 느낌이었다.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컨트롤을 못 하는 게 되게 막막했는데, 그렇다고 노를 안 저을 수 없잖은가. 어느 방향이든 저어는 봐야지. 그래서 그냥 일단 노라도 저어보자 그런 생각으로 경기를 했다.

후반부부터는 감각을 찾아갔다. 갑자기 방향을 잡았나?

그게 또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애버리지 2.4를 친 다음에 0.6을 치고 그다음에 또 2.4를 쳤다. 이게 더 답답했다. 나는 매일 똑같은데 어느 날은 굉장히 좋은 결과가 나오고 어느 날은 나쁜 결과가 나오고. 그런 부분이 3쿠션이 참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마지막 날까지도 진짜 너무 긴장되고 어려웠던 게 상대 선수보다 이런 환경적인 부분이었다.

테이블이 많이 민감한가?

엄청 민감하다. 요 며칠은 제주도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비가 오더니 또 오후부터는 화창해졌다. 습도와 온도, 이런 영향 때문인지 내 생각과는 너무 다르게 공들이 다녔다. 4세트 끝나고 5세트 때도 그게 왜 그렇게 잘 맞았는지 솔직히 잘 몰랐고, 그래서 7세트 때도 예상이 안 돼서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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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누적 상금이 3억이 넘었다.

그 상금 다 어디로 갔나?(웃음)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게 있나?

결과적으로 트로피를 더 갖고 싶다든지 이런 건 사실 내려놓은 지 오래됐다. 포켓볼 칠 때 이미 트로피를 몇 개 더 가져야지, 이 대회에서는 꼭 이겨야지 이런 건 포켓볼 칠 때 다 뗀 것 같다. 내가 갖고 싶다고 가질 수도 없고, 또 내가 그걸 못 갖는다고 해서 열심히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내가 최선을 다했고, 내 수준이 올라가고 있고, 내가 치고 싶은 당구에 가깝게 치고 있는 것에 더 만족을 느끼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게 더 만족스럽다.

물론 트로피 하나 더 갖고, 상금 더 갖는 것도 행복하고 좋지만, 내가 목표하고 있는 당구를 계속 친다는 것, 발전하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한 행복감이 훨씬 큰 것 같다.

소속팀 하나카드의 주장 김병호 선수가 차마 응원을 오지 못했다던데.

사실 꼭 경기장에서 뵙고 싶었다. 장난으로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제스처를 해서 나 응원하라고 하려고 했는데, 차마 못 오시겠다고 하셨다더라. 근데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내 제자랑 내 팀 메이트랑 만약에 경기를 한다면 나는 못 올 것 같다. 근데 심지어 딸인데, 첫 우승인데,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죄송합니다. 병호 형님. 보미는 아직 젊지 않습니까(웃음)"

결승전을 마치고 김보미와 포옹하는 김가영.
결승전을 마치고 김보미와 포옹하는 김가영.

이번 대회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는 언제였나?

솔직히 오늘이 제일 힘들었다. 사실 진짜 숨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경기 전에 제일 떨리고 긴장된 경기는 강지은과의 32강 마지막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이기는 사람이 16강에 올라가는 경기였다. 그때가 제일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오늘 이것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 하나만 뽑는다면?

가족의 힘? 중간에 딱 한 번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는 엄마는 조용할 때 혼자만 목소리를 잘 안 내시는데 '김가영 화이팅' 한 번 하셨는데, '이건 우리 엄마가 지른 소리다' 딱 알겠더라. 그때가 내가 되게 못 치고 있을 때였다. 엄마 목소리가 되게 간절하게 느껴졌다.

 

(사진=제주/이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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