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사진=이우성 / 헤어 및 메이크업=새날신오키
김준태. 사진=이우성 / 헤어 및 메이크업=새날신오키

[빌리어즈앤스포츠=김민영 기자] 김준태(경북체육회·세계랭킹 12위)가 다섯 번의 도전 만에 처음으로 세계3쿠션당구월드컵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9일 이집트에서 열린 '샤름 엘 셰이크 3쿠션당구월드컵' 준결승에서 'PBA 이적생' 글렌 호프만(네덜란드)을 38이닝 만에 50:47로 꺾고 결승에 오른 김준태는 30살 연상의 '세계 최강' 딕 야스퍼스(네덜란드)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최종 대결을 벌였다.

김준태는 경기 초반 8이닝까지 야스퍼스를 압도하며 17:11로 앞섰고, 19:13, 21:15로 리드했으나 끝내 야스퍼스의 장타 공격을 막지 못하고 35:50으로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이 경기 후 김준태는 3쿠션 당구월드컵 시즌 랭킹 2위에 올랐다. 2023년 한 해 동안 열린 UMB(세계캐롬연맹) 주최 '3쿠션 당구월드컵'에 6차례 출전한 김준태는 랭킹점수 188점으로 에디 멕스(벨기에)와 공동 2위로 시즌을 마쳤다.

역대 한국 선수 중에서는 김행직(전남)이 유일하게 '당구월드컵 시즌 챔피언'에 올랐다. 2018년에 조재호(PBA)가 5위, 김행직이 2019년 5위와 2022년 6위에 올랐던 한국은 올해 김준태가 6번의 대회 중에서 절반이나 준결승에 진출하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라스베이거스(3월)와 호찌민(5월)에서 4강, 포르투(7월) 8강, 베겔(10월)과 서울(11월) 16강에 이어 샤름 엘 셰이크(12월) 준우승 등을 기록한 김준태는 마지막 샤름 엘 셰이크 당구월드컵에서 첫 우승과 시즌 챔피언 두 마리 토끼를 노렸으나 아쉽게 실패했다.

처음으로 당구월드컵 결승에 올랐다. 일단 소감이 어떤가?

다섯 번째 4강전에 진출해서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는데, 그 전에 4강만 가면 너무 못 쳤다. 지고 이기는 걸 떠나서 뭔가 압박감이 너무 심해서 경기를 너무 못했다. 그런데 이번 4강도 또 약간 그런 흐름으로 가서 '이게 다시 반복되나?' 이런 마음이 들었는데, 힘들게 이겨서 그만큼 더 많이 기뻤다. 오히려 4강전보다 결승 경기가 더 힘들었다. 결승은 더 편하게 경기를 했던 것 같다.

결승에서도 평소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초반에 실수 몇 개를 했는데, 야스퍼스 선수가 그걸 안 놓치고 바로 캐치해서 흐름을 바꿔 버리니까 이제 거꾸로 내 경기가 잘 안됐다. 결승전이 처음이다 보니 좀 잘 안되더라.

지난 10월에 베겔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때는 47:42로 김준태 선수가 이기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47:50으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솔직히 그때 너무 아깝게 져서 이번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 결승에 올라온 김에 우승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조금 더 욕심이 났던 것 같다.

4강과 결승의 무게감이 다르던가?

나는 오히려 4강에서 압박감 때문에 잘 못 쳐서 그거를 이겨 내는 게 좀 힘들었다. 굳이 결승과 4강을 비교하자면 4강이 더 힘든 것 같다. 4강에서 내 경기력을 제대로 발휘 못 하고 자꾸 떨어지다 보니 이 압박감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 그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2019년 호찌민 월드컵부터 본격적으로 당구월드컵에 나가기 시작해서 그해 가을 구리 월드컵에서 처음 4강을 밟았다. 빠른 성장을 보여줬는데, 그때는 어땠나?

그때 4강 트라우마가 생겼다. 당시 한국 선수 중에서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 그렇다 보니 부담도 되긴 했는데, 그런 부담감보다 잘 치고 싶은 욕심이 컸다. 대회장에 왔는데, 체육관 앞에 사람들이 엄청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경기장 안에 들어갔더니 그 많던 당구대가 다 치워지고 딱 한 대만 있었다. 3면은 관중석이고, 한쪽 면에는 방송 카메라가 여러 대 있었다.

엄청 조용한 분위기 속에 경기가 시작됐는데, 초반에 실수 몇 개를 하니까 관중석 쪽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사람들 한숨 소리와 말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경기도 잘 안 풀리는데 도저히 회복이 안 되더라. 허무하게 4강에서 지고 나서 그때부터 4강에만 가면 그때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4강에 가면 사람들이 전부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내가 뭔가 실수를 하고 못 치면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 불안감과 압박감이 생겼다. 지금도 대회장이 조용한 것보다는 차라리 시끄러운 게 더 편하다.

이번 결승 진출로 트라우마를 극복한 건가?

우승까지 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일단 이번에 결승에 진출하면서 그 압박감을 뚫은 것 같아서 그게 더 좋았다.

당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중학교 때 공부를 제법 했었는데,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당구장을 하시면서 그때부터 취미로 조금씩 쳤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당구를 본격적으로 해보지 않겠냐" 권유를 하셨고, 나도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당구를 본격적으로 치기 위해 어떻게 했나?

원래 경북 문경 점촌에 살았었는데, 점촌에는 당구선수가 없다 보니까 당구를 배울 선수를 찾으러 구미까지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힘들기도 하고 더 많은 선수들이 있는, 당구 치기 더 나은 환경으로 가기 위해서 고등학교 진학할 때 매탄고등학교가 있는 수원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

매탄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당구를 치는 또래 선수들을 처음 만난 건가?

당구대회도 그때부터 나가게 됐는데, 생각보다 당구 치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놀랐다. 일단 TV에서만 보던 당구대회를 직접 눈으로 보고 나갈 수 있게 돼서 엄청 신기하고 더 열정이 생겼던 것 같다.

가장 처음 나갔던 대회가 기억나나?

아직도 생생하다. 양구대회였는데, 아무래도 첫 시합이다 보니 떨릴 걸 대비해서 우황청심환을 하나 먹고 나갔다. 근데 느낌이 너무 이상했다. 눈으로 보는 상황은 긴장이 되는데, 마음은 평온한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너무 이상해서 그 뒤로는 절대 안 먹는다. (웃음)

고등학생 때는 성적이 어땠나? 만족스러웠나?

경기도로 오니까 학생들을 위한 대회가 정말 많았다. 작은 학생대회에서는 우승도 여러 번 했는데, 전국대회 같은 큰 대회에서는 2위나 3위를 많이 했다. 당시 김행직 선수가 아주 강력했다. 행직이 형을 뛰어넘는 게 쉽지 않았다. 덕분에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2, 3위만 했다.

위로는 김행직, 아래로는 조명우라는 걸출한 선수 때문에 김준태 하면 '비운의 2인자'라는 평가도 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

주위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사실 나는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행직이 형이나 명우는 어렸을 때부터 당구를 쳤는데, 나는 중3 때 당구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다. 내가 구력이 짧기 때문에 경쟁한다는 생각은 잘 안 했지만, 가끔 내 앞길을 막고 간다는 느낌은 좀 받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 부분 때문에 스트레스도 심했을 것 같은데?

당연히 내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그런 걸로 스트레스받기보다는 그냥 열심히 했다. 한체대에 들어가서 스포츠 심리학에서 배운 게 있는데, 그런 쪽으로 타깃을 잡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목표를 잡아서 하는 게 더 이상적이다, 뭐 이런. 그때 이후로는 크게 다른 사람과 비교를 잘 안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언제인가?

월드 그랑프리 대회를 두 번 했는데, 첫 번째 대회가 정말 좋았다. 그때 룰 자체가 공격적으로 칠 수밖에 없는 룰이었는데, 일반 시합에서는 그렇게 경기 운영을 하기가 힘들다. 그 시합에서 그런 공격적인 플레이를 해보니까 내 애버리지가 얼만큼 더 나오는지도 알게 되고, 잘 치는 선수들이랑 그렇게 경기해 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것들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반면, 최악의 대회라고 생각되는 대회도 있나?

학생부 대회 때 그렇게 못 치는 편도 아닌데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질 않았다. 사실 실력 문제라기 보다 멘탈적인 문제였던 것 같다. 내 실력을 자만하다 보니 오히려 시합에 집중을 못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고3 때 당구부 코치로 한춘호 코치님이 오시면서 시합 때 계속 뒤에서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부터 성적이 엄청 잘 나왔다. 그때 7개 전국대회 중에 5개 대회에서 입상을 했던 것 같다.

매탄고등학교 당구부가 없어진다는 이슈가 있었다. 선배로서 아쉬움도 있을 것 같은데.

좀 아쉽긴 하지만, 학교 방침이 바뀌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원래 당구부는 보통 4교시까지 수업을 듣고 나머지 시간은 훈련을 했는데, 이제는 정규 수업을 다 들어야 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당구 훈련 시간이 줄어서 매탄고 당구부에 갈 메리트가 없어졌다.

김준태에게 김행직과 조명우란?

당구 경기에서 만나면 적, 당구 외적으로 만났을 때는 좋은 선후배다.

당구선수 중에 롤모델이 있나?

어렸을 때부터 토브욘 블롬달 선수를 좋아했다. 커서 직접 만나고 이야기해 볼 기회도 생가다 보니 더 닮고 싶다는 느낌이 강해졌다. 자기 관리도 잘하고, 당구 실력이나 커리어에서도 호기심과 열정이 엄청나다.

한국에서 프로당구가 생기고 많은 선수들이 프로당구로 이적을 했다. 혹시 이적 계획이 있다거나 아니라면 안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시청자 입장에서는 프로당구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아직 UMB 쪽에 더 잘 치는 선수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은 월드컵 무대에서 좀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고 싶다.

김준태 선수의 앞으로의 목표는 뭔가?

단기적으로는 월드컵 우승이고, 장기적으로는 자기 관리를 잘해서 오래도록 당구 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대회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라이브로 보시면서 응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그 응원에 보답을 꼭 하고 싶다. 


(사진=이우성 / 헤어 및 메이크업=신오키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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