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투어 '하이원리조트 PBA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에디 레펀스(SK렌터카)는 프로당구(PBA)의 개국공신 중 한 명이다. 지난 2019년에 PBA 투어가 출범 당시에 레펀스는 벨기에에서 프레데릭 쿠드롱과 함께 출사표를 던졌다.
초창기에 외국 선수의 참여도가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레펀스의 참여는 PBA 투어가 한국을 넘어 '세계 프로당구'의 비전을 갖추게 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인들에게 '한국에서 만든 프로당구'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상쇄하는 데 쿠드롱만큼이나 영향력이 있었던 선수였기 때문이다.
레펀스를 처음 본 것은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99년경이었다. 당시에 레펀스는 3쿠션 당구월드컵에서 몇 년 동안 성적이 좋았다. 선배 기자가 레펀스의 인물탐구 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에서 처음 레펀스를 봤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사진 속 레펀스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레펀스의 나이가 갓 서른 정도 됐을 때였다. 현재와 비교하면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와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와 비슷한 시기였다. 한국에는 이영훈(에스와이)과 오태준(크라운해태), 조건휘(SK렌터카) 등이 당시 레펀스의 나이대와 비슷하다.
몇몇 국가에서 1년에 적게는 5차례, 많으면 10차례까지 3쿠션 당구월드컵이 열렸지만, 3쿠션이 영향력이 있는 프로스포츠가 아니어서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레펀스의 기사는 외신에 나온 그에 대한 인터뷰를 번역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기사였는데, 그가 이미 20대 중후반의 나이로 세계적인 실력자 반열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당시에 3쿠션 사대천왕은 물론, 전설로 불린 선수들도 함께 활동하던 시기였다. 15점 세트제로 벌어진 이때의 3쿠션 당구월드컵은 꽤 치열했다. 현재 세계적인 선수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해 사대천왕 외에도 레펀스를 비롯해 세미 사이그너(휴온스), 에디 멕스(벨기에), 마틴 혼(독일), 디온 넬린(덴마크) 등 혈기 왕성한 스타플레이어들이 등장한 세계 무대는 역사적으로도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이 시기에 레펀스는 27살의 나이로 96년에 튀르키예에서 열린 안탈리아 당구월드컵에서 처음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했다. 97년에는 3회 연속으로 4강에 진출해 준우승을 한 차례 더 기록했고, 98년에도 결승에 올라가 토브욘 블롬달(스웨덴)과 우승을 다퉜다.
이처럼 레펀스는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3쿠션 역사상 가장 험난했던 시대의 세계 무대에서 실력자로 인정받고, 외신에 인터뷰가 나올 만큼 장래가 촉망됐던 선수였다. 그러나 레펀스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고, 시기적으로도 운이 좋지는 않았다. 당구월드컵에서 준우승만 세 차례를 한 레펀스는 세계선수권도 준우승과 4강만 여러 번 기록했다.
당구를 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여서 당시의 레펀스에 비하면 지금 시대에 프로 무대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 2, 30대의 젊은 선수들은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레펀스는 큐를 잡고 일찌감치 세계 반열에 올라섰지만, 정작 우승은 무려 40년 뒤에야 이뤘다. 2년 전에 열린 '휴온스 PBA 챔피언십'이 그의 첫 세계대회 우승 무대였다. 긴 세월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도전을 이어온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던 것이다.
다음 시즌에 레펀스는 6차 투어 'NH농협카드 챔피언십'에서 결승에 한 번 더 올라갔는데, 쿠드롱에게 1-4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이번 7차 투어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프로에서 세 번째 결승행에 성공했다.
상대방은 조재호(NH농협카드). 레펀스의 첫 우승의 상대가 조재호였다. 그리고 '2승 도전'의 마지막 관문에서 다시 조재호를 만났다. 결과는 아쉬웠다. 그러나 레펀스는 오랜 경력에서 묻어나오는 원숙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레펀스는 결승전이 끝난 후 기자들과 나눈 인터뷰에서 "경기를 하다보면 실망스럽고 좌절하는 순간도 있다. 나는 항상 좋은 기분으로 샷을 하려고 한다"며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냈을 때 전혀 실망하지 않는다. 오늘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만족한다"며 아쉬움을 감췄다.
이번에는 우승트로피를 후배에게 내줬지만, 머지않아 레펀스의 '통산 2승'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그의 인터뷰 전문이다.
경기 소감은. 내가 이번 투어에서 보여준 경기력에 대해 굉장히 자랑스럽다. 결승전뿐 아니라 모든 경기가 높은 수준의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자랑스럽다.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좋은 경기를 보여줬던 것 같다. 결승전에서 조재호 선수가 너무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이번 결승전에서는 포지션이 조금 어렵게 섰다. 제가 포인트를 만들려 할 때, 공이 붙어있거나 쿠션에 바짝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어려웠고, 조재호 선수가 충분히 승리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경기였다.
4강전까지 경기력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력이 결승까지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경기를 하다 보면, 실망스럽고 좌절하는 순간도 있다. 나는 항상 좋은 기분으로 샷을 하려고 한다. 이번 경기에서는 제가 쉬운 샷을 한 번밖에 놓치지 않았다.
다만, 다시 다득점을 만들려고 할 때 공이 큰 각에 있거나, 멀리 있거나, 쿠션에 바짝 붙어있었던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내 페이스를 만들 수 없었다. 나도 사람이기에 한때는 감정적인 모습이 표출됐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게 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3개 투어 결승전에서 4강전을 먼저 치른 선수가 모두 패배했다. 그 부분이 결승전 경기력에 영향이 있었는지. 동의하지 않는다. 준결승 1경기에 뛰었지만, 충분히 릴렉스할 시간이 있었다.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릴 시간도 있었다. 첫 번째 준결승을 치르는 것이 불리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많다.
때문에 그것은 단지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한 부분에서 갈린다고 생각한다. 준결승 시간에 상관없이 오늘은 조재호 선수가 너무 멋진 모습을 보여줘 우승했다. 나 또한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본다. 내가 충분히 칠 수 있는 공들을 모두 쳐 냈고, 놓칠 수 있는 공들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
우승을 하지 못했다는 부분에 대해 아쉬운 감정은 있을 텐데. 맞다. 그러나 토너먼트는 단 한 명만 웃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높은 수준의 선수들 경기 간에는 작은 실수가 큰 차이를 만든다. 1세트 때 13:13 상황에서 내가 어려운 뱅크샷을 놓치는 바람에 큰 차이가 됐다.
그러나 경기 결과와는 상관없이 내가 잡을 수 있는 기회를 해냈을 때는 전혀 실망하지 않는다. 오늘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기에 스스로 만족한다.
체력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하던데. 요즘 운동을 하고 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또한, 휴식도 충분히 취하고 있다. 운동을 하러 헬스장에 자주 가고, 연습도 충실히 하고 있다. 나는 지난 두 개 투어에서 첫 라운드에 탈락했다.
혹자는 이 모습이 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PBA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강하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어서 내가 당연히 탈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난 두 번의 투어보다 이번 투어에서의 컨디션과 퍼포먼스가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 저는 아직 젊기 때문에 또 다른 승리와 돌아올 것이다.
사실 지난 5, 6차 투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이유는 멘탈이 좋지 않았다. 경기 끝나고 눈이 조금 좋지 않았다는 부분에 사로잡혀 있어서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이번 투어에서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강한 멘탈로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졌을 경우에는, ‘왜 내가 졌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이번 투어에서는 항상 긍정적인 부분들을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사진=PBA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