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강전에서 '바자르 여왕' 한지은(에스와이)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여자 프로당구(LPBA)의 정상급 선수들조차도 64강에서 맞붙은 한지은에게 연전연패하고 있기 때문.
애버리지가 1점 이상은 기본이고, 어떤 접전이 벌어져도 막판에 크게 한 번 휘몰아쳐 승리를 따내는 승부사 기질까지 완벽해서 지금까지 한지은을 64강전에서 '제압'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64강전은 포인트랭킹 32위 선수까지 시드를 받고 나머지 32명은 예선 1, 2라운드를 거쳐 올라오게 된다. 25점을 50분 안에 쳐야 하는 승부기 때문에 변수가 많아서 이변이 자주 연출되는 승부다.
특히, 예선을 거친 선수들은 LPBA 랭커들과 64강에서 승부를 벌이게 된다. 처음 큐를 잡는 랭커나 강자를 맞딱뜨린 예선 통과 선수들 모두 부담이 가는 승부다. 그래서 예선 때보다도 더 이변이 잦고, 64강에서 일어나는 변수는 투어 전체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한 승부처인 64강에서 한지은은 투어 7차례 만에 '절대 강자'로 올라섰다. 지금까지 프로에서 한지은이 치른 64강전은 모두 5차례. 그중 한지은은 4승을 거뒀다.
한지은은 아직 포인트랭킹에서 32위 안에 들지 못하기 때문에 예선 통과자다. 64강에서 만난 상대는 전부 랭커들인데, 한지은은 LPBA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부터 최강자까지 만나는 상대마다 모두 일단락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1패도 승부에서 진 것이 아니라 무승부에서 하이런이 1점 모자라서 당한 패배였다. 그만큼 한지은은 64강전에서 누구보다도 강했다.
한지은은 이번 2023-24시즌에 데뷔해 개막전 분패 후 2차 투어 '실크로드&안산 챔피언십'에서 예선 1, 2라운드를 통과하고 처음 64강에 진출했다. 당시 한지은의 첫 64강전 상대는 김예은(웰컴저축은행). 이 경기 결과는 20이닝 만에 23:20으로 한지은의 승리였다.
한지은이 프로에서 처음 랭커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던 셈이다. 물론, 승부는 쉽지 않았다. 9이닝까지 9:6으로 앞섰던 한지은은 중반에 15:15 동점을 허용했고 경기 막판에는 17:20으로 패배 위기에 몰렸다. 한두 차례 공격권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 한지은이 19이닝에서 하이런 6점타를 터트리면서 승부는 23:20으로 마무리됐다.
2차 투어에서 첫 32강행에 성공한 한지은이 프로에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됐고, 다음 3차 투어 '하나카드 챔피언십' 64강에서는 '당구 여제'로 불리는 김가영(하나카드)을 만났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국내를 평정하고 세계선수권 준우승과 세계대회 사상 첫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던 한지은과 포켓볼 선구자에서 3쿠션 선수로 변신해 LPBA 정상에 올라선 김가영의 흥미로운 대결이었다.
불과 22살의 어린 선수가 '대선수'를 상대로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 것인지 기대가 컸는데, 한지은은 이 승부에서 19이닝 만에 25:7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먼저 두 경기를 치르며 경기장 분위기와 당구대 컨디션 파악을 마친 한지은이 어떻게 보면 유리한 승부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상대가 김가영이었기 때문에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김가영은 프로 원년 시즌에 딱 한 차례 서바이벌 예선전을 제외하고, 투어 첫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는데, 한지은은 3년 8개월 만에 김가영을 1라운드에서 탈락시켰다.
이 대회에서 한지은은 8강까지 올라가며 활약했다가 4차 투어 '에스와이 챔피언십' 64강전에서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4차 투어를 우승한 사카이 아야코(하나카드)와 대결한 한지은은 23:23(21이닝)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고, 하이런에서 1점이 뒤져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가 한지은이 64강전에서 당한 유일한 1패다.
5차 투어 '휴온스 챔피언십'에서 한지은은 예선 2라운드(PQ) 관문을 넘지 못하고 6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6차 투어 'NH농협카드 챔피언십'에서 한지은은 이미래(하이원리조트)와 64강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21이닝 만에 22:19 한지은의 승리. 경기 내내 엎치락뒤치락하던 승부는 경기 종료가 거의 다다른 시점에 19:19였는데, 한지은이 마지막 공격에서 3점을 득점하면서 극적으로 승리를 거뒀다.
한지은은 지난 23일 강원도 정선군의 하이원 그랜드호텔 컨벤션타워에서 열린 7차 투어 '하이원리조트 LPBA 챔피언십' 64강전에서 또 한 번 어려운 승부를 승리로 장식했다.
이번 64강전 상대는 정은영. 최근 경기력이 좋은 정은영은 64강전에서 한지은을 가장 위협한 상대였다. 35분을 끌려가던 한지은은 막판 15분가량을 남기고 14:16에서 큐를 잡아 연속타를 올리며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공격을 하이런 10점으로 연결하며 14:16에서 24:16으로 순식간에 승부를 뒤집었다. 한지은이 승리까지 남은 점수는 단 1점.
마지막에 정은영이 스리뱅크 샷을 한 차례 성공한 뒤 다시 뱅크 샷을 시도했지만, 이게 들어가지 않으면서 승부는 굳어졌다. 한지은이 20이닝에서 매치포인트를 득점하고 25:18로 역전승을 거두고 다시 한번 64강전을 승리했다.
한지은의 이런 64강전 활약에 대해 한 당구 관계자는 "실력이 엇비슷한 상황에서 먼저 예선 한두 경기를 뛰면 유리하다.
특히나 64강전 같은 경우는 같은 날 오전에 PQ를 치르고 오후에 경기를 하기 때문에 경기 감각을 이어갈 수 있는 장점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다른 선수 출신 관계자도 "한지은이 다점제 방식의 승부를 최근까지 치르다가 온 상황에서 예선이 다점제로 치러지기 때문에 적응이 수월할 수 있다. 구질을 보면 예선 라운드에서 한지은을 이길 만한 선수가 별로 없는 것도 64강전 활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LPBA 투어는 32강부터 세트제로 경기가 진행된다. 한지은은 64강 다점제와 달리 32강에서는 2승 3패로 승리가 적다.
과연 한지은이 32강을 넘어 통산 두 번째 16강 진출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한, 김가영과 16강 재대결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한지은의 경기는 24일 오후 5시에 이다정과 16강행을 다투고, 김가영은 다음 날 오후 4시 30분에 최연주와 승부를 벌인다.
만약, 한지은과 김가영 모두 32강전을 승리하면 16강에서 두 번째 맞대결을 벌이게 된다. '무적 64강'을 자랑하는 한지은이 과연 세트제 승부에서도 상승가도를 달릴지 주목된다.
(사진=정선/이용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