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가 강자를 누르고 승리하는 것만큼 감동적인 순간도 없다. 이 순간의 극적인 감동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체로 약세인 선수가 강자를 상대하는 장면에서 팬들은 약자를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대중은 심리적으로 약자에 대해 애착을 보이기 때문인데, 이를 '언더독 효과'라고 한다.
이 '언더독 효과'가 여자 프로당구(LPBA) 무대에 매회 이어지고 있다. '탑독'과 '언더독'의 경쟁이 이번에도 준결승전에서 또 한 번 벌어지게 됐다.
개막전 준결승에서 오수정과 김민아(NH농협카드)의 승부, 3차 투어에서 정은영과 백민주(크라운해태), 4차 투어 박다솜과 사카이 아야코(하나카드)의 대결 모두 '언더독 대 탑독'의 승부였고, 이번 5차 투어는 김상아 대 백민주의 대결이 준결승에서 벌어지게 됐다.
지난 3차 투어 우승자인 백민주는 언제, 어느 대회에서 우승해도 이변이 아닌 '탑독'인 반면, 김상아는 프로 5년 동안 최고 성적이 8강(1회)이었을 만큼 완연한 '언더독'이다. '언더독 우승'의 감동 신화를 쓰기까지 단 두 경기가 남은 만큼 김상아의 저력이 한 번 더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상아는 22일 경기도 고양시의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즌 5차 투어 '휴온스 LPBA 챔피언십' 8강전에서 강지은(SK렌터카)에게 세트스코어 3-2로 신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강지은은 2년 전 '휴온스 LPBA 챔피언십'을 우승하고, 통산 2승을 달성했다. 8강까지 언더독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어렵게 올라왔으나, 8강에서 김상아의 거센 돌풍을 막지 못했다. 김상아는 1세트와 2세트를 각각 11:6(16이닝), 11:10(15이닝)으로 연달아 따낸 다음 3, 4세트를 3:11(6이닝), 7:11(9이닝)로 내줬지만, 마지막 5세트에서 3-3-2-1 연속타를 터트리며 9이닝 만에 9:4로 승리를 거뒀다.
김상아는 이번 8강전 승리로 5차 투어에서 개인통산 두 번째 8강 관문을 통과했고, 사상 처음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상아의 4강 진출 활약으로 첫 '언더독 우승'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언더독 중에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없다. 과거 오수정이나 이마리, 최지민 등이 준결승에서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한 적은 있지만, 이 선수들 모두 우승에는 실패했다. 원인은 대부분 방송 경기 경험의 차이가 가장 컸다.
방송 경기 경험이 많지 않은 언더독들이 상대적으로 카메라에 익숙한 탑독들을 큰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 카메라가 있는 경기와 없는 경기는 하늘과 땅 차이다. 멀쩡했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만 서면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 5차 투어 8강에 올라온 선수 중 그나마 김상아가 방송 경기에 주눅 들지 않고 제 실력을 보여주며 준결승 진출에 성공한 경우다. 8강에서 김가영(하나카드)과 임정숙(크라운해태)을 각각 상대한 정다혜와 하윤정은 상대도 상대지만, 카메라 앞에서 적응이 쉽지 않은 듯했다.
한 당구 관계자는 "방송 경기도 그렇고, 대회장의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는 환경적인 이유로 언더독 우승이 어려운 것"이라며 "투어마다 경기장이 바뀌는 것보다 지금처럼 전용경기장에서 계속 치러질수록 언더독이 상위 라운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김상아의 경우에는 "당구는 멘탈로 싸우는 일 대 일 승부"라며 "매 경기 상대방과의 흐름 싸움에서 유리하게 풀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8강전에서 처음 카메라 앞에 섰는데도 비교적 안정감 있게 플레이를 잘했다"라고 말했다.
김상아는 이번 대회에서 예선 1라운드(PPQ)부터 8강전까지 6연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올라왔다. 64강에서는 김민영(블루원리조트)을 19이닝 만에 23:16으로 꺾으며 애버리지 1.211을 기록했다.
특히, 32강에서는 전 대회 우승자인 사카이를 세트스코어 2-1로 꺾었고, 16강에서는 오도희에게 애버리지 1.048로 2-0의 완승을 거두고 8강에 올라온 바 있다. 8강전 애버리지는 0.759에 그쳤지만, 준결승까지 대회 합산 애버리지가 0.813으로 상대방 백민주(0.761)보다 높다.
승부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만약 전체 시즌 랭킹에서 48위에 머물러 있는 김상아가 백민주(9위)를 꺾고 결승에 올라가면, 사상 최초 언더독 우승 도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언더독들의 활약으로 투어마다 마지막 날까지 뜨거운 열기로 달궈진 LPBA 투어에서 이번에 새 역사가 쓰이게 될지 주목된다.
(사진=고양/이용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