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해외 당구선수들 중에서는 국내에서 실제와 다르게 이름이 불리거나 표기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과거에는 당구를 스포츠로 다루는 전문 언론이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름 한두 글자가 잘못 표기돼도 크게 문제가 된다는 인식이 없었다.
다만, 언론 입장에서 해외 선수들의 이름이 가급적 올바르게 불리고, 알려지게 하기 위해 정확한 표기법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3쿠션 종목은 유명한 해외 선수 외에 다른 선수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전부터다.
3쿠션 당구월드컵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주요 세계당구대회에는 대체로 많이 알려진 선수들이 나오기 때문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국내에서 3쿠션 당구월드컵이 열리기 시작해 많은 선수의 이름이 보도되면서 정확하게 이름을 표기할 필요가 있었다.
이름이나 지명 등은 영어식 표기가 아니라 해당 국가의 언어를 기준으로 표기된다. 따라서 아직도 처음 보는 외국 선수의 이름은 철자만으로 정확하게 표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기사에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외래어 표기법'에 기준을 두고 최대한 적합한 이름을 찾아서 쓴다.
그러나 외국어 표기법에 모든 언어의 표기 방법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특이한 성이나 이름을 갖고 있는 선수들을 보도하는 데는 여전히 애를 먹기도 한다.
당사자가 이름을 바로 옆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줘도 어떻게 표기를 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동명의 유명인이나 표기법상의 철자 발음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비슷한 표기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당구선수 중에 가장 표기가 잘못되는 국가는 튀르키예와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두 나라를 비롯해 여러 국가의 선수도 알파벳 철자와 발음이 다르지만, 3쿠션 종목에 대한 보도가 많은 우리는 튀르키예와 베트남 선수 표기를 틀리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에 현재 3쿠션 세계챔피언 타이푼 타스데미르(Tayfun Taşdemir, 튀르키예)는 국내에서 '타스데미르 타이푼'으로 성과 이름이 바뀌어 불리기도 했다.
'타이푼'으로 불리는 게 더 자연스럽긴 하지만, 당시 그를 정식으로 보도하면서 '타이푼 타스데미르'로 바로 잡은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그너 → 세이기너 → 사이그너 → 세이기너?'
이름이 여러 번 바뀐 선수도 있다. 며칠 전 프로당구(PBA)에서 '데뷔전 우승'을 차지한 세미 사이그너(휴온스, 튀르키예)가 그렇다.
90년대에 한국에 와서 방송 경기를 할 때 이름표기를 '시그너'로 처음 했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알파벳식으로 철자를 그대로 읽어 '세이기너'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세이기너'는 가장 잘못된 표기다. 실제 발음조차 전혀 다르다. 발음과 표기법 모두 '사이그너'가 맞다.
지난 2014년에 한국을 방문한 사이그너를 인천의 한 경기장에서 만났다. 인터뷰 목적과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는데, 사이그너는 대뜸 "내 이름을 제대로 표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노(No), 시그너, 노(No), 세이기너"라더니 자신의 이름을 한자씩 또박또박 발음하며 "사, 이, 그, 너"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는 종이에 한글로 '사이그너'라고 적고 그대로 불러달라고 했다. 한국에서 '시그너'와 '세이기너'로 십수 년 동안 잘못 불렸기 때문에 언짢을 만도 했다. 그렇게 그의 이름은 다시 '사이그너'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 프로에 오면서 사이그너의 이름은 다시 '세이기너'가 됐다.
PBA에서 사이그너를 '세이기너'로 표기했고, 모든 언론이 그를 다시 '세이기너'로 보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세미 사이그너의 철자는 'Semih Saygıner'라고 적는다. 자세히 보면, 이름에 있는 'i'와 성에 있는 'ı'가 다르다.
튀르키예어에는 알파벳과 동일한 'i'와 위에 점에 없는 특이한 'ı'가 있다. 점이 있는 'i'는 우리말로 '이' 발음이지만, 점이 없는 'ı'는 '으' 발음이다.
따라서 '기너'가 아니라 '그너'다. 앞의 'Say'도 영어 단어를 읽듯이 '세이'라고 하면 안 되고 'a'를 '아' 발음으로 '사이'라고 발음하고 표기하는 게 맞다.
이것은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이고, 직접 부르는 발음도 같다.
정식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세미 사이그너' 또는 '세미 사이그네르'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현지인의 발음을 들어 보면, '세이기너'는 전혀 아니고 '사이그너'와 '사이그네르'가 혼용돼서 들린다. 튀르키예 단어 중에서 'ner'로 끝나는 단어는 여러 가지 발음이 사용된다.
당사자인 그가 '사이그너'라고 정확하게 발음해서 들려주고, 그와 마지막 철자가 같은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여자 3쿠션 선수 귈센 데게너(Gülşen Degener)도 '네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에 그의 요청대로 '사이그너'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다.
'응고 → 응오', '찬 차팍 → 잔 차팍', '나시 → 나지'
사이그너 외에도 현재 PBA에서 뛰는 선수 중에서 튀르키예와 베트남 선수 몇 명은 이름이 잘못 표기돼 있다. 이 선수들 역시 외래어 표기법에 정확한 발음과 표기가 나와 있다.
튀르키예의 잔 차팍(Can Çapak·블루원리조트)도 이름의 'C'와 성의 'Ç'가 다르다. 예전에 국내에서는 이 선수를 '칸 카팍'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선수는 '찬 차팍'이 아니라 '잔 차팍'이 맞다. 'C'는 우리말로 '즈', 'Ç'는 '츠'로 발음된다.
무랏 나시 초클루(Murat Naci Çoklu·하나카드)도 표기법상은 '나시'가 아니라 '나지'가 맞다.
그러나 너무 오래 불러온 이름을 바꾸는 것이 어렵고 크게 차이가 없어서 그대로 둔 경우다.
뤼피 체넷(Lütfi Çenet·하이원리조트)도 과거에는 '뤼피 세넷'으로 불렸는데, 다소 차이가 있어서 '뤼피 체넷'으로 바꿔 표기해 오고 있다.
아드난 윅셀(Adnan Yüksel)은 '육셀'이나 '윅셀' 병행할 수는 있지만, 'ü'가 들어간 튀르키예어 단어나 지명, 예를 들어 위스퀴다르(Üsküdar), 에미뇌뉘(Eminönü) 등 '위'가 더 널리 쓰인다는 점에서 '윅셀'로 표기하고 있다.
베트남 선수 중에서는 응오딘나이(Ngô Đình Nại·SK렌터카)가 대표적으로 잘못 표기돼 있다.
PBA에서는 '응오'를 '응고'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Ng'가 '응' 발음이므로 '응오'라고 쓰는 게 맞다.
즈엉아인부(Dương Anh Vũ·에스와이) 역시 '즈엉아잉부'로 표기했지만, 'Anh'는 표기법상에 '아인'으로 쓴다.
그밖에 다비드 사파타(블루원리조트)나 사와쉬 불루트, 과거에 '윙 쿽 윙'으로 한국 방송에 나왔던 응우옌꾸억응우옌(하나카드)은 표기법에 맞게 돼 있다.
이름표기가 잘못돼 있는 사이그너를 비롯한 차팍, 체넷, 응오딘나이, 즈엉아인부 등은 외래어 표기법에 해당 발음이 모두 정확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바로 잡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해외 선수들은 한글을 모르고, 이름을 부를 때 사이그너처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자신의 이름이 한국에서 어떻게 표기되는지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많은 PBA 선수가 한국의 방송이나 뉴스에 이름이 나오게 되는데, 여러 선수가 실제 이름과 표기의 차이가 있는 만큼 이름을 정확하게 표기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번처럼 '사이그너'가 '세이기너'로 회귀하는 해프닝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월간 빌리어즈> 김도하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