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을 남긴 전설의 우승 소감 중 유독 가슴에 와닿은 말이 있다. 프로당구(PBA) 데뷔와 동시에 우승을 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세미 사이그너(휴온스)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나의 '레거시'를 남기기 위해 이곳(PBA)에 왔다"
우리 나이로 환갑이 다 된 그가 편안한 생활을 뒤로 하고, 한국이라는 먼 나라에 와서 젊은 선수와 경쟁을 하는 길을 선택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사이그너의 이 말에서 "프로는 돈"이 아닌 '레거시(유산)'라는 가치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다.
혹자는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는 한국 생활이 싫고, 누구는 UMB 무대에서 꾸려온 전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BA에 도전한 선수들은 PBA에 당구의 미래 비전이 더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징계를 감수하고 PBA행을 선택했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누가 잘했고, 잘못했다는 것을 따지진 않는다.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환경을 만든 이들은 결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만, 선수들의 선택은 각자 이유가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
사이그너의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이 말은 다시 한번 미래 세대를 위해 선배 세대의 당구선수가, 당구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사이그너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고, 첫 대회를 치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우승을 차지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우승 인터뷰를 보자.
우승 소감은?
정말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은 저의 전체 커리어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첫 투어만에 우승하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대단한 커리어를 가졌는데, 다른 룰과 분위기에서 첫 투어만에 우승하리라 생각했었나.
PBA는 내가 겪어왔던 시스템과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세트포인트 시스템, 초구 배치에 주어지는 9개의 스팟, 심지어 뱅킹 방향까지 내가 익숙하지 않았던 시스템이다.
그래도 적응하려 노력했다. 한국에 오기 전 마음가짐을 바로 잡기 위해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이번 대회 매 순간 ‘지금 이 순간’ 당구 즐기려고 노력했고, 내가 원하는 당구를 치자 마음먹었다. 내가 조건휘 선수를 상대로 승부치기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마음가짐 덕분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경기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준결승과 결승의 경기 양상이 많이 달랐는데. 어떤 차이가 있었나.
내 생각에 이번 대회 모든 경기가 어려웠다. 하나하나 모든 게임을 비교할 순 없다. 준결승전은 나도, 상대(박인수)도 실수를 많이 해 어려운 양상으로 흘렀다. 심지어 상대(박인수)가 이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승에서는 이상대 선수가 많이 찬스가 없었던 것 같다. 운도 조금 없었던 것 같고. 3세트에서는 그가 부담감을 많이 느꼈고 내가 3세트를 이기자마자 부담감은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더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앞서 이상대의 플레이를 TV로 봤는데 정말 좋은 플레이와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이길 수 있어서 너무 좋다.
7전 4선승제와 기존 점수제의 차이, 체력적인 부담은 없나?
한국 입국 직전에 코로나19에 감염됐었다. 14일 동안 집에만 있었고 헬스장을 가거나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항상 최고의 컨디션과 체력상태 유지하려 노력했다.
나는 한국 나이로 60살인데 체력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젊은 선수들에 비해 최고의 상태는 아니긴 하다.
그러나 내가 가진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려 노력 중이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플레이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 7세트, 6세트, 4세트 뭐든 문제없다. “(한국어로) 하지만 지금은 조금 피곤합니다.”
PBA 첫 대회였는데, 바뀐 환경 가운데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PBA의 모든 환경은 다 새롭게 느껴진다. 특히 응원. 결승 내내 ‘세미 고고고’라고 외치는 소리와 제 뒤에 있던 큰 스크린, 저를 응원하는 목소리, 상대방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새롭게 느껴졌지만 전혀 내 플레이에 방해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게임을 즐기려고, 당구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특별히 이상대의 응원 소리도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이런 부분을 적응하려 노력해 왔기에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 ‘마인드 세팅’을 제대로 하고 왔다. 내 커리어를 ‘나이스’ 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나의 ‘레거시’를 남기기 위해 이곳 PBA에 왔다.
아내(세나이 귀를러)가 유명한 배우인데. 올해 개봉한 넷플릭스에도 출연했다고.
맞다. 시즌 3편으로 나뉘어진 영화인데, 올해 10월에 2편이 개봉한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필모그래피를 잘 알 수 있을 거다. 튀르키예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 영화배우다. 이름은 세나이 귀를러.
5년 전 터키 최고 영화배우상을 받았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도 두 차례나 받았다. 셀럽이자 예술가다. 나와 내 아내는 튀르키예 내에서는 굉장히 유명하다. 어디든 가든 저를 알아보고 제 이름을 불러준다.
나는 이런 부분을 튀르키예를 위해 국위선양을 하고 당구를 알리는 데 이용하고 싶다. 튀르키예에는 좋은 당구선수들이 많다. 최근 월드챔피언십에서도 튀르키예 선수가 우승했고 유러피언 챔피언십, 유스 챔피언십에서도 튀르키예 선수들이 우승을 했다.
제가 가진 명성과 명예를 좋은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고, 그렇게 하고 싶다. 튀르키예 선수 홍보와 당구를 알리는 데, 환경을 개선하는 데 많이 이용하고 있다.
끝으로 예전엔 한국어를 많이 알았지만 많이 잊었다. 그래서 최근 한국어 과외를 받고 있다. 다음 인터뷰 때는 한국어 반, 영어 반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하.
* 공식 기자회견 종료 후 취재진을 향해 한국어로 “여러분,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