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쿠션 월드컵에서 찾는 당구의 방향

2014 구리 세계 3쿠션 월드컵 시상식

과거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오래 살았던 탓에 그들의 문화와 좀 더 빠르게 친숙해질 수 있었는지, 운이 좋게도 세계3쿠션당구월드컵을 구리에서 두 번 개최하며 유럽당구연맹(CEB)이나 판아메리카당구연맹(CPB), 그리고 세계당구연맹(UMB)의 임원들과 교류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양한 국제 정세에 대해 느꼈던 점을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해 달라는 <빌리어즈>의 요청으로 칼럼을 쓰게 되었다. 

대한당구연맹과 아시아캐롬당구연맹 장영철 회장은 세계당구연맹 부회장까지 역임하며 유럽 중심의 세계 당구인들 속에서 아시아의 수장으로 신흥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머지않아 캐롬의 축이 아시아로 일부분 넘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상황에서 내년에는 구리보다 먼저 베트남에서 월드컵이 열릴 듯하다. 한국으로 대표되던 아시아 캐롬의 영향력이 새로운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의 월드컵 유치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여 무척 반길 만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책임을 맡아 경기도 구리에서 개최될 예정인 2015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와 2016 세계여자3쿠션선수권대회, 2015년과 2016년 세계3쿠션당구월드컵까지 아시아권에서의 국제대회가 줄줄이 개최됨에 따라 캐롬 시장이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최성원 선수의 우승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던 이번 2014 서울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만난 UMB 장 클라우드 듀퐁 회장과 화룩 바르키 디렉터에게 2015년에 구리에서 열릴 월드컵과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 개최를 위한 UMB의 아낌 없는 지원을 재차 확인하였고, 출전선수 확대와 기존의 6대 테이블 경기 진행 방식을 8대 테이블까지 확대하는 부분까지 약속받았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기간에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선수들이 출전하여 멋진 경기를 연출하였으나, 그들의 이면에는 많은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계 각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상황을 직접 보고, 각국 연맹의 문제점들을 전해 들을 때마다 당구라는 종목이 가지는 위상이 아직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중 남미의 콜롬비아는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숨은 실력자들이 많은 캐롬 강국이다. 예전의 한국처럼 해외무대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콜롬비아 국가대표 2명이 이번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 출전하였다. 예상보다 좋은 경기력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떤 외국 선수에게 그들이 처한 어려움을 듣게 되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그들이 코치나 통역 없이 단둘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인천 공항으로 픽업을 나갔다.

나 역시 스페인어가 짧아서 그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어려웠다. 국가대표를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시키면서 콜롬비아당구연맹에서는 어떻게 선수만 덜렁 보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전에 그 두 명의 국가대표를 위한 지원이 비행기 표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두 선수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당구클럽마다 돌아다니며 여러 명의 개인 후원자에게 경비를 보조 받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연을 듣고는 마음이 아팠다. 

처음에는 콜롬비아당구연맹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속사정을 자세히 듣고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다. 독자들은 지난해 열린 콜롬비아 월드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콜롬비아당구연맹은 판아메리카당구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나라다.

판아메리카당구연맹은 아시아캐롬당구연맹처럼 세계당구연맹에 속한 단체다. 콜롬비아는 판아메리카당구연맹과의 재정적인 문제로 오는 12월 중순 즈음 판아메리카당구연맹에서 징계를 받게 되었다. 그 징계가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콜롬비아 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거나, 콜롬비아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국내의 한 업체가 이들의 독지가로 자청하고 나섰다. 두 명의 콜롬비아 선수들은 한국 사람의 따뜻한 마음에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며 공항으로 향했다. 뿌듯한 한편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소속 연맹과의 원만한 해결로 이들을 세계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와는 별도로 세계당구연맹에서 징계를 받고 출전하지 못하는 멕시코당구연맹의 선수들도 하루빨리 다시 보게 되기를 희망한다. 더군다나 내년 세계선수권대회는 판아메리카당구연맹 회원국 중에서 열리게 되어 있다. 매년 벌어지는 세계선수권대회가 4년에 한 번씩은 판아메리카당구연맹 회원국 중에서 개최되어 왔다.

아직 개최지가 확정되지 않아서 세계당구연맹의 행사 일정으로는 잡혀 있지 않으나, 멕시코당구연맹이 징계 중이고 콜롬비아당구연맹까지 징계를 받게 된다면 페루가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미주대륙의 상황이 빨리 좋아지기를 기대한다.  

이번 2014 서울 세계3쿠션선수권대회 기간 중에 회사 업무로 인해 컴퓨터 인터넷 방송으로 경기를 관전할 때의 일이다. 시청을 하던 도중 채팅 공간에 ‘아무개 프로, 아무개 프로’ 이런 식으로 선수를 표현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냐고 어떤 사람이 물어 보았다.

정확히 프로라는 말을 선수 이름에 붙이려면 프로 연맹이 존재해야 한다. 나는 구리시당구연맹 선수들을 존칭할 때 주로 ‘사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연봉을 받고 선수 생활을 하는 실업팀이 모여서 프로라는 단체를 창설하고 리그를 만들었을 때, 그 무대에서 뛰는 선수에게나 ‘프로’라는 호칭이 붙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실업팀이 하나둘 생기고 있는 과도기에 있을 뿐 실업리그조차도 만들 수 없을 만큼 팀이 적다. 유럽클럽리그 역시 프로 선수라고 붙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많은 지역에서 일단 실업팀이 생기고 최소한 7~9개 팀이 여러 명의 연봉을 받는 선수를 보유하게 되면 실업팀 간의 실업리그가 시작될 수 있다.

이런 단계를 거쳐 실업의 우수한 선수들이 프로 선수로 발전할 수 있는 프로리그나 투어가 탄생할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이든, 지방자치단체든 실업팀이라도 만들어서 운영되어야 하는데, 당구 종목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나 역시 구리시의 실업 당구팀 창설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지만,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연봉 책정도 못 하고 선수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선수들에게 프로라는 명칭을 허위로 달아주고 싶지는 않다. 이는 꼭 한국 당구의 현실만은 아니다.

외국의 한 회사에서 당구선수에게 생계가 가능한 연봉을 주고 초청리그를 기획했던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아지피(AGIPI)가 바로 그 회사다. 하지만 아지피는 회장단의 교체와 함께 13년간 연봉을 주고 열었던 대회를 멈추게 되었으며 소속되어 있던 선수들은 더 이상 연봉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선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하여 꼭 이런 기업들이 다시 생기기를 기원하고 있으며, 이는 명칭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으로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으로 소속 팀 선수 모두가 제대로 된 훈련을 받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당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관심과 저변이 확대되어야 한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한국의 일부 당구업체들이 선수들을 후원하고 있고, 이런 후원자들이 당구업체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의 후원 업체가 많이 생겨야 한다. 

프로는 야구와 축구 같은 인기 스포츠가 그랬듯이 오랜 시간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뤄질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다. 

앞에서 콜롬비아의 예를 들었지만, 세계 각국의 당구 정세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많은 나라의 연맹들이 아직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번 2014 서울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도 세계 각국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출전하였으나, 비용 전체를 대주는 연맹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선수는 전액 자비로 출전한 경우도 있다. 각국의 연맹들은 종목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그 높아진 위상으로 기업의 관심을 받게 된다. 스포츠를 너무 상업적으로만 만들어서도 안 되지만, 종목의 위상이 높아지면 기업의 관심과 함께 질적, 양적 시너지 효과를 만들게 된다.

한국 당구는 예전에 비하면 어두운 그림자에서 탈피하여 스포츠로 거듭나는 중이다.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당구 선진국에 속한다. 세계의 모든 당구인들이 현재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지만, 지금의 이런 노력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밝은 미래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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