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선거 개표가 발표된 직후 김영재 당선자(오른쪽)와 김문장 후보

혼란의 당구계 수습을 위한 소방수

98년 1월 23일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인정종목 단체로 승인되어 가맹이 이루어짐으로써 명실공히 당구의 스포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스포츠당구협회가 여기에 이를 데까지도 당구계는 이합집산의 많은 진통을 겪었다.

그리고 가맹 이후에도 임영렬 회장의 집행부는 당구계 발전을 위한 대의(大義)를 실천하기보다는 대의원들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내부 분열을 초래하는 양상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회장 취임 후 1년 1개월 만인 99년 5월 19일에 회장직을 물러나게 되었다.

지난 1년 동안에 많은 상처를 안게 된 당구계는 당구계를 화합하고 안정시키는 한편으로, 대한체육회 준가맹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당구를 정식종목으로 채택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될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제2대 회장을 선출해야 했다.

당시로서도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의 회장은 유력 정계 인사나 재력가를 초빙하는 관례가 있었으므로 당구계에서도 그런 논의가 없지 않았으나 인정종목 경기단체의 처지로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물색은 하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시점에서 당구계를 하나로 추스르고 화합을 유도할 인물로서 대한당구경기인협회를 설립하여 서울 월드컵 개최에 헌신하였고 아시아포켓볼연맹 부회장과 대한포켓당구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재 회장을 적임자로 낙점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본인도 지금이 당구계의 중요한 시기임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회장을 맡겨 준다면 당면의 과제인 준가맹과 부산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에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당구계를 발전시키는 데 적임의 회장이 물색되면 회장직에서 미련없이 물러나겠다고 공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7월 29일에 실시된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임시대의원총회의 회장 선거에는 김영재 회장 외에 대한당구선수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김문장 씨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을 업고 회장 출사표를 던졌다.

김용철 경기도 대의원이 의장을 맡은 회장 선거에서 김윤석 충북 대의원이 김영재 씨를 회장 후보로 추천하고, 전북 대의원 정인수 씨가 김문장 씨를 후보로 추천하여 치른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9:3의 압도적 표차로 김영재 후보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날 선거가 끝난 뒤에, 김문장 후보를 지지하기로 약속했던 대의원들이 김영재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결과가 나타남으로써 이에 흥분한 김문장 후보 지지 세력들이 난동을 부리는 사태가 발생해 올림픽공원 내의 다른 단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것은 대한스포츠당구협회의 앞날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일본 스포츠계 인사들이 김영재 회장(오른쪽 세 번째) 안내로 김운용 대한체육회 회장(오른쪽 네 번째)을 만났다


부산 아시안게임 당구 정식종목 채택에 올인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제2대 회장으로 선출된 김영재 회장은 협회 조직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으므로 그와 함께 대한포켓당구연맹을 이끌어 왔던 백상영 부회장을 전무이사로 기용하는 한편, 새 집행부에 새로운 인물과 전 집행부 사람들을 두루 기용하는 탕평책을 썼다.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본지와의 대담에서 김 회장은“현재 우리 협회가 당면한 큰 과제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부산아시안게임의 당구 정식종목 채택 문제이고, 두 번째는 현재 인정종목으로 승인되어 있는 당구 종목의 대한체육회 정가맹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 두 가지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는 동일적 성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대한체육회에 정가맹이 이루어지면 아시안게임 종목 채택이 더욱더 수월하고,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다면 대한체육회 정가맹은 또한 쉽게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혔다.

대한포켓당구연맹 회장 자격으로‘부산아시안게임 당구 정식종목 채택 대책위원회’멤버에 참여하고 있던 김 회장은 대한스포츠당구협회 회장으로 직책이 바뀌자 이 과제를 협회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이 과제에 한층 올인하였다.

'코리아 오픈 아시안 빌리어드 토너먼트' 3쿠션 결승전을 관람하는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곽만섭 조직위원장(오른쪽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니시오 가쿠 아시아캐롬연맹 회장을 비롯한 아시아 당구 지도자를 대동하고 부산아시안게임 곽만섭 조직위원장을 방문하는가 하면, 일본 당구계와 스포츠계 인사들을 대한체육회 김운용 회장에게 동행 방문하여 당구 종목 채택에 관한 지지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0월 5일부터 4일간 당구 종목 채택을 기원하는 국제 행사로서‘코리아 오픈 아시안 빌리어드 토너먼트’대회를 부산 해운대 웨스턴조선비치 호텔 특설경기장에서 대한스포츠당구협회 주최·주관 행사로서 성대하게 개최하였다. 경기 종목은 캐롬 개인 3쿠션, 포켓9볼 개인 남자, 포켓9볼 개인 여자, 그리고 시범경기로 스누커가 치러졌다.

대회 개최 3일째인 10월 7일에는 김영재 회장과 백상영 전무이사의 안내로 대회 참가차 한국에 온 아시아포켓당구연맹 두영휘 회장과 다른 아시아 당구 지도자와 함께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를 방문하여 곽만섭 조직위원장과 홍상표 경기본부장을 만나게 하였다.

이 자리에서 아시아 당구 지도자들은 개최 중인‘코리아 오픈 아시안 빌리어드 토너먼트’의 개최 목적과 참가 인원 및 대회의 성과를 설명하고 2002년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에 당구가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였다. 다음 날 대회 마지막 날 곽만섭 조직위원장과 홍상표 경기본부장이 대회장을 방문하여 대회장을 둘러보고 당구에 관해 많은 것을 질문한 후 3쿠션 개인전 결승전과 남자 포켓9볼 결승전 경기를 관람하였다.

김영재 회장은 당구 정식종목 채택 대책위원회에서 실시하는 당구 종목 채택 100만 명 서명 운동에 각 시도지부 선수들이 참가하여 가두 서명을 하도록 독려하고, 자신도 스스로 참가하는 열의를 보였다.

대회 개최 2년 전에 종목 채택이 결정되는 아시안게임은 2000년 11월 12일 부산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전날부터 시작된 회의에서 이미 결정된 35개 종목 외에 스쿼시 1종목만 추가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런데 당일 이변이 일어났다.

스쿼시와 당구 2종목이 채택되었다고 발표되었다. 그때 그 시각 백상영 전무와 함께 부산 현장에 있던 김영재 회장의 흥분하여 떨리던 그 전화 목소리를 필자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해냈습니다. 당구가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빌리어즈 김기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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