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2008년까지 BC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상천, 마이크 마세이, 얼 스트릭랜드 등

마이크 마세이
마이크 마세이 Mike Massey(1947~ )
2005년 헌정  ‘테네시의 타잔’  

마이크 마세이는 1971년 처음으로 프로페셔널 9볼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현재까지 약 45년간 꾸준히 당구 선수로서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30여 년간 최고의 트릭샷 선수로 이름을 떨치며 세계 곳곳을 다니며 대회에 참가하고, 그의 묘기를 선보이며 풀을 가르쳐 온 그는 당구라는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그는 2000년, 2002년, 2003년 세계 아티스틱 풀 챔피언십을 포함해 다양한 국내 및 국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1982년에는 내셔널 9볼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1997년에는 시니어 마스터스 9볼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고, 1996년에는 모스코니컵에서 우승팀의 영광을 안았다. 포켓볼 선수로 출발한 마이크 마세이는 포켓볼뿐 아니라 스누커와 예술구 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스누커 세계 트릭샷챔피언십에 출전해 두 차례나 우승을 차지했으며, ESPN’s  트릭샷 매직에서는 2000년, 20001년, 2003년, 2004년에 계속해서 우승을 차지했다.   마이크 마세이는 다섯편의 영화에 출연해 연기를 하거나 트릭샷을 선보였고, 기술 고문으로 참가해 영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영화 <허슬러> DVD에 해설 더빙을 했으며, 다큐멘터리에 등장하기도 했다. 2003년 필 코펠러와 함께 <마이크 마세이의 트릭샷의 세계>를 공동 집필한 그는 당구 간행물에도 정기적으로 참여하며 활발한 활도을 이어오고 있다.  
 
로빈 벨 도슨
로빈 벨 도슨 Robin Bell Dodson(1956~ )
2005년 헌정  ‘뱅크롤’  

 
열두 살 때부터 포켓볼을 치기 시작한 로빈 벨 도슨은 4년 후인 열 여섯 살의 나이로 캘리포니아 우먼즈 스테이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5년 동안 당구 선수로서의 활동을 쉰 그녀는 당구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1984년 다시금 새로운 토대와 열정을 가지고 돌아왔다.

27개의 프로페셔널 타이틀을 획득하며 정확한 샷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멘탈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25차례나 마지막 4강에 이름을 올린 그녀는 1989년 내셔널 챔피언십과 1990년 WPA 세계 9볼 챔피언십을 포함해 1985년부터 1990년까지 6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991년에는 두번째 WPA 세계 9볼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몇 개의 타이틀을 더 추가하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85부터 1993년 사이 로빈 벨 도슨은 여자 프로페셔널 당구협회인 WPBA의 랭킹에서 3위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1998년에는 BCA 트윈 시티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오랜만에 시상대 위로 되돌아왔다. 

특히 큰 상금이 걸린 대회에서 우승하는 능력 때문에 ‘뱅크롤’이란 별명을 얻은 그녀는 1994년과 95년 고든 챔피언십에서 연속해서 우승하며 두 번이나 20,000달러의 상금을 차지하는 등 약 400,000달러를 상금으로 벌어들였다.
 
얼 스트릭랜드
얼 스트릭랜드 Earl Strickland (1961~ ) 
2006년 헌정  ‘더 펄’
  

얼 스트릭랜드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배한 대표적인 포켓볼 선수로,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100개 이상의 토너먼트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다섯 번이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애크런 오픈에서 9번이나 우승을 했으며, US 오픈 9볼 챔피언십에서는 5차례(1984년, 1987년, 1993년, 1997년, 2000년), 세계 9볼 챔피언십에서는 6번(1984년, 1988년, 1990년, 1991년, 1994년, 2002년)이나 우승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2003년에 열린 세계 출 마스터스 트릭샷 챌린지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개인전뿐 아니라 팀으로 대회에 참가해 US모스코니컵 팀스에서 아홉번이나 팀에게 우승을 선사했다. 

특히 그는 공군기지와 중국의 라오핑 빌리아드 스쿨에서 시범경기를 선보였으며, ’95 풀 에이드 같은 자선 시범경기에 참가하는 한편, D.A.R.E, 미국 재향군인회, 브레너 어린이 병원, 당구 교육재단, 어린이 화상센터 등에서도 활발한 자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상천
이상천 Sang Chun Lee(1954~2004)
2007년 헌정  ‘3쿠션의 마이클 조던’

캐롬 당구에 흥미를 느낀 열다섯 살의 한국의 작은 소년은 그가 가야 할 삶의 진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1987년 미국으로 이민을 온 그의 꿈은 ‘미국에서 아름다운 3쿠션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상천은 그가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3쿠션을 부활시키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신사의 스포츠로써 3쿠션의 씨앗을 심었다.

그는 1993년에 세계 3쿠션 챔피언으로 등극했으며, BWA 월드컵 토너먼트 5회 우승, 1990년부터 2001년까지 U.S. 내셔널 3쿠션 챔피언십 연속 12회 우승, 1978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 챔피언십 10연속 우승을 비롯해 다수의 한국과 미국에서 열린 국내 혹은 국제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특히 그는 28점의 개인 하이런과 4이닝 만에 50점을 얻으며 베스트 게임 기록을 수립했다.

이상천은 뉴욕에 미국에서 가장 큰 3쿠션 당구클럽을 2개(SL당구클럽과 캐롬카페)나 오픈하며 사람들이 더 많이 3쿠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비록 이상천은 2004년 5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그를 사랑했던 팬들은 여전히 그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다른 선수들에게 항상 그의 시간을 할애했으며, 그들을 격려하고, 그의 방대한 지식을 아낌없이 공유했으며, 많은 사람이 캐롬 당구에 관심을 갖게 만든 최고의 선수였다.
 
앨런 홉킨스
앨런 홉킨스 Allen Hopkins(1952~ ) 
2008년 헌정  ‘Young Hoppy’

앨런 홉킨스는 원래 뉴저지에 있는 엘리자베스에서 태어났지만 그를 입양한 양부모에 의해 뉴저지 크랜포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 때 장난감 풀 테이블을 사줬는데 그 선물이 그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8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일반 테이블에서 경기를 한 그는 연속으로 10개의 공을 포켓 시키며 심상치 않은 그의 재능을 드러냈다. 

그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년에 걸쳐 챔피언 레벨의 포켓볼 경기를 보여주었고, 1977년 월드 오픈 14.1 스트레이트 풀 챔피언십과 1977년, 1981년 U.S. 오픈 9볼 챔피언십, 1990년 클리블랜드 오픈 10볼 클래식, 1991년 레전드 오프 원 포켓 같은 대회에서 타이틀을 획득하며 BCA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이 마틴, 스티브 미저랙, 시세로 머피뿐 아니라 피트 파고, 잭 코라비타, 오노프리오 라우리 같은 최고 실력의 선수들을 물리쳐 포켓볼 선수로서의 신뢰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1983년 메우치 리버먼트 오픈, 1984년 텍사스 리버 시티 오픈, 1987년 이스튼 스테이트 9볼, 1989년 쿠어스 밸리 포지 클래식, 1990년 리버시티 인비테이셔널, 1993년 인터내셔널 챌린지 오브 챔피언스, 1999년 덴버 10볼 오픈 등 많은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획득하며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현재 포트 공화국과 뉴저지를 기반으로 매년 4일동안 열리는 트레이드 쇼와 큰 스케일의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 토너먼트를 결합한 슈퍼 빌리어즈 엑스포를 프로듀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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