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알려진다

이병규 사장

빌플렉스 이병규 대표는 당구인들 중에 가장 평이 좋은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얼마 뒤 출범하는 한국당구용품협동조합의 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빌플렉스 사무실에서 벌써 30년째 당구계에 몸담고 있는 이병규 대표를 만나 보았다.

3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시간 동안 빌플렉스가 어떻게 성장했고, 또 한국 당구의 성장을 지켜보아 왔던 한 명의 당구인으로서 당구와 당구용품업이 어떻게 발전해야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많은 이들이 수년 사이에 빌플렉스를 대도매업체로 성장시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나도 벌써 30년째 당구업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빌플렉스를 성장시키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바로 이뤄지는 것은 없다. 다 인고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나도 고생 많이 했다.


언제부터 당구용품업을 시작했나?

군에서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향인 구미에서 우유 유통업을 처음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맘처럼 쉽지 않더라. 83년 겨울,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있었다. 버는 것도 시원찮았는데 사고까지 당하고 나니 어려움이 컸다.

평상시에 당구를 좋아해서 당구장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때 처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당구장을 시작했다. 구미 전역에 당구장이 10개 정도 있었는데, 250원, 300원 받던 시절이었다. 장사가 잘 돼서 아마도 하루에 10만 원 정도 했을 거다.


당구재료 사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

당시에 사단법인 대한당구협회 경북북지회가 인가가 났다. 아는 선배가 회장을 맡아서 나보고 사무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동네 선후배이고, 학교 선후배로 연이 있어서 거절도 못 하고 사무장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재료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경북북지회에서 재료사업부를 두었는데, 그걸 맡아서 하게 된 거다. 자연스럽게 당구재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매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재료사업을 하면서 구미에서 왜관, 김천, 상주까지 직접 배달을 다니면서 한 10년 세월을 보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밖에 안 자면서 쉬지 않고 하다 보니깐 어느덧 생산업자들에게 도매로 인정받게 되더라.

내가 도매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구미는 도매다’라는 인식을 가져 주어야 생산업자에게 도매가로 물건을 받아 올 수 있었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가 쌓이면서 생산업자, 재료상에 인지도가 생겼다.


지방에서 도매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수도권도 아니고, 경북 구미에서 도매를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어떤 재료는 재료상 가격에 물건을 사서 다시 재료상에 팔았던 때도 있었다.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해서 한 2년 정도는 적자가 나도 그렇게 운영했었다.

그런데 막상 오는 거래처들이 대부분 불량 거래처들이었다. 돈 있고 깨끗한 거래처는 더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수도권에서 재료를 구하지, 지방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그걸 견뎌야 했다. 어느 정도 떼이더라도 감수해야 했다. 나는 그들을 다그치지 않고 정말 진심으로 대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는 손해를 좀 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되더라. 빌플렉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고, 그 이미지 덕에 우량 거래처들이 하나둘 거래를 해오기 시작했다.


본인의 경영 마인드는 무엇인가?

내가 좀 손해를 봐도 거래처를 다그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난 지금도 주문이 뜸한 거래처에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대부분 거래가 줄면 거래처를 빼앗길까 봐 전화해서 주문 좀 넣어 달라고 한다. 물론 그게 거래처를 관리하는 방식이고,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방식이 좀 다를 뿐이다.

오래전에 당구대 6천만 원어치를 납품했는데, 계약 당사자가 사망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6천만 원이면 휘청할 금액이었다. 내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장례식장에 가보니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유족들은 더했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지금은 내가 손해를 보지만,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면 시간이 지나서 그들은 꼭 내 편이 되어 줄 거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수출입 사업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나?

90년대 포켓볼 바람이 불었을 때, 대만에서 수입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 한국보다 가격이 좋다는 것을 알고 일본에 수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일본어를 잘 모르니 일의 진척이 느려서 아예 일본어 학원 새벽반을 다니기도 했다. 일본에 가서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돌아다니면서 인맥도 쌓고 거래도 점차 늘려나갔다.

이때부터는 개인용품 비중을 늘려갔다. 거래를 오래 하다 보니 내 물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올 수 있는 브랜드를 확보하기 시작했고, 마스터초크, 아담 등의 브랜드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브랜드에 집중하기 시작했나?

내가 거래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생산업자들은 정성을 다해 만든 자식 같은 물건을 쉽게 주지 않는다. 잘 팔 수 있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한다. 수입품 중에 마스터 초크와 아담이 한국에서는 나만 가져올 수 있는 브랜드다.

아담 같은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큐를 판매할 수 있지만, 큐 이외에 아담 마크를 찍어서 당구용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빌플렉스밖에 없다. 지난해 말에 아담 본사와 브랜드 사용권에 대해 계약을 했고, 올해 전반기에 아담 개인용 팁과 무사시 개인용 그립, 아담 큐케이스, 시모니스 개인용 초크 등을 출시할 예정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은 없나?

물론 최고의 난관은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핑계 삼아서는 안 된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것은 당구용품협동조합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당구용품협동조합은 투자가 아닌 공유라는 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요즘 당구계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한국당구용품협동조합이다.

당구용품은 당구의 전반적인 발전과 관계가 깊다. 유기적으로 연결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새로이 태동하는 한국당구용품협동조합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한국 당구계에는 협동조합이라는 방식이 처음 도입되기 때문에 효과나 성패 여부가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한국당구용품협동조합의 설립에 관여하게 되었나?

요즘 다들 어렵다. 당구업계가 어려운 게 오늘내일 일은 아니지만, 지난해부터는 힘들어하는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고 있다. 그래서 오페라(주)의 마광현 대표와 생각한 것이 바로 한국당구용품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이라는 틀을 만들어 서로가 이익을 공유하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익의 공유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한국당구용품협동조합 차원의 자체 사업으로 조합원들에게 이익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당구업계가 과거에는 좀 덜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살아남기 위해 덤핑을 하거나 과잉 경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다. 또, 인터넷으로 저가 정책을 펼치는 이들 때문에 당구업계의 원로격인 유통업자들이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씁쓸하지만, 돈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지금 당구 시장은 그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자금력이 약한 군소업체들은 당구계를 떠날 수밖에 없다. 시장이 물론 자유경쟁이지만, 적정한 룰은 지켜져야 그 속에서 자유롭게 경쟁이나 협력을 할 것이다. 자본이 부족한 이들이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협동하는 수밖에 대안이 없다. 


한국당구용품협동조합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접근할 계획인가?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먼저 사심을 버리고 접근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나눌 것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다가서면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두 사람의 의견이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택한 방식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은 조합원 모두가 의견을 동등하게 나눌 수 있다.

협동조합이 성과라는 측면에서 다소 우려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를 끌고 가는 나와 마광현 대표가 그래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믿고 따라와 준다면 당구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는 단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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